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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한, 장르를 가로지르는 얼굴 [D:PICK]


입력 2025.02.20 08:46 수정 2025.02.20 08:46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izi 드러머로 데뷔

어떤 작품이든 김준한이 등장하는 순간, 분위기가 달라진다. 캐릭터의 색깔에 따라 긴장감을 불어넣기도 하고, 반대로 깊은 안도감을 전하기도 한다. 그의 연기에는 눈빛과 작은 몸짓은 물론, 대사 한마디 한마디 사이에도 섬세한 감정의 밀도가 채워져있다. 그저 대사를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말과 말 사이의 미묘한 여백까지 감정으로 채우며 장면을 설득력 있게 만들어낸다.


김준한은 2005년 밴드 izi의 드러머로 활동하며 무대 위에서 감정을 전달하는 법을 먼저 익혔다. 그리고 2017년, 영화 '박열'에서 일본인 다테마쓰 법관 역을 맡아 충무로의 주목을 받으며 배우로서 본격적인 출발을 알렸다.


이후 '슬기로운 감빵생활'과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통해 섬세한 내면 연기로 대중에게 존재감을 각인시켰고,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보호자', '리볼버', 쿠팡플레이 '안나' 등에서 각기 다른 얼굴을 보여주며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특히 '안나'에서는 성공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최지훈 역으로 서늘한 모습을 보여주며 호평을 얻었다.


지난해에는 드라마 '굿파트너'로 다시 한번 날개를 달았다. 그가 연기한 정우진은 대한민국 최고의 로펌 대정의 이혼2팀 파트너 변호사로, 실력과 신념을 갖춘 인물로, 강단 있는 변호사 차은경(장나라 분)과 대비되듯, 정우진은 부드러운 목소리와 논리적인 태도로 팀을 이끌어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또한 연극 '타인의 삶' 무대에 오르며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연극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5년 전이 배경이다. 동독의 비밀정보기관이었던 슈타지의 비밀요원 비즐러가 유명 극작가 드라이만을 감시하면서 자신의 인생도 바뀌어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독재와 사회주의 국가들은 예술을 체제 선전의 도구로 삼았고, 불온한 사상을 담은 작품은 검열과 탄압의 대상이 됐다. 김준한이 연기한 극작가 드라이만은 체제에 맹목적으로 충성하지 않으면서도 검열의 선을 넘지 않기 위해 신중하게 작품을 만들어 왔지만, 어느 날 동료이자 연출가였던 예르스카가 체제의 압박에 무너지는 모습을 목격하며 충격을 받는다. 드라이만은 예술가로서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동독 사회에서 금기시되었던 자살 문제를 정면으로 조명하며, 체제의 모순을 고발하는 인물이다.


무대 연기는 카메라 연기와 달리 작은 디테일까지 관객들에게 온전히 전달해야 하는 장르다. 김준한은 김예술을 둘러싼 권력과 진실의 충돌, 그리고 그 안에서 신중한 선택을 내리는 한 예술가의 모습을 펼쳤다.


김준한은 올해도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다. 쿠팡플레이 '뉴토피아'에서 애런 팍 역을 맡아 유쾌한 코미디 연기에 도전한 것. 애런 팍은 좀비 습격을 받은 호텔의 총지배인으로 직업에 사명감과 자부심을 갖고 있는 캐릭터로, 절박한 순간에 예상치 못한 과장된 태도로 웃음을 유발한다. 김준한 특유의 절제된 표정 변화와 타이밍 조절이 빛을 발하며, 블랙코미디 장르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묵직한 감정선, 무대에서의 강렬한 존재감, 그리고 이제는 위트 넘치는 코미디 연기까지 어떤 작품이든 그는 자신만의 색으로 채색하며, 캐릭터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김준한이라는 이름이 적힌 차기작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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