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정국 장기화…경제 불확실성 증폭 우려
작년 12월 불확실성, 美재선 지수보다 2배↑
“韓정치적 위기 길어지면 신용 하방 압력도”
한국 경제가 짙은 불확실성에 휩싸였다. 계속되는 일련의 혼란 속에서 우리 경제를 뒷받침하는 국가신용등급이 흔들리고 있다. 계엄·탄핵정국이 부른 ‘설상가상’과 같은 악재가 계속돼 등급이 떨어지면 다시 회복하기 어렵다. 정부는 불확실의 소용돌이 속에서 비상이 걸렸다.
6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상반기 역대 최고인 67% 신속 집행 계획을 마련했다. 탄핵 정국이 이어지면서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함과 국가신용등급 하락을 막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정국 혼란 속 대외신인도 타격이 금융시장 불안, 투자 감소로 이어지며 한국 경제가 위기로 내몰릴 가능성도 크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교육·정보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경제불확실성지수(EPU Index)는 523.99로 치솟았다. 이는 KDI가 2013년 1월 지수 산출 이래 약 12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지난달 지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의 재선을 반영한 11월 지수(246.41)의 2배를 넘는 수준으로 급격히 상승했다. 직전 최고치는 일본의 수출규제 사태가 터졌던 2019년 8월(299.87)이었다.
당시에도 지수가 300을 넘진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후 한 달간 불확실성이 커진 것으로 풀이된다. 이 지수는 매월 지수가 산출·제공되며 실시간으로 생성되는 뉴스 기사의 텍스트 데이터를 분석해 경제 흐름을 파악한다.
‘정치는 경제와 별개다’라는 메시지를 내놓는 정부도 안간힘을 다하는 모양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신임 헌법재판관을 임명한 것도 국가신용등급 하락 우려를 막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2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신년사를 통해 “최 권한대행이 대외신인도 하락과 국정 공백 상황을 막기 위해 정치보다는 경제를 고려해 어렵지만 불가피한 결정을 했다”고 밝혔다. 이는 최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을 경제 안정 관점에서 지지한다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정부는 가용자원을 총동원해 경기를 챙기겠다는 계획이다. 올해 ‘1%대 저성장’ 경로를 전망한 만큼 경제 성장률 둔화 흐름이 국가신용등급을 내릴 수 있어서다. 경기가 지속적으로 침체되면 등급이 강등될 가능성도 크다.
기재부가 지난 2일 발표한 ‘2025년 경제정책방향’에서 공공부문 가용재원으로 18조원(정책금융 12조원 및 재정·공공 추가투자 6조원), 상반기 민생·경기사업 약 85조원의 40% 이상을 1분기 집행한다고 밝혔다.
‘회계연도 개시 전 배정’도 11조6000억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로 집행한다. 이런 조기·신속 집행에도 불구하고, 1분기 재점검을 거쳐 필요하다고 판단된다면 “추가 경기보강방안”을 강구하겠다고도 했다.
다만 경제 활성화를 위한 정부의 확장적 재정 정책 기조는 재정건정성에 대한 우려로 이어진다. 정부 재정이 2년 연속 대규모 ‘세수 펑크’에 발이 묶인 상황이라 경기 마중물 역할도 기대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기재부 세수재추계 결과, 올해 국세 수입은 337조7000억원으로 세입예산(367조3000억)보다 29조6000억원 부족할 것으로 예상됐다. 작년 56조4000억원에 이어 2년 연속 역대급 결손이다.
정부가 국가신용등급 강등 사태를 막기 위한 노력을 하는 데에는 한 번 하락하면 회복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치 리스크에 따라 등급이 내려가면 다시 올라서기 어렵다.
지난해 프랑스의 신용등급 강등 사례를 보듯이 불확실성이 계속되면 사태 해결 능력에 대한 회의적 시각은 확산하고 불안감은 증폭된다. 국제신용평가회사 무디스(Moody’s)가 정국 혼란을 이유로 프랑스의 등급을 Aa2에서 Aa3으로 한 단계 낮췄다.
무디스의 신용등급에서 Aa3는 네 번째로 높은 등급으로 중상위대인 A1∼A3의 바로 위다. 프랑스의 신용등급 전망은 당분간 지금 그대로 유지될 것을 의미하는 ‘안정적’으로 설정됐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부채 한도 상향을 놓고 20여년 이어진 정치권의 극한 대립에 글로벌 신용평가사 피치는 작년 8월 미국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한 단계 내렸다.
피치는 지난달 ‘정치적 변동성에도 한국의 신용 펀더멘털은 건재하다’ 보고서를 통해 “정치적 위기가 장기화하거나, 정치적 분열이 정책 집행, 경제 성과 또는 재정 관리를 훼손할 경우 하방 압력이 커질 수 있다”고 밝혔다.
기재부 관계자는 “등급이 한 번 떨어지면 다시 올라오기까지의 과정은 힘들다”며 “신뢰 회복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