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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영화제 지원 40개→10개...“소규모 저예산 영화제 벼랑 끝” [영진위 예산 칼질②]


입력 2024.03.08 07:23 수정 2024.03.08 07:23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영화제 지원예산 삭감은 영화 창작의 직접 동력 떨어뜨릴 것"

목포 국도1호선 독립영화제를 운영하는 정성우 감독은 수심이 짙다. 올해 국내 및 국제영화제 지원 예산은 24억 원 수준으로 52억 원 규모였던 지난해에 비해 반 토막이 줄었기 때문이다.


국내영화제 육성 지원 사업, 국제영화제 육성 지원 사업이 하나로 통합되면서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영화제는 40개에서 10개가 됐다. 영화제 지원 통과가 바늘구멍이 되어버리면서 목포 국도1호선 독립영화제는 물론, 소규모 저예산으로 개최되는 다른 영화제들의 향방에도 영화인으로서 걱정이 앞선다.


정성우 감독은 "심사를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있지만, 일단은 지원할 계획이다. 규모 있는 영화제는 큰 문제가 없겠지만 지자체, 영화진흥위원회 예산으로 운영하던 영화제는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딪치고 말 것이다. 아직 영진위가 영화제 육성 지원 사업을 모집하고 있고, 지자체 예산이 자세히 나오지는 않았다. 금액이 많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거기에 맞춰 올해 영화제를 진행해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목표 국도1호선 독립영화제는 전남 유일의 독립영화제로 독립·예술 영화를 사랑하는 영화인들과 시민이 함께 힘을 모아 만들었다. 지난해 10주년을 맞이했고, 총 860편이 접수돼 장, 단편 등 62편을 상영했다. 2014년 5편의 단편영화로 시작해, 국내 지역 영화제 중 대표적인 영화제로 평가받고 있다.


정 감독은 "목포 국도1호선 영화제는 상영회로 시작했고 지금도 영화제 예산이 크지 않다. 작년에 처음으로 전라남도가 10주년이 되어서 예산 지원이 됐었다. 올해도 720만 원 예산을 지원받는다.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시민들의 힘과 자체 예산을 확보해서 진행해 왔다"라고 설명했다.


정 감독은 올해 정부가 ‘칼질’한 영화제 예산 정책에 대해 "영화제가 단순히 상영하고 끝나는 것뿐 아니라 영화제를 준비하는 과정부터 프로그래밍,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면서 영화인들이 연결되는 지점들이 있다. 그런 과정들이 지역 영화인들에게 기반이 되는 큰 행사인데 이를 고려하지 않은 처사 같아 안타깝다. 영화제는 현실적으로 예산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을 수밖에 없다. 이번에 영진위에서 지원받지 못하는 영화제들은 내년에 더 축소될 테고, 그러면 또 신청 자격을 충족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도미노 같은 현상이 걱정된다. 아직 사업을 접수하고 있고 심사를 기다려 봐야 한다. 이후 자체 역량으로 만들어 가는 데 무리가 있는 영화제들은 잠시 멈춰 서거나 폐지되지 않을까 싶다"라고 바라봤다.


국내 독립영화제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전주국제영화제는 지난해 8억 1000만 원에서 올해 4~5억 원으로 지원 예산이 절반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 지난해 54억 5000만 원과 비슷한 규모에서 영화제를 치를 계획이다. 그러나 영진위 지원 비율이 줄고, 자부담이 늘었다. 전주시는 기원 후원금 유치를 통해 부족한 재원을 채워야 하는 숙제가 생겼다.


이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해 전국 50여 개 영화제가 예산 삭감 철회를 요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면서 예상됐던 바다. 영화인들은 영화 창작의 동기와 목표가 되는 기초 사업인 영화제를 정부가 등한시하는 흐름으로 해석하고 있다. 실제로 1990년대 국내에 생겨난 다양한 영화제는 산업이 포괄하지 않는 단편영화, 실험영화를 비롯한 새로운 작품을 수용했고, 2000년 이후 한국영화 산업의 주역이 되는 수많은 영화인을 발굴해 왔다.


또한 한국 독립영화의 개봉 편수(2023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보고서)는 131편인 반면, 제작 편수는 1574편에 이른다. 개봉되지 못한 수많은 영화가 영화제를 통해 관객과 만나고 있는 셈이다.


영화인들은 성명서를 통해 "영화제 지원예산 삭감은 영화 창작의 직접 동력을 떨어뜨릴 것이다. 산업이 미처 포괄하지 않는 영화는 어디에서 관객을 만나고 격려받아야 한다. 영화제 지원 축소는 단기적으로 영화문화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영화산업에도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 자명하다"라며 "코로나로 극장 산업이 위기를 겪는 가운데에도 국내 대부분의 영화제는 상영과 축제를 멈추지 않았고,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영화제의 관객은 줄지 않고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다. 관객이 영화제를 찾는 것은 지나치게 산업 중심적인 영화 유통 환경에 대한 대답이자 영화를 문화로서 향유하고자 하는 소중한 의지"라고 피력했다.


한 영화 관계자는 "진행되는 양상이 블랙리스트가 있었던 시절과 거의 비슷한 양상이다. 상부의 지침이나 어떤 영향력을 행사한 건 분명한데, 이와 관련해 속 시원한 답변을 못 들으니 추정할 수밖에 없고, 피해를 보는 건 영화제와 관객들, 창작자들이다"라고 한숨을 쉬었다.


서울독립영화제 김동현 집행위원장은 영화제가 위기를 맞은 가운데 영화인들끼리 조금 더 단단하게 연대할 필요가 있다고 바라봤다.


김 집행위원장은 "지난해 영화제들이 성명서를 발표했지만, 현재는 정부의 이 사업 방식을 수용한 것 자체가 아쉽다. 애초에 이 사업안이 발표됐을 때 리스크가 있지만 조금 더 미래지향적으로 모두를 위한 의견을 모았어야 했다. 처음에는 40개에서 10개로 줄었는데 누가 수용을 할까 싶었지만 지금은 이걸 문제 삼지 않고 개별적으로 영화제를 준비하고 있어 놀랐다. 성명서 발표를 한 후 지속적으로, 조직적으로 움직였어야 했는데, 액션을 취하지 못했다. 잠깐 이슈만 되고 진전이 없어 빨리 실망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공통의 문제의식을 가진 연대체가 너무 필요하다는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영화제 개최 지원 관련 간담회와 서면을 통해 최대한 지원 단체의 의견을 수렴하고 지원 개수 조정 없는 사업을 추진 중인 서울시의 행보가 하나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제시했다.


김 집행위원장은 "서울시 영화제도 예산이 삭감됐지만, 지원하는 곳을 줄이기보다는, 모두가 골고루 조금씩 나눠 받기로 했다. 다 같이 고통 분담을 하는 걸로 단체들과 협의했고,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서울시 행정처에서 분위기를 조성해 줬다. 예산 금액을 떠나 행정처에서 어떤 태도로 과정을 밟아나가느냐에 따라서 현장의 예술가들은 조금 더 희망을 갖거나 활동할 의지를 가져나갈 수 있다"라고 말했다.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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