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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을 말해봐! 모두의 응원으로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지정기부의 성공법


입력 2024.06.16 13:10 수정 2024.06.16 13:10        데스크 (desk@dailian.co.kr)

[일본에서 찾는 고향사랑기부제 성공 비결④]

며칠 전 고향사랑e음에 지정 기부 페이지가 새로 열렸다. 지자체와 기부자들의 요구가 있을 때마다 ‘곧 열린다’라는 이야기가 계속 있었는데, 제도 시행 후 1년여 반이 지난 지금에서야 드디어 시작되었다. 6월 초 기준, 8개 지자체의 11건의 프로젝트가 모금을 진행하고 있다.


고향사랑e음 지정기부 페이지 ⓒ고향사랑e음


기부금이 어디에 쓰이는지 조금 더 자세히 알게 된 점은 괄목할 만하지만, 내용 면에서 일률적인 디자인을 적용하니, 어떤 프로젝트도 눈에 남거나 인상 깊게 느껴지지 않는 점이 아쉽다. 일반적인 비영리 섹터의 기부 시장에서 기부 프로젝트 페이지를 비교하면 더 아쉬움이 깊어진다. 한국의 기부 시장은 일본과 금액적으로는 비슷하나, 인구 규모로 따져보면 2배 이상 큰 시장이다. 아직 미국 등의 기부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와 비교할 때는 작은 규모이지만, 일반 기부 시장에서 이미 눈이 높아진 기부자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서는, 더 자세한 모금 전략이 필요하다.


일본의 경우, 고향납세에서 GCF(Goverment Crowd Funding)라 불리는 정부 크라우드펀딩이 존재한다. 각 지자체가 해결하고 싶은 특정 테마, 과제를 알려, 여러 명이 기부에 참여하도록 하는 ‘정부’가 시행하는 크라우드펀딩이라는 의미이다. 이런 GCF페이지 구성을 위한 민간플랫폼은 기본적인 가이드라인은 있지만, 모든 페이지가 일률적인 내용으로 채워진 것은 아니다. 지자체에 따라 일러스트를 직접 다 디자인해 보기 좋게 만드는 곳이 있는가 하면, 손 글씨나 사진을 다양하게 채운 페이지도 있다. 어떤 페이지는 기부금이 쓰이는 곳의 정보를 강조하기도 하고, 어떤 프로젝트는 이 기부금을 가지고 활동할 사람들을 조명하기도 하며, 어떤 페이지는 마을 자체의 매력이나 역사, 문화를 알리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기도 하다.


일본에는 1700여 개의 지자체가 있고, 각 지자체가 제한 없이 프로젝트를 올릴 수 있으며, GCF 프로젝트를 개설할 수 있는 민간 플랫폼도 다양하다. 그래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GCF 프로젝트도 다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일본 내에서 GCF라는 용어를 처음 만든 민간 플랫폼 후루사토초이스에 올라온 10여 년간의 누적 프로젝트 수만 해도 2,730건이며, 기부 금액은 약 178억엔에 이른다.


나가노현 아즈미노시 GCF페이지 ⓒ후루사토초이스


후루사토초이스에서 모금 개시일이 비교적 최근인 프로젝트 중에서, 2주 만에 목표금액을 초과달성해 현재까지 1500만원 정도가 모금된 프로젝트가 있다. 바로 나가노현 아즈미노시의 ‘아즈미노’ 복간 프로젝트이다.


복간이란 발행이 중지되거나 폐간된 출판물을 다시 간행하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해 이제 서점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책, 판매 중지된 책을 다시 출판하여 판매를 재개하는 것이다. 복간의 주인공은 ‘아즈미노’라는 책으로, 50년 전 발간된 장편 대하소설이다. 옛 일본 시골의 풍경이나 세계를 무대로 활약한 인물의 생애가 담긴 책으로, 아즈미노를 무대로 하고 있다.


우선 이 프로젝트가 성공했던 이유는 다양하지만, 분명한 타깃을 정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8~90년대 레트로풍을 그리워하듯, 일본에도 ‘쇼와시대(1920~80년대)’를 그리워하는 정서가 있다. 그런 사람들을 타깃으로 흥미를 불러일으켜, 이 책을 읽으며 자연스레 아즈미노의 모습을 많은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했다. 또 그러한 역사 문화적인 모습을 후세에 알리는 의미로 학교 도서관 등에 장서로 기증하는 등의 내용도 담아, 아이들의 교육이나 전통을 지키고 싶은 사람들 또한 타깃으로 삼았다.


