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누가 공무원들을 부끄럽게 만드나 [기자수첩-정책경제]


입력 2024.08.19 07:00 수정 2024.08.19 07:00        장정욱 기자 (cju@dailian.co.kr)

디올 백·채 해병·세관 마약 사건 등

잘못된 윗선 개입에 공직사회 ‘침울’

‘까라면 까는’ 시대 지난 지 오래

부당한 지시·개입 더는 없어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연합뉴스

“까라면 까던 시대는 우리 젊을 때나 가능했던 얘기다. 요즘 젊은 사무관들이 왜 조직을 떠나겠나? 단지 급여와 처우가 전부는 아니다. 나름 국가를 위해 일을 한다는 자부심을 기대하고 들어왔는데, 겪어 보니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아버린 거다. 정권이 바뀌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했던 일을 부정해야 하는 현실을 보면 나도 자괴감이 드는 데, 젊은 후배들은 오죽하겠나.”


최근 국민권익위원회 고위 공무원 A 씨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의 곁에는 가족에게 전하는 짧은 기록의 유서가 남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A 씨는 김건희 여사 명품 가방 수수 사건 조사를 총괄했고,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응급헬기 이송 사안을 담당한 인물이다.


그는 두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압박감을 호소했다. 지인에게 “최근 저희가 실망을 드리는 것 같아 송구한 마음이다”, “참 어렵다”, “심리적으로 힘들다”라며 당시 심정을 전했다고 한다.


얼마 전 모 부처 국장급 B 공무원과 기자들 셋이 저녁 자리를 했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권익위 얘기가 나왔다. A 씨에 대한 안타까움을 서로 나누던 차에 B 국장이 이런 말을 했다.


“그 공무원은 어쩌면 사회적 타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수뇌부에서) 그분한테 감당할 수 없는 숙제와 책임을 떠넘긴 거다. 상식선에서 납득할 수 없는 결과를 내놓으라 강요했으니 그 사회적 지탄과 비아냥이 정말 비수가 됐을 것 같다. 꼭대기에 있는 사람이야 어차피 잠시 왔다 가면 그만이지만, 그 사람은 20년 넘게 자긍심을 갖고 해오던 일이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해야 할 일인데 얼마나 자괴감이 들었을까 싶다.”


이번 정권에서 공무원들이 꼬집는 가장 큰 문제점은 윗선의 과도한 개입이다. 특히 대통령실이 문제다. 모든 정책의 꼭대기에 대통령실이 있다. 부처 결정이 한 방에 뒤집히는 건 비일비재하다. 심지어 장·차관 결정에도 대통령실 힘이 대놓고 작용한다고 한다.


과도한 개입은 문제를 낳기 마련이다. 현재 논란 중인 채 해병 실종 사건 수사 과정이나 세관 직원들의 마약 유통 공조 사건에 만약 대통령실이 개입한 게 사실로 드러난다면 후폭풍은 상상하기도 힘들다. 디올 백 논란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사실 현재와 같은 논란을 자초했다는 것만으로도 국민적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정당한 ‘지시’와 부당한 ‘개입’은 구분해야 한다. 장·차관은 대통령의 아바타가 아니다. 일선 공무원 역시 대통령 또는 장·차관의 몸종일 수 없다. 더는 고위직의 부당한 개입으로 제 자리에서 묵묵히 일하는 목민관(牧民官)들이 자신이 몸담은 조직을 부끄러워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한마디 더 하자면, 같은 맥락에서 이번 정부 인사 문제도 꼬집고 싶다. 이번 정부 들어 유독 국민 눈높이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인사가 잦다.


최근에 ‘빵값 카드깡’ 의심을 받는 사람과 불법파업에는 손해배상 폭탄이 특효라고 말하는 인물, 뉴라이트 역사관으로 대통령의 멘토마저 반대하는 사람이 모두 한 조직의 수장으로 임명됐다.


직전 장관은 대통령실로 불러 실장 자리에 앉히고 장관 자리에는 대통령실 처장을 보냈다. 새로 만든 특보 자리에는 대통령실 실장이 앉았다. ‘회전문’을 넘어 전형적인 ‘돌려막기’ 인사다. 이들이 과연 국민과 조직원으로부터 신망받을 수 있을까?


인사가 만사라 했다. 한 사람을 쓰는 일은 만 가지 일을 하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만 가지 정책보다 때론 좋은 사람 하나를 발굴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 일선 공무원들이 존중하지 않는 지도자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함이 당연하다. 대통령은 사람 쓰는 일에 대해 더욱 깊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

'기자수첩-정책경제'를 네이버에서 지금 바로 구독해보세요!
장정욱 기자 (cju@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관련기사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