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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대목 전통시장, 손님들은 선뜻 지갑 못 열었다 [데일리안이 간다 82]


입력 2024.09.11 05:05 수정 2024.09.11 05:05        허찬영 기자 (hcy@dailian.co.kr)

추석 앞둔 전통시장들, 대목 맞이했지만…높은 물가에 소비심리 위축, 상인도 손님도 '울상'

손님 "사과, 배 한 개에 7000원…장보기 예산 30만 원도 빠듯해"

상인 "가격 들은 손님들 선뜻 지갑 못 열지만 찾아와 줘서 그나마 다행"

폭염으로 대량 폐사한 수산물·축산물 가격 상승…"주말에는 나아질 듯"

10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에 위치한 경동시장 내부. 추석을 앞두고 장을 보러 온 시민들로 붐볐다.ⓒ데일리안 허찬영 기자

추석 연휴를 며칠 앞두고 대목을 맞이한 서울 시내 전통시장 곳곳에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하지만 지난 해보다 오른 물가로 손님들이 구매를 망설이면서 상인들의 시름은 깊어지고 있다. 올 여름 기록적 폭염이 장기간 이어지면서 농산물의 작황이 부진한 데다, 양식장과 축사에서도 대량 폐사 사태가 이어진 탓에 농·수·축산물 가격이 모두 올라 상인과 손님 모두 울상을 지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9일 데일리안은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에 위치한 경동시장을 찾았다. 오전 10시도 안 된 이른 시간이었지만 명절을 앞두고 장을 보기 위해 나온 많은 시민들로 붐비며 명절 분위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붐비는 시민들 사이에서 선뜻 지갑을 여는 사람은 찾기 힘들었다. 확 뛴 물가에 조금이라도 싼 곳을 찾아 떠나는 손님과 고민에 잠긴 듯 사과를 집었다 놨다 반복하는 손님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날 경동시장에서 만난 박모(68)씨는 "차례상에 올릴 과일하고 자녀들이 오면 함께 먹을 갈비를 사기 위해 시장에 왔다. 총 예산을 30만원 정도 생각하고 왔는데 빠듯할 것 같다"며 "갈비는 원래 비싸다고 하지만 사과랑 배가 한 개에 6000~7000원 하는 것을 보고 물가가 오른 게 새삼 느껴진다. 과일은 차례상에 올릴 최소한으로만 구매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경동시장 내 송편을 팔고 있는 한 떡집.ⓒ데일리안 허찬영 기자

경동시장 안에 있는 한 떡집 앞에서 만난 김모(55)씨는 "명절에 오는 식구도 줄어들고 해서 몇 년 전부터 송편은 직접 만들지 않고 시장에서 사 먹기로 했다. 딱 먹을 만큼만 살 수 있어서 좋다"며 "요즘 우리 집안처럼 명절 음식을 시장에서 사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시장에서 나물과 채소 등을 파는 한 상인 A씨는 "매년 해를 거듭할수록 전통시장을 찾는 손님이 줄고 있는 것 같다. 그래도 평일 오전부터 사람이 이렇게 많은 걸 보니 확실히 추석이 대목이긴 하다"며 "물가가 많이 오르면서 가격을 묻는 손님들이 놀라며 구매를 망설이긴 하지만 이렇게라도 바쁘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데일리안은 경동시장에 이어 건너편에 있는 청량리 수산시장도 방문했다. 수산시장은 경동시장과 횡단보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곳이지만 추석을 앞둔 전통시장 풍경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한산했다. 폭염으로 인해 어획량이 감소하면서 생선 가격이 크게 오른 것이 원인이다.


10일 경동시장을 찾은 한 시민이 구매할 게를 그릇에 담고 있다.ⓒ데일리안 허찬영 기자

수산시장 상인 B씨는 "원래 추석을 앞두고 조기 같은 생선류가 많이 팔리는데 가격이 오르면서 아직은 한가한 편"이라며 "그나마 추석이 코앞으로 다가오는 이번 주말쯤에는 손님들이 많이 찾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규모 축산물시장인 마장축산물시장도 방문했지만 이곳 역시도 비교적 한적했다. 축산물도 올여름 이어진 더위로 인해 소와 돼지 등이 사료를 덜 먹어 체중이 줄면서 도축량이 줄었고 이로 인해 물량이 감소해 가격이 상승했다.


가족들과 추석에 먹을 갈비찜용 소고기를 사러 온 한모(71)씨는 "명절에 식구가 조금 많이 모이는 편이다. 매년 30만원 어치 정도 샀던 것 같은데 올해는 (30만원 어치만 사면) 양이 적을 것 같다"며 "차라리 소갈비가 아닌 돼지갈비찜을 할지 고민 중"이라고 토로했다.


10일 오전 서울 성동구 마장동에 있는 마장동축산시장을 방문한 한 시민이 한우 선물세트를 살펴보고 있다.ⓒ데일리안 허찬영 기자

이 곳에서 정육점을 운영하는 C씨는 "아무래도 아직 더위가 가시질 않아서 그런지 지난 설에 비해 매출이 많이 떨어졌다. 이런 와중에 도축량도 줄면서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그나마 다행인 점은 선물 세트를 예약하거나 택배 포장을 주문하는 손님들이 드문드문 있다. 이번 주말에 마지막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추석을 앞두고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온누리 상품권을 할인 판매했다. 서울시는 추석 연휴 기간 전통시장 인근 공영주차장을 무료 개방했다. 또 시내 전통시장 60곳에서 추석 성수품과 농·축·수산물을 최대 30% 할인한 가격으로 판매하는 등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지원을 강화했다.

허찬영 기자 (hcy@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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