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관계 회복 제스처…한동훈도 확전 피해
김건희 여사 문제·명태균 의혹 등 여론 추이 따라
당정 갈등 재차 불거질 가능성 적지 않단 관측 제기
'잠정 봉합'.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반환점을 앞둔 현재 당정관계에 대한 대체적인 평가는 이렇다. 윤 대통령이 대국민담화·기자회견을 통해 당정관계 회복 제스처를 취했고,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역시 당장의 정면충돌은 피하겠다는 모습을 보였다는 관측이다.
한동훈 대표는 8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대통령께서 어제 현 상황에 대해 사과하고, 인적쇄신, 김 여사 활동 중단, 특별감찰관의 조건 없는 임명에 대해 국민들께 약속하셨다"며 "이제 중요한 것은 민심에 맞는 수준으로 구체적으로 속도감 있게 실천하는 것이다. 실천이 '민심에 맞는 수준'이어야 하고, '구체적'이어야 하고, '속도감'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런 민심에 맞는 실천을 위해서 당은 지금보다 더 민심을 따르고, 지금보다 더 대통령실과 소통하고 설득하겠다"며 "당은 즉시 대통령께서 말씀하셨던 특별감찰관 임명 절차를 추진하겠다. 필요한 절차 준비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민심과 함께 가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우리 모두 국민 앞에서 더 겸손하고 겸허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대표가 하루 만에 입장을 낸 건 윤 대통령이 국정 기조 변화를 약속하고, 자신이 요구한 '5대 요구안' △대국민사과 △대통령실 참모진 전면 개편 △쇄신 개각 단행 △김 여사의 대외활동 즉각 중단 △특별감찰관 임명이 대체로 수용됐다고 간주했거나,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수용에 준하는 상황으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보수가 분열하면 '필패'라는 시각에 따라 여권의 위기를 우선적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판단으로 해석된다. 전날 윤 대통령의 대국민담화 직후 친한(친한동훈)계에서는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았다' '안 하느니만 못하다' 등의 불만과 비판이 쏟아져 나온 바 있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는 지난해 한 대표가 비상대책위원장으로 국민의힘에 입당했을 당시부터 당대표가 된 현재까지 △김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 △김경율 비상대책위원 사천 논란 △제3자 추천 채상병 특검법 △의대증원 문제 △공천 개입 의혹 등 여러 사안을 두고 충돌했다. 이는 정통 지지층의 이탈 요인이 됐다는 지적을 받았다.
윤 대통령도 전날 한 대표와의 갈등 관련 질문에 "단순한 당정 문제를 떠나서 초심으로 가야 한다"며 "정부는 정부대로, 당은 당대로 국민을 위해 가장 일을 잘 할 수 있는 가장 유능한 정부, 가장 유능하고 발빠른 당이 되기 위해 일을 열심히 같이 하다 보면 관계가 좋아지지 않겠느냐. (당과의 관계가)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국민을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하면 선공후사이기 때문에 그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다. 국민의 이익을 위해 정부와 대통령실과 당이 계속 머리를 맞대고 일을 하며 자주 만나야 된다"며 "정치를 오래 하다보면 다 앙금이 있더라. 같은 당 의원으로 같이 일을 해나가면서 그런 것이 풀려지는 것"이라고 했다.
친한계 정성국 의원은 이날 MBC라디오에서 한 대표가 비판적인 입장을 내놓을 경우 친윤계와의 갈등이 격화될 수 있다는 지적에 "그 부분은 우려가 된다"며 "기자회견 자체에 대한 평가만을 하기에는 김건희 여사 특검법 통과와 이재명 대표의 1심 선고 등, 앞으로의 정국과 연계성이 너무 많다"고 했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가 당장의 충돌은 피한 가운데, 당내에선 당정 간 국정 운영 기조에 대한 이견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말이 나왔다.
정연욱 의원은 이날 BBS라디오에서 "역대 정권과 집권당 간의 관계가 항상 순조롭게 가지는 않았다. 모든 정파 내부에 갈등이 있는 건 당연하다"며 "국정 운영 기조를 놓고 이견이 있을 수 있는 것이고, 이걸 조정하고 풀어가고 화합하는 과정이 중요한 거지, 갈등이 있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는 결국 서로가 서로를 위한 필수불가결한 관계라는 전제에서 봉합이 이뤄진 것이라는 진단도 나왔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통화에서 "윤 대통령과 한 대표는 서로를 위해 필수불가결한 관계"라며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불편한 동거'는 한 대표가 대권 도전을 위해 현행 당헌·당규에 따라 내년 9월에 당대표직을 사퇴할 때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종근 시사평론가도 "한 대표가 윤 대통령을 향해 '실천이 중요하다'라고 메시지를 내면서 받아들이는 모양새를 한다는 건 일단 친한계의 기저가 확전하지 말자는 것"이라며 "야당의 상황도 지켜봐야 하고, 여기서 더 치고 나가면 안 된다라는 결론이 난 것 같다. '윤한 갈등'이 잠정 봉합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당정 갈등이 잠정 봉합된 상태이지만, 여전히 불안 요소는 남아 있다. 야당이 '약한 고리'로 보고 '특검법' 강공으로 몰아치고 있는 김건희 여사 문제가 그것이다. 지난 갈등도 김 여사 문제로 초래된 부분이 적지 않은 만큼, 향후로도 역시 김 여사 문제가 갈등을 촉발할 잠재 요인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한 대표의 경우 대통령의 전날 입장이 미흡하다고 할 경우 결국 야당이 주장하는 김 여사 특검에 힘을 실어줘야 되는데, 그 경우 한 대표의 정치생명은 끝나는 것"이라며 "한 대표의 '5대 요구안'은 윤 대통령이 받아줄 수 있는 것만 던졌고, 윤 대통령은 받아줬다. 그래서 두 사람은 통합 단계로 간 것"이라고 해석했다.
박 정치평론가는 이어 "오는 14일에 김 여사 특검법 표결 때는 국민의힘이 일치단결해서 부결할 것이지만, 향후 한 대표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1심 판결이 어떻게 될지를 관망하고, 그 때까지 윤 대통령이 약속한 것들을 얼마나 실천했는지를 지켜볼 것"이라며 "'김건희 특검법' 재표결 때는 어떻게 될지 모르고, 그것이 당정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