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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위기는 나의 기회"…韓 반도체 '빨간불' 피하려면


입력 2024.04.24 12:12 수정 2024.04.24 12:12        조인영 기자 (ciy8100@dailian.co.kr)

첨단 반도체 생태계 위해 각국 천문학적 보조금 살포

美·日 등 설계부터 패키징까지 공급망 구축 성과

韓 살아남으려면 기술·고객사 경쟁 외에 직접 보조금 검토해야

지난 2022년 8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워싱턴 백악관에서 반도체법에 서명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모든 칩을 미국에서 만들 수는 없어도, AI 시대를 이끄는 칩 주도권은 확보해야 한다."(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

"차세대 반도체는 일본 산업 경쟁력의 열쇠"(사이토 겐 일 경제산업상)

"대만이 더욱 완전한 국내 반도체 공급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류더인 TSMC 회장)


반도체 산업 주도권을 가져오기 위한 국가대항전이 거세지는 모습이다. 미국은 2030년까지 글로벌 반도체 생산 점유율을 20%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내걸었고, 일본과 대만 역시 선단공정 제조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진행중이다.


반도체 전쟁에서 승기를 잡으려면 자국을 중심으로 설계부터 제조·후공정까지 아우르는 차세대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한국도 주요국 수준의 직접 보조금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일본 등 글로벌 각국은 자국 업체를 밀어주거나, 해외 기업을 유치하는 방식으로 최첨단 반도체 생태계 구축에 나서고 있다.


시장은 가장 두드러진 성과를 내고 있는 미국에 주목한다. 미국은 바이든 정부 들어 대중 견제를 노골화하면서 미 주도의 반도체 생태계 구축에 열을 올려왔다. 설계(팹리스)·지식재산(IP), 소재·부품·장비 등에서 강점을 지닌 미국은 잃어버린 제조 역량을 되찾기 위해 마이크론(메모리), 인텔(파운드리) 등 자국 기업에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대표적인 지원책이 '반도체법(CHIPS Act)'이다. 미국 내 반도체 생산 시설 확대와 연구개발에 527억 달러(약 72조원)를 지원한다는 파격적인 제도 아래 인텔은 대출(최대 110억 달러)까지 합쳐 총 195억 달러의 인센티브를 약속받았다. 마이크론은 60억 달러를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파운드리·패키징(후공정) 역량을 자국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삼성전자(파운드리), TSMC(파운드리), SK하이닉스(패키징) 투자를 이끌어냈다. 이들은 조 단위 보조금을 받지만, 대신에 지적재산·영업비밀 노출이라는 리스크를 감내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설계→생산→조립→구매로 이뤄지는 반도체 생태계를 자국 안에 유치하는 데 성과를 거뒀다. 오픈AI, 구글, 메타, 애플, MS, 테슬라 등 내로라 하는 굴지의 미 기업들은 첨단 공정 팹에 힘입어 AI칩 생태계 확장에서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게 됐다.


일본도 요동치는 반도체 재편에서 막대한 수혜를 얻고 있다. 반도체 소·부·장에 강점이 있는 일본은 미국의 대중국 견제에 호응하는 대신, 다국적 기업의 첨단 반도체 팹 유치로 잃어버린 영광 되찾기에 사활을 거는 모습이다.


토요타, 키옥시아, 소니 등 8개 기업이 뭉친 라피더스(Rapidus)를 통해 2나노(㎚·10억분의 1m) 제품을 2027년부터 양산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메모리 부흥을 위해서는 마이크론, 키옥시아 투자를 이끌어냈다.


생성형 AI에서도 치고 나가기 위해 소프트뱅크가 1조8000억원을 투자한다고 밝혔으며, 미국 오픈AI는 아시아 첫 사무소를 도쿄에 개설하며 영역 확장에 나섰다.


소·부·장은 물론, 메모리·파운드리 거점 확보라는 성과는 일본 정부가 천문학적인 보조금을 투입했기에 가능했다. 라피더스만 하더라도 일본 정부는 약 9조원을 지원하며 TSMC와의 합작사인 JASM에는 4조원을 지원한다.


타이완 신주공업단지 내 위치한 TSMC 본사 전경.ⓒTSMC

한편으로는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팹(fab·생산 시설)으로 인한 공급과잉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일본, 대만, 유럽 등지에서 팹 신·증설에 속도를 내면서 ‘파운드리 치킨게임’ 우려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지난해처럼 반도체 업황이 크게 고꾸라진다면 반도체 제조사는 조단위 투자를 감내하면서 수익 악화를 버텨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릴 수 있다.


이에 대비해 ‘큰 손’ 유치로 안정적인 고객을 확보하고, 수율(양품 비율) 제고로 고객사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수율이 개선되면 생산량은 늘고 원가는 줄어든다. 수율은 제품 단가·물량, 납기에도 두루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고객사 유치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후발주자인 인텔은 ASML의 하이 NA EUV 노광장비 선점,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빅테크 고객사 유치 성과를 과시하며 승부에 나섰다. 엔비디아, 애플 등 이미 탄탄한 고객사를 두고 있는 TSMC는 고성능 컴퓨팅(HPC), 스마트폰 수요에 힘입어 60%가 넘는 파운드리 점유율을 계속해서 유지하려들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일찌감치 최선단 기술인 GAA(게이트 올 어라운드·Gate All Around)를 도입했다. 파운드리 팹 뿐 아니라 후공정인 패키징 공장 설립과 R&D 시설 투자도 확정하는 등 '맞춤형 서비스'를 통해 새로운 고객 유치가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삼성은 2028년까지 파운드리 고객사를 200여 곳으로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기업이 수율·고객사 유치에 힘을 쓰는 방식이라면, 정부는 각종 인센티브로 주요국과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줘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대규모 보조금을 등에 업은 기업들은 가격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 선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시설 투자, R&D(연구개발) 방식으로 선순환을 택할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치열한 퍼스트 무버(선도자) 경쟁에서 유리해진다. 미국, 일본, 유럽과 달리 한국은 직접 보조금이 없고 그나마 투자금 일부 세액을 공제하는 제도도 연말 종료돼 크게 차이가 난다.


산업연구원은 '미 제47대 대선과 반도체 국제 분업 구조 변화' 보고서를 통해 주요국 수준에 발맞춘 국내 직접 보조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경희권 부연구위원은 "직접 보조금 및 세액 공제 확대, 유사 시 유동성 수혈(대출·보증 등)을 위한 '전략산업 비상기금' 등 리스크 '헤징' 수단 제공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조인영 기자 (ciy810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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