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메프 최장 70일...판매자 피해 키운 원인으로 지목
이커머스 기업 대부분 적자...단축 일원화하기엔 유동성 불안
현금보유 확대와 맞물릴 경우 자금난 심화 우려도
최대 1조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티메프(티몬, 위메프) 판매대금 미지급 사태가 갈수록 악화되면서 재발 방지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산주기를 단축하는 것부터 판매대금 전용을 막기 위한 에스크로 의무화 그리고 재무구조 개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안이 제시되고 있는 가운데 정산주기 단축에 대해서는 찬성과 반대 의견이 엇갈리는 분위기다.
티메프 정산 지연 사태는 회사의 손을 떠나 검찰과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이번 사태로 피해를 입은 판매자와 소비자가 검찰과 경찰에 고소‧고발을 진행했고, 지난 1일 검찰이 구영배 대표 자택과 티몬·위메프 본사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하며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또 지난달 29일 티몬·위메프가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을 신청하자 법원은 보전처분과 포괄적 금지명령을 내렸다.
이후 법원은 지난 2일 류광진 티몬 대표이사와 류화현 위메프 대표이사에 대한 대표자 심문을 진행하고, 티몬과 위메프가 신청한 ‘자율 구조조정 지원 프로그램(ARS·Autonomous Restructuring Support Program)’을 받아들였다.
ARS는 법원이 기업이 신청한 회생 절차 개시를 일단 유예하고, 채권자와 변제 방안을 자유롭게 협의하도록 시간을 주는 제도다. 일단 법원은 1개월의 시간을 줬는데 티몬과 위메프는 ARS 기간을 최장 3개월까지 연장할 수 있다.
구영배 큐텐 대표를 중심으로 티몬, 위메프 등 경영진도 개별 매각부터 판매자 주주 플랫폼 구축 등 자구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사실상 자금이 바닥난 상태여서 법원의 판단에 따라 피해 보상 시점이나 금액 등이 정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태 해결에 대한 칼자루를 검찰과 법원이 쥐게 되면서 업계와 정치권에서는 재발 방지법 마련에 더욱 속도를 내는 분위기다.
앞서 2021년 머지포인트 사태에도 불구하고 당시 보다 피해 규모가 더 큰 사건이 벌어지면서 이번에는 확실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데에 정부와 정치권 모두 공감하고 있다.
핵심 대안으로 꼽히는 것은 정산주기 단축과 에스크로 의무화 그리고 이커머스 기업에 대한 재무구조 개선 등 3가지다.
티몬과 위메프의 판매대금 정산주기는 최장 70일로 경쟁사 대비 가장 긴 수준이다. 네이버, 11번가 등은 소비자 구매확정일부터 1~2일 안에 정산한다.
정산주기가 길어지면 자금을 오랜 기간 보유할 수 있는 플랫폼은 유리하다.
입금부터 대금 지급 전까지 단순 이자 수익을 비롯해 이번 사태처럼 인수합병에 자금을 활용할 수도 있다.
반면 판매자들은 상품을 팔고 바로 비용을 받지 못하다 보니 은행에 대출을 일으켜야 하고 이 과정에서 이자를 별도로 지급해야 한다.
이 같은 구조 때문에 이번 사태에서도 판매자들의 피해가 더 커질 수 밖에 없었다.
떼인 돈은 떼인 돈대로 묶인 상황에서 금융권 대출금과 이자까지 감당해야 하다 보니 자금 사정이 더욱 악화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반면 정산주기를 짧게만 설정해서도 문제가 된다는 반박도 있다. 국내 이커머스 기업 대부분이 적자에 빠져 있다 보니 정산주기 변경으로 유동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저마다 내부 사정으로 다른 정산주기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걸 일원화하면 갑자기 자금 사정이 안 좋아지는 기업들이 많을 것”이라며 “미정산 사태 방지를 위해 현금보유량을 늘리고 재무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같이 나오고 있어 불안감이 크다”고 말했다.
가뜩이나 자금 사정이 안 좋다 보니 정산주기를 단축하는 동시에 현금 보유량을 늘리기는 어렵다는 의미다.
특히 알리, 테무 등 중국 이커머스 공세가 날로 거세지고 있어 쿠폰, 할인 등 마케팅비용 지출이 늘고 있는 상황이라 자금 여유가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산주기 단축과 함께 거론되는 에스크로(Escrow) 시스템은 제3의 금융기관이 결제대금을 보관하고 거래 완료 후 판매자에게 정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사태는 큐텐의 기술 부문 자회사인 큐텐테크놀로지가 티몬과 위메프의 자금을 관리하면서 이를 활용해 기업 인수작업 등에 사용했다.
그간 업계 일각에서는 큐텐이 지난 2월 미국 온라인 플랫폼인 위시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판매대금 등 계열사 자금을 끌어다 썼을 것이란 추측이 있었는데 지난달 30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출석한 구영배 큐텐 대표가 이를 인정하며 사실로 드러난 바 있다.
에스크로 방식 결제가 의무화됐다면 대금 전용이 불가한 것은 물론 대금 지연 사태도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현재 11번가, 무신사, 지그재그 등 이커머스 기업들은 에스크로 시스템을 도입해 사용하고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번개장터는 이달부터 구매자 부담 '에스크로 안전결제' 비용을 전면 무료로 전환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공격적인 소비자 마케팅 등에 대한 제한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간 대부분 이커머스 기업들이 판매대금을 활용해 쿠폰, 할인 등의 마케팅을 진행했던 만큼, 에스크로 의무화가 실시되면 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