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수영(전도연 분)은 그토록 바라던 아파트 입주를 앞두고 조직의 비리를 뒤집어 쓴다. 직장 상사이자 연인인 임석용(이정재 분)이 엮인 이 비리를 눈 감고 2년 만 교도소에 다녀오면, 아파트와 돈을 받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연인은 세상을 떠났고, 받아야 할 돈과 아파트도 자신에 손에 쥐어지지 않았다.
돈을 누구에게 받아야 할지, 연인의 죽음에는 어떤 비밀이 있는지 정보 하나 없다. 이 때 임석용과 동거를 했다며 수영을 '언니'라고 친근하게 부르는 윤선(임지연 분)이 나타난다. 리볼버 한 자루를 쥔 하수영은 아군인지 적군인지 알 수 없는 윤선의 도움을 받아 이 모든 걸 계획한 앤디(지창욱 분)을 향해 돈을 받기 위한 발걸음을 뗀다.
영화는 하수영이 '돈'을 받기 위한 여정으로 나아가지만 이는, 하수영이 자신의 존재감이 사라진 세상 속 존엄감을 되찾기 위한 한 발이다.
'무뢰한' 이후 9년 만에 신작을 내놓은 오승욱 감독은 전도연의 얼굴을 허투루 사용하지 않는다. 차갑고 메마른 전도연의 새 얼굴을 끄집어내 뚝심 있게 영화를 끝까지 밀고 나간다. 이들이 엮인 사건 속 정보는 파편적이며 공백이 많다. 배우들의 대사와 상황을 보며 채워나가는 재미가 있다.
하수영의 존재를 눈엣가시처럼 여긴 인물들의 위협이 잇따르지만, 끝내 하수영은 뜨거워진 리볼버의 총구를 발사시키지 않는다. 여기서 더 나아간 나락이 아닌, 고군분투 끝 제자리로 돌려놓는다. 오승욱 감독이 캐릭터를 사랑하는 방식이자 한국 누아르 영화의 품격을 올려놓는다.
전도연은 하수영 그 자체가 됐다. 무표정한 얼굴로 리볼버를 장전하고 나아가는 걸음 걸음마다 외로움과 결연한 의지라 묻어난다. 수영의 분투를 돕는 윤선 역의 임지연도 선배들 사이에서 모자람 없는 연기를 보여준다. 지창욱의 변신은 새 발견이다. 어떤 역할을 맡겨놔도 훌륭히 소화는 지창욱의 연기는 영화의 긴장과 환기를 동시에 담당한다.
특별출연한 이정재, 정재영, 전혜진, 조연 김준한, 정만식 등도 각자 자리에서 영화의 중심부와 모서리를 채운다.7일 개봉. 러닝타임 114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