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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가사관리사=영어 가정교사?" 강남3구 가정에 신청 몰린 이유


입력 2024.08.17 02:19 수정 2024.08.17 02:19        허찬영 기자 (hcy@dailian.co.kr)

선정 가정 157곳 중 59곳은 강남4구…이들 대부분 영어교육 기대하고 서비스 신청

비용은 월 200만원 수준으로 영어 유치원과 필리핀 가사관리사 금액 비슷해

서울시 "돌봄 과정 속 일상에서 아이와 영어로 대화하는 것은 문제 되지 않아"

전문가 "영어교육 원하는 수요 예상 가능했을 것…외국인의 돌봄에는 한계 있어"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필리핀인 가사관리사들이 지난 6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뉴시스

내달 초부터 운영되는 '필리핀 가사관리사' 서비스 이용 가정 3곳 중 1곳이 강남 3구(서초·강남·송파)라는 결과가 나왔다. 서비스를 신청한 일명 '강남 엄마'들은 필리핀 가사관리사를 통한 자녀들의 영어 교육을 기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돌봄 공백 해소와 저출산 극복이라는 당초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 필리핀 가사관리사를 고용할 금액이면 충분히 국내 인력도 고용할 수 있다며, 원래의 사업목적이 왜곡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14일 필리핀 출신의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 사업 서비스를 신청한 731개 가정 중 최종 157개 가정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선정 결과 지역별로는 동남권(서초·강남·송파·강동)이 59가정(37.6%)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도심권(종로·중구·용산·성동·광진·서대문·동대문) 50가정(31.8%), 서북권(은평·마포·양천·강서) 21가정(13.4%), 서남권(구로·영등포·동작·관악) 19가정(12.1%), 동북권(중랑·성북·노원·강북) 8가정(5.1%) 순이다.


사업 공모 시점부터 비싼 금액으로 고소득층만을 위한 정책이 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 가운데 실제로 비교적 소득이 높은 동남권의 가정이 가장 많이 선정됐다. 여기에 '강남 엄마'들은 필리핀 가사관리사에게 돌봄 서비스보다는 자녀의 영어 교육을 기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강남권 부모들이 활동하는 한 맘카페에는 "필리핀 도우미가 정말 영어 공부에 도움이 될까요?" 등의 글이 올라왔다. 해당 글 작성자는 "필리핀 사람들이 영어를 잘해서 도우미로 쓰면 영어유치원 보내는 것이랑 비슷하다"며 "강남 부모들은 도우미 2~3명 쓰는 게 별 부담이 아니니 필리핀 출신 도우미가 영어에 도움이 되면 쓰자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필리핀에서 대학 나오고 배운 사람들로 선발했다는데 이들한테 영어를 잘 배우면 비싸도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더불어민주당 강득구 의원이 지난해 교육부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흔히 '영어유치언'으로 불리는 유아 대상 영어 학원의 월평균 교습비는 2023년 6월 기준 123만9000원이다. 서울만 놓고 보면 144만1000원이다. 이는 하루 4시간 이상 주 5회 수업을 제공하는 학원을 기준으로 한 수치다. 교습비에는 교재비·급식비·차량운행비 등이 포함되지 않아 이를 모두 포함한다면 월 200만원을 넘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참여할 필리핀 노동자들이 지난 6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연합뉴스

하루 8시간씩 한 달간 필리핀 가사관리사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약 238만원이 든다. 영어유치원의 월평균 비용과 비슷한 수치다. 다만 필리핀 가사관리사는 아이들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각 가정에서 영어 교육을 진행할 수 있으며 돌봄 서비스까지 제공한다는 점에서 강남 엄마들의 선택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는 필리핀 당국과 함께 필리핀 가사관리사 사업 전부터 이들의 업무 범위를 '돌봄과 육아 관련 범위 내 부수적인 가사 업무' 정도로 선을 그었다. 시는 부모들이 가사관리사에게 '영어로 말하기', '영어로 동화책 읽어주기' 등을 요청하는 것도 돌봄의 범위에 해당한다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시 여성가족실 관계자는 "필리핀 가사관리사에게 가정에서 아이들과 대화할 때 영어로 대화하기를 요청한다던가 아이를 재울 때 영어 동화책을 읽도록 하는 것은 가능하다. 신청자 중에는 아이들에게 영어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어서 신청했다는 이들도 있다"며 "교재나 학습지를 통해 영어 교육을 하는 학습은 안 되지만 돌봄 영역 내에서 영어로 소통하는 것은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신소영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대표는 "필리핀 가사관리사의 임금이 다른 나라 대비 높다. 이를 지불할 수 있는 수요가 있는 곳에서 본래 취지와 다르게 활용되고 있다"며 "영어라는 것 자체가 절대적인 노출량이 담보돼야 하는 과목인데 필리핀 가사관리사를 통해 영어에 직·간접적으로 노출될 수 있는 효과를 노린 중산층 학부모들의 수요가 집중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영어권에서 외국인 이주노동자를 활용한 정책을 계획했을 때 당연히 영어교육을 원하는 사람의 수요가 몰릴 수 있다는 점은 예상했었을 것"이라며 "궁극적으로 영어권이 아닌 한국에서 외국인이 돌봄을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돌봄 해소가 목적이 맞다면 외국인 노동자가 아닌 국내 인력을 고용할 필요가 있다"며 "정부가 사회 서비스 차원에서 돌봄 일자리를 많이 창출하거나 민간과 협력해 이를 지원하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 효과적인 대책"이라고 조언했다.

허찬영 기자 (hcy@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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