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가만두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부지런히 움직이고, 하나의 일이 끝나기 무섭게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동시에 여러 일을 너끈히 추진하기도 한다.
다른 직업군에 비해 비교적 가까이서 보는 배우 중에도 연기에 더해 노래하고, 연주하고, 작곡하고, 글 쓰고, 연출하고, 그림 그리는 등의 일을 스스로 기꺼이 하는 이들이 많다.
취미로야 몇 가지든 할 수 있겠으나 프로 골퍼 테스트에 도전하듯, 명실상부한 직업이 될 만큼 하나의 경지에 오르는 성취를 보여주는 이들도 더러 있다.
배우 하정우도 그 중 하나다. 배우로 시작해 자기 안에 들어있는 말릴 수 없는 유머감각을 영화 시나리오로 외화 한 것도 모자라 직접 연출에 나선 지 오래, 첫 연출작 ‘롤러코스터’(2013)가 개봉한 게 이미 11년 전이다. 2년 뒤에는 두 번째 연출 영화 ‘허삼관’(2015)을 공개했다.
배우가 연기에서 연출로 영역을 확장하는 일은 꽤 있다. 더욱 놀라움을 안긴 행보는 ‘화가 하정우’의 병행이다.
하정우는 배우로 본격 데뷔하기 전, 김성훈이라는 본명으로 연기하고 공부하던 시절부터 그림을 그렸다. 보통은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잠시 손 놓고 머리 비우는 ‘휴식’을 생각하는데, 하정우는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스케치북에 스케치를 시작했다. 미국의 화가 장 미셀 바스키아에게서 배운, 예술은 예술가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생각이 도전에 용기를 보탰다.
사실 감독 데뷔보다 화가 데뷔가 빠르다. 지난 2010년 표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고, 이후 국내 단체전뿐 아니라 미국, 홍콩, 프랑스, 모로코 등의 해외 아트페어에 초청됐다. 국내외 개인전도 계속 열고 있다.
가장 눈길이 가는 건 ‘꾸준히’ 한다는 것이다. 여러 번 부침이 있었으나 결국 코로나19의 어려움 속에서도 세 번째 연출 영화 ‘로비’의 촬영을 마쳤다. 본래 출연만 하기로 했으나, 제작사의 요청에 연출까지 맡게 됐던 ‘허삼관’보다는 본인이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했던 연출 데뷔작 ‘롤러코스터’와 결을 함께하는 영화다.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포복절도 소동극, 비행기에서 골프장으로 장소가 바뀌면서 웃음의 강도와 세태 풍자 골계미가 한층 세졌다는 후문이다. 출연진도 박병은, 김의성, 강말금, 박해수, 차주영, 최시원, 강해림, 이동휘, 현봉식, 곽선영에 복병 엄하늘까지 이 실력파 배우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쟁쟁하다.
흔히 ‘롤러코스터’를 두고 ‘시대를 앞서간 명작’이라고들 하는데, 사업 감각 없이 연구밖에 모르던 창욱(하정우 분)이 회사 존폐의 기로에서 골프와 로비에 동시 도전장을 낸 영화 ‘로비’. 2024년 대한민국 영화 팬들이 하정우식 유머에 얼마나 크게 호응할지 개봉 시기가 정해지지 않은 현재, 벌써 궁금하다.
화가로서의 삶 역시 꾸준하다.
오는 5월 1일 문을 여는 ‘아메리칸 팝아트 거장전’에 화가 하정우의 이름이 올랐다.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등 팝아트의 거장 8인의 180여 작품과 유나얼, 찰스장 등 국내 팝아트 작가 10인의 50여 점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자리로, 올해 최고 블록버스터 팝아트 전시로 불리는 기획전에 한국의 대표 현대미술 화가로서 초청된 것이다. 5월 단체전에 이어 오는 10월에는 개인전도 열린다.
영화와 그림의 ‘병행’이라는 단어를 쓴 이유가 있다. 단지 두 직업군을 동시에 수행해서가 아니다. 하정우는 연기하거나 연출하면서 힘겨움에 부딪힐 때 혹은 잘 풀릴 때도 그림을 그린다. 이 닦으면 세수하는 게 자연스럽듯, 종일 촬영하거나 연출한 뒤 그림을 통해 자신의 감정과 또 본질과 마주하고 그것을 화폭 위에 펼쳐낸다.
이번 영화 ‘로비’를 쓰고 사전제작을 거쳐 주연이자 감독으로서 연기하고 연출하면서도 그렸다. 촬영을 마친 후 편집 등 사후제작을 하는 최근도 마찬가지라는 전언이다. 영화를 만드는 감정과 고심이 화폭에 담기고, 그림 그리는 감각과 사유가 영화로 옮아지고, 끝없는 선순환의 고리 위에서 하정우는 ‘대중예술인’으로서의 좌표를 공고히 하고 있다.
또 하나 ‘꾸준하게 병행하는’ 게 있다. 걷기다. 직업은 아니지만 배우 하정우, 화가 하정우의 근간이 되는 사람 김성훈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인생습관이다. 짬짬이 그리고, 틈틈이 걷고 여행하며 완성해낸 영화 ‘로비’의 완성품을 어서 보고 싶다.
화가 하정우와 감독 하정우 사이, 6월에는 배우 하정우를 만날 수 있다. 영화 ‘하이재킹’(감독 김성한)이 오는 6월 개봉을 확정지었다.
선배 하정우에 이어 믿고 보는 배우로 성장한 여진구가 영화를 끌고, 각기 크고 맑은 에너지를 지닌 성동일과 채수빈이 함께한다. 영화 ‘1987’ ‘카트’ ‘뺑반’ ‘태일이’ 등 굵직한 소재를 무겁지 않게 다루는 재주꾼 김경찬 작가가 시나리오를 맡아 기대를 키운다.
1971년 발생한 하이재킹(비행기 납치), 대한민국 상공을 날던 여객기가 납치된 상황에서 목숨을 걸고 벌이는 분투를 그린 영화에 배우 하정우는 파일럿으로 탑승했다. 1971년 1월 23일, 승객 55명과 승무원 5명을 태운 대한항공 F27기가 납북될 뻔한 실화 사건을 ‘1987’의 조감독이었던 김성한 감독이 배우 하정우와 다시 만나 어떻게 그려냈을지 석달 뒤면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