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연출작 '로비'·'윗집 사람들' 개봉도 앞둬
'브로큰'은 거칠고 생생한 분노의 감정으로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밀어붙이는 작품이다. 동생을 죽인 범인을 찾으려는 한 남자. 그는 복수의 여정에서 동생 동거녀의 비밀과 동생의 죽음을 소설로 쓴 베스트셀러 작가의 존재를 알게 되며 혼란을 겪는다. 민태가 마주한 비밀과 감정의 밀도는 깊고 무겁지만 하정우가 만들어 낸 민태의 얼굴은 건조한 사막 같다. 여기에 예측할 수 없는 분노의 방향이 영화의 긴장감을 조성한다.
'브로큰'은 지난 5일 개봉한 후, 누적 관객 수 20만 명을 채우지 못한 채 고전하고 있지만 하정우의 연기만큼은 큰 이견이 없는 모양새다. 관객들은 날 것의 민태의 모습에서 '추격자', '황해' 속 하정우의 얼굴을 떠올리며 당시의 연기를 그리워하는 반응을 내놓기도 했다.
"초심을 늘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왔는데(웃음) 이런 캐릭터와 영화는 정말 오랜만이네요. 시나리오 받기 전에 제작사 대표를 만나 근황 이야기를 하다 '브로큰' 시나리오를 검토해 달라는 말을 들었어요. 시나리오를 받다 보니 흥미롭더라고요. 보통 텐트폴 영화나 상업적인 영화들은 스토리가 먼저 선행되고 캐릭터는 기능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이 영화는 캐릭터가 먼저 선행되죠. 그래서 자유롭게 연기할 맛이 나는 캐릭터였어요."
2003년 영화 '마들렌'으로 데뷔한 이후 수많은 작품을 거쳐온 하정우지만, '브로큰'은 새로운 환경과 배우들과의 작업이 많았던 작품이다. 익숙한 호흡이 아닌, 처음 만나는 이들과 함께 연기하며 새로운 자극을 받을 수 있었다.
"김진황 감독님과 첫 작업이었고 임성재 씨도 처음 만났어요. 이 촬영장 스태프들도요. 오히려 그런 환경에서 새로운 연기적 포인트를 느끼고는 했어요. 한 신, 한 신 만들어가는 재미가 유독 있었던 작품이었죠. 계산하고 재단하고 꾸미기보다는 투박하게, 자연스럽게 진행하는 촬영 방식도 즐겁더라고요.
민태는 동생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사람도 죽일 수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민태와 석태의 과거 관계가 생략되어 있어, 단순히 가족이라는 이유로 그가 저지르는 범죄 행위를 이해하기 어려운 관객들도 있다. 하정우는 민태의 행동이 단순한 혈연적 유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동생과 얽힌 깊은 감정적 부채에서 나왔음을 강조했다.
"석태는 민태에게 자식 같은 동생이에요. 처음엔 형으로 따랐고, 조직에 들어가고 싶어 했어요. 결국 소개를 시켜줬죠. 그런데 조직 생활을 하다가 사고를 저질렀고, 그 덤터기를 민태가 안고 감옥에 가게 됩니다. 민태가 감옥에 있는 동안 석태는 조직에서 따돌림을 당했고, 결국 가장 해서는 안 될 일들을 하다가 죽음에 이르게 돼요. 민태는 자신이 동생을 그렇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이 있는 거죠."
민태는 극도로 절제된 감정을 가진 인물이다. 그는 감정을 표출하는 대신, 무표정한 얼굴과 침착한 태도로 상황을 장악한다.
"민태는 '전혀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일상의 톤으로만 대하는 캐릭터예요. 진짜 센 사람들은 그렇잖아요. 감정을 낭비하지 않죠. 절대 화를 내거나 감정을 섞지 않고, 필요할 때는 주저 없이 응징하는 인물이에요. 그런 점에서 섬뜩한 느낌을 주죠. 감정이 보이지 않으니까 오히려 더욱 불편할 정도로 잔혹하고 폭력적으로 보이는 것 같아요."
'브로큰'은 사실적인 액션과 강렬한 폭력성을 특징으로 한다. 하정우가 쇠 파이프를 무자비하게 휘두를 때마다 긴장감이 고조된다.
"무술감독님이 잘 디자인해 주셨죠. 감독님이 표현하고자 하는 방향성이 정확했기 때문에 좋은 액션 신이 나왔다고 생각해요. 쇠 파이프를 'ㄱ'자로 꺾어 사용하는 등 참신한 액션 소품이 많았어요. 냉동 생선을 무기로 쓰거나, 주먹을 날렸는데 상대가 의자로 받아쳐서 바다에 던져지는 장면 같은 것들이죠. 주변에 있는 사물을 액션의 도구로 활용한 지점이 굉장히 좋았어요."
하정우는 주연작 누적 관객 수가 1억 명을 돌파해 최연소 1억 배우에 등극하며 국내 대표 흥행 배우로 꼽혔지만 '백두산'을 마지막으로 '클로젯', '비공식작전', '1947 보스톤', '하이재킹'까지 부진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6일 기준 '브로큰'은 18만 명으로 박스오피스 12위까지 밀려났다. 이 작품의 손익분기점은 110만 명으로 사실상 흥행은 참패다.
"예상치 못했던 작품이 흥행에 성공한 작품도 있고, 연달아 안된 시기가 있었던 것처럼 때의 문제인 것 같아요. 늘 최선을 다해 힘을 합쳐 만들고 있을 뿐 특별한 묘책은 없습니다."
하정우는 올해 연출과 주연을 맡은 '로비'와 '윗집 사람들' 개봉을 앞두고 있다. 연기뿐만 아니라 감독으로서도 활동 반경을 넓혀가고 있는 그는, 두 작품을 통해 반등의 기회를 노린다.
"올해 연출작 두 편 개봉 예정인데, 홍보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것 같아요. 이제는 공통의 게시판 같은 게 사라져서, 영화의 장점을 잘 살려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게 중요해졌어요. '로비', '윗집 사람들'이 자리를 잡는 한 해가 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