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새 6000억 가까이 늘어
시장 불안 속 초단기 자금↑
'고환율 역풍' 유동성 우려도
국내 4대 은행이 콜거래 시장에서 끌어 쓴 외화가 한 해 동안에만 6000억원 가까이 불어나며 5조원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외부에서 초단기 외화 자금을 빌려 오는 일이 많아졌다는 뜻으로, 금융 시장의 불안이 커진 데 따른 영향으로 풀이된다.
금융권에선 당분간 달러 가치 상승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외화 유동성 관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3분기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4개 은행이 보유한 외화 콜머니 평균 잔액은 총 4조838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3.5%(5743억원) 늘었다.
콜은 금융사들 사이에서 이뤄지는 단기 자금 거래를 일컫는 표현으로, 은행 등이 일시적으로 모자라거나 남는 자금을 융통하는 시장이다. 부르면 즉시 대답한다는 식으로 아주 짧은 기간 진행되는 대차라는 점에서 콜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콜거래 중 돈을 빌리는 것을 콜머니, 빌려주는 것을 콜론이라고 부른다.
은행별로 보면 우선 국민은행의 외화 콜머니 평균 잔액이 1조7672억원으로 같은 기간 대비 44.3% 증가했다. 우리은행 역시 1조356억원으로, 하나은행은 9974억원으로 각각 40.3%와 9.3%씩 늘었다. 신한은행만 1조380억원으로 25.2% 감소했다.
은행권의 외화 콜머니 확대는 글로벌 금융시장 변동성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일시적으로 외화 자금을 끌어 써야 할 일이 많아졌을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강달러 흐름이 지속되면서 해외에서 돈을 빌려 국내에서 대출을 내주며 이익을 기대한 것으로 보인다. 원화 가치가 떨어지는 흐름 속에서 이렇게 자금을 운용하면 은행 입장에서는 환이익 증대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강달러로 해외 주식과 채권 투자가 늘었고, 은행들이 환전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달러화 차입이 늘어난 점도 영향을 미쳤다.
원·달러 환율은 미국 대선을 기점으로 1400원 선을 넘나들고 있는 실정이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보다 0.4원 오른 1402.2원으로 주간 거래를 마감했다.
원·달러 환율은 미국 대선 직전인 지난 5일 1370원대를 기록하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당선 직후 달러가 초강세를 나타내면서 지난 13일 장중 1410원을 넘어 2년여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시장에서는 내년 1분기까지는 1400원대 환율이 이어지면서 1430원까지 상한선을 열어 놔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 외환거래 손실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콜머니와 같은 단기성 외화자금은 국제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클 때 빠져나갈 우려가 크다. 늘어난 콜머니가 금융사의 유동성에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콜머니와 같은 단기 자금 공급이 많아지면, 예상되는 순현금유출 규모가 커져 유동성 지표가 하락하게 된다. 금융권에서 콜 시장을 통한 자금 조달 확대는 통상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으로 여겨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강달러 현상으로 은행들의 자본비율 경계감이 높아질 수 있다는 점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환율이 오르면 은행의 건전성 점검 핵심 지표인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 하락한다. BIS 비율은 자기자본을 위험가중자산으로 나눠 산출하는데 비율이 높을수록 건전성이 좋다는 뜻이다.
은행들이 가진 외화 대출의 원화 환산액이 커지면 그만큼 위험 자산이 증가하게 되고 BIS 비율은 낮아진다. 앞서 한국은행은 환율이 1400원 중반까지 급등했던 2022년 3분기에 환율이 100원 오르면 은행의 자기자본비율이 0.32%포인트(p) 떨어진다는 분석 보고서를 내놓은 바 있다.
다만 은행권은 크게 우려할 정도는 아니라고 보고 있다. 당국이 권고하는 BIS 수치는 13%인데, 대형 은행권은 15~16%대로 안정적인 수준이다.
아울러 외화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이 개선되고 있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올해 3분기 4대 은행의 외화 LCR은 평균 157.3%로 전년 동기 대비 9.4%p 높아졌다. 은행들의 외화 LCR이 올랐다는 건 그만큼 외환 위험 발생에 대한 대비 수준이 이전보다 개선됐다는 의미다.
다만 금융권에선 경기침체와 고환율이 장기화될 경우 상황이 반전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환율이 급등한 가운데 단기에 갚아야 되는 자금이 늘어난 건 그만큼 상환부담이 커진 것”이라며 “고환율 장기화에 따른 시장 모니터링을 더욱 강화하고 외화 조달 계획을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