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반대 등 사업 추진 불투명 후보지, 신통기획 취소 결정
‘단계별 처리기한제’ 도입…기부채납 반발 단지에 경고
사업 취소 시 정비사업 ‘원점’ 회귀…후보지 주민들 ‘고심’
주민 갈등이 심한 신속통합기획(신통기획) 후보지들의 이탈 가속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속도감 있는 주택공급을 위해 도입했지만, 후보지 곳곳이 수년째 진통을 겪으면서 눈에 띄는 성과는 거두지 못하는 모습이다.
16일 정비업계 등에 따르면 서울시는 최근 강북구 수유동 170-1 일대, 서대문구 남가좌동 337-8 일대 등 2곳에 대한 신통기획 재개발을 취소했다. 주민 반대로 사실상 사업 추진이 어렵다고 판단해서다.
이들 지역은 주민 반대가 30% 이상으로 후보지 지정 이후 주민들 간 갈등 및 분쟁이 장기간 계속됐던 곳들이다. 향후 정비구역 지정을 위한 입안 동의 요건(찬성 50%)과 조합설립 동의 요건(찬성 75%)을 충족할 수 없어 사업 추진이 불투명해 신통기획에서 배제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신통기획은 민간 주도의 정비사업을 공공이 지원해 사업 속도를 획기적으로 앞당기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주요 주택공급 모델이다. 통상 정비구역 지정까지 5년 이상 소요되는 반면, 신통기획을 거치면 2년가량 대폭 단축된다. 시가 제시한 기부채납을 충족하면 용적률 완화 등 인센티브도 받을 수 있다.
사업이 도입되고 후보지가 단기간 급속도로 늘어나는 등 시장의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지만, 4년가량 흐른 지금까지 가시적인 성과는 없다. 신통기획을 둘러싼 주민 찬반 갈등이 계속되거나 서울시의 공공 기부채납 요구가 과도하단 목소리가 적지 않아서다.
후보지 2곳이 빠지면서 재개발 신통기획 후보지는 총 83곳이 됐다. 문제는 신통기획 이탈 사례가 더 늘어날 수도 있단 점이다.
서울시는 이달 들어 재건축 신통기획에도 ‘단계별 처리기한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사업 단계별로 기한을 두고 때맞춰 사업 절차를 밟아나가지 못하면 기존 신통기획 절차는 취소되고 사업은 원점으로 돌아가게 된다.
시는 여의도 시범을 첫 적용 단지로 꼽았다. 이곳 단지는 시가 제시한 기부채납 시설인 노인요양시설 ‘데이케어센터’를 놓고 1년 넘게 주민 반발이 거셌던 곳이다. 단지 외벽에 플래카드를 내거는 등 주민들의 집단 행동이 이어졌으나, 서울시의 사업 취소 엄포에 결국 데이케어센터 설치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업이 취소되면 일반 재건축 단지로 사업이 전환되는 것은 물론 신통기획을 통한 인센티브도 모두 사라진다. 2년 넘게 진행한 정비구역 지정 절차도 다시 밟아야 해 부담감이 컸을 거란 관측이다.
한 신통기획 후보지 주민은 “한참 후보지를 양산할 때는 신통기획 취소도 못 하도록 출구를 막던 서울시가 이제는 말 잘 듣는 사업장만 끌고 가고 나머진 버리겠다며 태도를 바꿨다”며 “공사비가 오르고 비용 부담도 커지는데 이제 와 사업이 무산된다고 하면 답답하다. 울며 겨자 먹기로 서울시 요구를 받아들여야 할지 저마다 고민이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
시는 압구정 2~5구역, 대치 미도 등에도 순차적으로 단계별 처리기한제를 적용한단 방침이다. 이곳 주민들은 단지를 가로지르는 공공 보행교 설치를 놓고 시와 갈등을 이어가고 있다. 일각에선 사업 인허가권자인 서울시가 잡음이 많은 정비사업장 길들이기에 나서는 게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서울시는 주민 이익만 생각해 재건축·재개발을 하는 게 아니라 공공성을 확보하면서 사업을 추진해야 하니 갈등이 심하면 빼고 가겠단 원칙을 세운 것 같다”면서도 “일반 재건축·재개발도 주민 갈등을 봉합하고 사업을 추진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데 서울시가 너무 속도감만 내세운 측면이 있다. 주민 반대로 난항을 겪는 후보지는 버리고 가겠단 접근은 또 다른 주민 반발을 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업이 어느 정도 진행된 곳들은 아쉽더라도 서울시 요구를 들어 빨리 빨리 사업을 진행하려 하겠지만, 아직 이렇다 할 진도가 나가지 않은 후보지는 신통기획과 일반 정비사업을 놓고 저울질을 하는 곳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