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운 연출·주연
OTT를 통해 상업영화 뿐 아니라 독립, 단편작들을 과거보다 수월하게 만날 수 있는 무대가 생겼습니다. 그 중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부터 사회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메시지까지 짧고 굵게 존재감을 발휘하는 50분 이하의 영화들을 찾아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수능이 200일 남은 수아(한해운 분)는 친아빠 광렬을 13년 만에 만나게 된다. 그동안 아빠에게 연락이 왔지만 엄마에게 혼날까 봐 모른 척해왔지만, 다른 나라로 떠나 이제 한국에 오지 않을 것이라는 연락에 아빠를 만나지 않을 수 없었다.
훌쩍 자란 수아의 현재 취향을 모르는 아빠, 아빠의 나이도 제대로 모르는 수아 두 사람 사이에는 어색한 공기가 흐른다.
이 분위기를 바꿔보려 아빠는 어렸을 때 수아가 좋아하던 아이스크림을 사주려 한다. 그러나 아빠가 데려간 아이스크림 가게는 보이지 않고 어색한 기류는 더 진해진다.
이쯤 되면 됐다고 생각한 수아는 공부를 하기 위해 돌아가려 하지만, 아빠는 조금만 더 같이 있자고 붙잡고, 시간을 확인한 후 뛰기 시작한다.
아빠가 수아를 데리고 온 곳은 노을 지는 한강 공원. 공부하느라 강가의 해 질 녘을 못 본 딸에게 선물해 주고 싶은 풍경이다.
헤어지는 길에 아빠는 선물을 건넨다. 아빠가 버스 타고 떠난 후 공원 벤치 위에서 선물을 뜯어보는데 흥미가 없는 책이다. 그러나 책 사이에 끼워진 자신의 어린 시절 사진들을 보며 생각에 잠긴다. 수아는 저장하지 않았던 번호에 '아빠'라고 썼다 지우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아, 처음 뵙겠습니다'는 13년 만에 만난 부녀가 어색함 속에서 작은 순간들을 공유하며 서로를 이해하려 애쓰는 과정이 담겼다.
수아에게 아빠는 오랜 시간 자신의 삶에서 바깥에 있는 존재였다. '배'수아가 아닌 '윤'수아로 살아온 시간이 자신에게는 더 익숙하다. 아빠는 어린 시절 수아의 취향에 기대어 과거를 되살리려 하지만, 아이스크림 가게가 사라진 것처럼 세월은 이미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이러한 어긋남은 한강 공원에서의 짧은 순간, 그리고 사진 속 과거의 기억을 통해 간극이 좁아진다.
한강의 노을 지는 풍경은 단순히 아름다움을 넘어, 아빠가 딸에게 선물하고자 했던 '놓쳐버린 시간'이다. 결국 번호를 저장하지 않고 지운 수아의 마지막 행동은 아빠를 완전히 받아들이진 못했지만, 언제든 아빠의 연락이 온다면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만나러 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