두 번째로는 기부자에게 특별한 혜택을 강조한 점이다. 복간된 책에 기부한 사람들의 이름을 넣는 혜택을 제공하는 것인데, 기부받아 지어진 시설이나 기부보고서 등에 이름이 들어가는 경우는 꽤 흔한 사례이지만, ‘책’에 이름이 들어가는 사례는 드물고, 의미 있는 책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기념이 된다는 점에서 아이디어 활용이 돋보인다.


세 번째로는 기부자가 알고 싶은 내용을 아주 꼼꼼하게 알기 쉬운 말로 전달했다는 점이다. 프로젝트 페이지의 구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1) 프로젝트의 개요

2) 소설 아즈미노의 설명 (관련 동영상 첨부)

3) 해당 책의 매력 (일본의 옛 풍경을 담고 있다 등)

4) 복간이 필요한 이유 (미래 세대로의 전달)

5) 복간된 책의 사용계획

6) 기부금의 구체적인 사용계획

7) 기부자 특전

8) 출판 이벤트 계획

9) 기부자에게 드리는 메시지

10) 프로젝트를 위한 시장의 메시지

11) 복간에 동참하는 사람들의 응원메시지


목차만 보면 너무 복잡해 보이지만, 쉬운 언어로 쓰였기에 빠르게 스크롤다운 하면서도 내용의 이해가 어렵지 않다. 또한 중간중간 적절히 사진이나, 동영상 등을 활용하여 긴 글에서 떨어지기 위한 가독성 부분을 보완했다.


후루사토초이스에서 보통 제안하는 가이드라인은 프로젝트의 개요, 상세 내용, 기부금 사용계획, 기부자에게 보내는 메시지 정도의 내용이다. 이 외에는 프로젝트를 올리는 사람이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고, 순서 등을 바꾸는 것도 가능하다.


한국의 경우로 다시 돌아오면, e음의 경우, ‘주진배경, 모금기간, 모금목표액, 지원계획’으로만 내용이 구성되어 있는데, 일반 기부 시장에서 거의 사용하지 않는 행정용어를 그대로 사용하여 경직된 느낌이 강하다. 그리고 같은 디자인을 모든 지자체에 일괄적으로 적용하여 여러 프로젝트를 보았을 때 인상에 남는 내용이 없다. 기부는 기부자의 마음이 동하는 것이 중요한데, 가장 중요한 부분을 놓친 것이다.


이에 반해 지난해 광주 동구와 전남 영암군 등의 지정기부 프로젝트를 시행했던 민간 플랫폼 ‘위기브’의 경우, 모금을 왜 진행하는지, 어디에 이 기부금이 쓰이는 지 등이 잘 읽히는 일상 언어로 쓰여있다. 기부자들이 알고 싶은 정보를 쉽게 전해주는 ‘스토리텔링’이 잘 된 것이다.


광주 동구의 100년 된 광주극장을 응원하는 프로젝트의 제목 및 가장 상단 화면만 비교하더라도 두 플랫폼의 차이는 확연히 드러난다. 위기브의 경우 ‘광주극장의 100년 극장 꿈을 응원해주세요’라는 일상적 언어로 쓰였다. 그러나 고향사랑e음의 경우, ‘광주극장 시설개선 및 인문 문화 프로그램 사업’으로 딱딱한 행정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어느 쪽에 더 기부자의 마음이 갈지는 명확하다.


(좌) 위기브 광주 동구 모금 페이지 ⓒ위기브 / (우) 고향사랑e음 광주 동구 모금 페이지 ⓒ고향사랑e음

지자체는 저마다의 상황과 해결하고 싶은 과제가 다르고, 그에 따라 각각 다른 스토리텔링이 가능하다. 사람들은 그 프로젝트를 통해서 새로운 지역을 발견하고, 흥미를 갖게 될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을 중앙정부에서 전부 컨트롤하며, 같은 틀 안에서 숙제처럼 지정기부 내용을 제출하라고 하니, 참여도 저조하고 아이디어도 비슷한 것이 겹치게 된다.


중앙정부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다. 지정기부를 하게 해달라고 해서 예산을 들여 페이지를 만들었더니, 별로 성과도 나지 않고 실제 기부하는 사람도 없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다. 그런데 처음부터 지자체 입장에서 지정기부를 왜 하게 해달라고 하는지, 기부자가 어떤 형태의 정보를 받고 싶어 하는지 고민을 조금이라도 했더라면, 지금의 형태로 지정기부 페이지가 만들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지정기부가 더 유연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잘 모금이 되기 위해서는, 일본처럼 다양한 민간 플랫폼을 허용하고, 각 지자체가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스스로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을 선택하고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지금처럼 중앙이 통제하는 공급자 중심의 행정으로는, 기부자의 마음을 얻을 수 없음을 하루빨리 깨달아 제도가 보다 활성화될 수 있는 방향으로 개선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연경 페어트래블재팬 법인장 admin@fairtraveljapan.com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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