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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실익 얻었다고 판단했나…다섯달 이탈 전공의도 처분 없어, 또 '의사불패'?


입력 2024.07.08 16:55 수정 2024.07.08 17:14        김인희 기자 (ihkim@dailian.co.kr)

정부 "의료현장 지켰던 전공의들과의 형평성 논란은 충분히 의식"

이미 의대증원 확정된만큼 정부도 나름대로의 실익은 얻었다는 판단

사직 전공의 하반기 모집에 응시할 수 있도록 제한 방침 완화 검토

지난 7일 서울시내 대학병원에 게시된 전공의 집단행동 중단을 촉구 인쇄물ⓒ뉴시스

정부가 장기간 이어지는 의료공백 사태의 해결을 위해 미복귀 전공의에 대해 면허정치 등 행정처분을 철회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수 차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복귀하지 않는 전공의들을 돌아오게 하기 위한 '고육지책'이긴 하지만, 아무런 행정처분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의사는 절대 패배하지 않는다'는 의료계의 뿌리깊은 인식을 더욱 공고하게 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정부는 8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 후 복귀하는 전공의뿐 아니라, 소속 수련병원에 돌아오지 않고 사직하는 전공의에 대해서도 면허정지 등 행정처분을 철회하기로 했다.


기존에는 복귀자에 대해 행정처분을 '중단'하는 것이 방침이었는데, 이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향후 처분 가능성을 없애고 복귀 여부와 상관 없이 모든 전공의에 대해 행정처분 '철회'를 결정했다.


이에 따라 지난 2월 중순 이후 이탈한 전공의들에 대한 행정처분은 소속된 수련병원에 복귀하든 복귀하지 않든 똑같이 '중단' 상태가 된다. 의료계는 복귀 여부와 무관하게 전공의에 대한 행정처분을 '중단'이 아닌 '취소'할 것을 요구했는데, 정부는 현장을 지켜온 전공의들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이는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


행정처분을 아예 취소하면 정부가 그동안 내렸던 각종 명령에 대한 정당성 논란이 불거져 전공의 등 의료계가 소송에 나설 수도 있다.


면허정지 처분을 하겠다는 강경책에도, 복귀하면 행정처분을 안 하겠다는 유화책에도 전혀 복귀의사를 보이지 않는 전공의들을 어떻게든 병원으로 돌아오게 하겠다는 조치지만, 병원을 이탈하지 않고 묵묵히 현장을 지켜온 전공의들과의 형평성 논란은 불거질 수밖에 없다.


행정처분 철회는 범법행위 자체는 인정한다는 의미여서 '취소'와는 다르지만, 이번 조치로 복귀하든 하지 않든 면허정지 같은 처벌은 받지 않게 된다는 점에서 그동안의 이탈 행위에 대한 '면죄부'를 주는 셈이다.

서울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연합뉴스

조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모든 전공의에 대해 향후에도 행정처분을 하지 않을 계획"이라며 "다만 행정명령은 법에 따라 정당하게 이뤄진 조치이니 취소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전공의들이 동료인 미복귀자가 처벌받을 수 있다는 우려로 복귀를 망설이고 있다는 점을 이런 조치의 배경으로 들었는데, 이들이 복귀하지 않은 이유가 미복귀자에 대한 배려 때문인지, 폐쇄적인 의사 집단에서 불이익을 당할 우려 때문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일부 이탈 전공의들은 환자 곁을 지키는 전공의들을 '참의사'라고 조롱하며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의사 커뮤니티에 공개하는 방식으로 '조리돌림'하기도 했다. 이탈 전공의들에 대한 면죄부는 정부가 이번 의료공백 상황에서 계속 강조해온 '엄정대응' 원칙을 뒤집는 것이기도 하다.


조규홍 장관은 "(이탈자와 미이탈자 사이의) 형평성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지난달 행정명령 철회에도 불구하고 복귀 또는 사직하는 전공의가 많지 않아서 의료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결단을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공의들이 주 80시간에 이르는 열악한 근무 환경에서 많은 고생을 했고, 또 아직 수련생 신분이라는 점도 감안했다"며 "정부가 구축하려고 하는 필수의료를 책임질 젊은 의사라는 점을 감안해 정부가 비판을 각오하고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그동안 의대 증원 등 의료개혁이 의료계의 반발로 좌절된 사례를 들면서 "불행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겠다", "악습을 끊겠다"는 등의 표현으로 엄정대응을 강조해왔다. 의사들이 집단행동을 무기로 정부의 의료개혁을 좌절시키면서도 처벌받지 않은 '의사불패' 신화의 재현을 막겠다는 것이었다.


정부 역시 이번 조치로 이런 비판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끝을 모르게 계속되고 있는 의료공백 상황에 어떻게든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정부 내에서 커졌고, 결국 미복귀자에 대한 처벌도 철회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미 2025학년도 의과대학 입학 정원이 늘어나는 것으로 확정된만큼, 지난 2020년 의대 증원 추진 당시처럼 정부가 아무런 실익도 얻지 못한 채로 정책을 철회한 것은 아니라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평가된다.

전공의 집단행동 중단 촉구 인쇄물 붙은 서울대병원ⓒ연합뉴스

다만 이탈 전공의들에게 면죄부를 준 이번 조치가 향후 2026년도 이후 의대 증원이나 의료개혁을 둘러싼 의정 갈등 상황에서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의대교수 단체들은 2025학년도 입시의 의대 증원이 확정된 상황에서도 집단휴진, 진료 재조정 등 집단행동을 계속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향후 의료개혁을 둘러싼 논의에서 주도권을 잡겠다는 의도가 보인다.


의료개혁 의제에는 비대면 진료 규제 강화, 의료사고처리특례법, 간호법 제정 등 의정 간, 혹은 의사단체와 환자단체 사이 견해차가 큰 정책이 적지 않다.


정부는 이와 함께 사직한 전공의가 올해 하반기 전공의 모집에 응시할 수 있도록 사직 전공의에 대한 복귀 제한 방침 완화도 검토하고 있다. 이럴 경우 전공의들은 소속 병원으로 복귀하지 않고 다른 병원의 동일·연차로 복귀가 가능해진다. 전공의 이탈이 컸던 이른바 '빅5' 병원들은 다른 병원 전공의로 빈자리를 채울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정부는 수련병원들에 이번 주 내 혹은 다음 주 초를 복귀-미복귀 전공의를 구분하는 마지노선으로 제시하고, 하반기 전공(9월 1일 수련 시작) 모집을 앞두고 현원을 확정해 달라고 요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4일 환자단체가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집회를 열고 의사들의 집단휴진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연합뉴스

김인희 기자 (ihkim@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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