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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성징', 자아 찾기 로드무비…혼자서도 괜찮아 [D:쇼트시네마(82)]


입력 2024.07.09 10:04 수정 2024.07.09 10:05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이경민 연출


OTT를 통해 상업영화 뿐 아니라 독립, 단편작들을 과거보다 수월하게 만날 수 있는 무대가 생겼습니다. 그 중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부터 사회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메시지까지 짧고 굵게 존재감을 발휘하는 50분 이하의 영화들을 찾아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29세인 혜영(황정원 분)은 지인의 결혼식에서 부케를 받았다. 서른을 앞두고 결혼 생각이 간절한 혜영의 마음을 아는 남자친구 정우는 부담을 느끼고 면박을 준다. 끝내 정우에게 연애하기 좋지만 결혼하기는 별로라는 말을 들은 혜영은 헤어질 결심을 한다.


마음이 초조해진 혜영은 지금까지 만났던 남자친구들의 커플링을 발견하고, 그들을 찾아가 보기로 한다. 첫 번째 타깃은 23살에 만났던 기타를 좋아했던 전 남자친구이다. 그는 꽤 그럴 듯한 음악가가 돼 번듯한 녹음실까지 차렸다. 혜영은 그에게 만나는 사람이 있냐고 물었지만, 음악과 결혼했다며 허세를 떨기 시작하며 새로운 뮤즈를 찾았다고 떠들어댄다. 결혼 후보로 탈락이다.


두 번째 남자친구는 27살에 만났던 7살 연상 남자친구다. 잘생겼고 현재는 대학교수가 돼 있다. 그러나 그가 가봉에 있어 만남조차 실패했다. 탈락이다. 세 번째는 25살에 만난 2살 연하의 꽤 공감 능력이 높았던 전 남친이구다. 이번에도 탈락이다. 찾아간 곳에는 '그'가 아닌 '그녀'가 서 있다. 혜영과 만난 후 성 정체성을 깨닫고 트랜스젠더가 됐단다. 는 혜영을 동경하는 마음을 사랑이었다고 착각했던 것이라며 사과한다.


마지막으로 사진을 전공했던 전 남자친구의 사진관에 이름을 속여 예약을 하고 찾아가 보기로 한다. 20살에 만났던 4살 연상의 남자로 유학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헤어졌다. 아쉽게도 전 남자친구는 로케이션 촬영 때문에 부재중이다. 할 수 없이 다른 직원에게 증명사진을 맡긴다. 그 사이 전 남자친구가 일을 끝내고 돌아왔고 혜영은 유학 간다고 거짓말을 했던 사실을 털어놓으며 자신을 왜 잡지 않았냐고 되묻는다. 돌아온 건 "내가 어떻게 네가 하고 싶은 걸 막냐"라는 답이다. 혜영은 사랑한다면 자신을 보내지 않을 거라고 믿었지만 전 남자친구는 오히려 혜영을 존중해 헤어짐을 선택했던 것이었다.


전 남자친구 투어를 마치고 돌아온 혜영. 그는 다시 혼자다. 100번도 더 넘게 전화를 했던 정우의 전화는 이번에도 받지 않기로 한다. 혜영에게 3차 성징이 이뤄지는 중이다.


'3차 성징'은 제목으로 성징의 개념을 은유적으로 확장했다. 제1차 성징이 출생 시 나타나는 성기의 구조적 차이, 제2차 성징이 사춘기에 나타나는 성적 특징이라면, 이 영화에서 말하는 '3차 성징'은 혜영의 정신적 성장과 자아의 확립을 의미한다.


혜영은 과거의 연인들을 찾아다니며 스스로의 감정과 마주하고, 결혼과 사랑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재정립한다. '3차 성징'은 혜영이 전 남자친구들을 만난 후,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외부의 인정이나 결혼이라는 제도적 틀이 아니라 스스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임을 깨닫게 되는 짧은 로드무비다.


마지막 정우의 전화를 받지 않는 장면은 혜영이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도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갖추게 됐음을 말한다. 러닝타임 22분.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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