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풍제약 창업주 2세, 악재 전 블록딜로 369억 손실 회피 혐의
미공개 정보 기반 작전 사례 “시장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어”
“신풍에 투자해 1000만원 가까이 잃었어요. 저는 그래도 중간에 나와 불행 중 다행이죠.”
한때 신풍제약 주주였던 직장인 이모(57)씨는 투자금 손실을 피할 수 없었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는 팬데믹 시기 여윳돈을 꾸려 신풍제약에 투자했지만 계속되는 손실에 결국 가지고 있던 주식 모두를 처분했다.
2021년 4월 27일 창업주 일가의 가족 기업이자 신풍제약의 지주사인 ‘송암사’가 시간 외 대량 매매를 통해 200만주를 처분하며, 주가가 15% 가량 폭락했다. 현재 신풍제약 경영진은 당시 미공개 정보를 활용해 주식을 처분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최근 제약 바이오 분야에서 ‘미공개’ 정보로 인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신풍제약 경영진이 임상 실패 정보를 내부적으로 확보한 뒤 주식을 처분한 소식이 전해지며, 종목 토론방에는 공정 거래에 의문을 갖는 주주들의 원성이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는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매수, 매도가 국내 제약 바이오 시장 전체의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조언한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신풍제약 창업주 2세 장원준 전 대표가 검찰에 넘겨졌다. 코로나 치료제 개발에 차질이 발생하자 내부 악재를 외부에 알리지 않은 상태로 주식을 대량 매도해 손실을 회피한 혐의다.
신풍제약은 1990년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중견기업이다. 신풍제약 주가는 여타 제약 바이오 기업과 마찬가지로 의약품 개발, 임상 결과에 따라 등락을 거듭했는데 코로나 치료제 개발 소식이 전해졌을 시기엔 주가가 30배 이상 급등하기도 했다.
당시 신풍제약은 말라리아 치료제 ‘피라맥스’를 코로나 치료제로 개발 진행했다. 그러나 국내 임상 2상에서 평가 지표의 유효성을 충족하지 못하자 소식을 알게 된 장원준 전 대표는 자신과 가족들이 소유한 송암사가 취득한 신풍제약 지분을 블록딜(시간 외 매매) 방식으로 대량 매도했다. 증권선물위원회는 이를 통해 장원준 전 대표가 369억원에 달하는 손실을 회피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신풍제약 측은 “해당 임상 관련 정보는 2021년 7월에 정식으로 공개됐고, 내부적으로 알게 된 시점도 같은 해 5월”이라며 “그 사실을 이용해 4월에 블록딜에 나섰다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계속되는 정보 유출 논란…개미만 ‘눈물’
제약·바이오 산업에서 미공개 정보로 인한 논란은 2002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조아제약 사태 이후에도 수십 년간 끊이지 않고 있다.
2002년 7월 14일 조아제약에서 체세포 복제 돼지 ‘가돌이’가 탄생한다. 장기 이식 연구 등 다양한 응용 분야에 활용할 수 있는 복제 돼지가 탄생하며, 조아제약은 잇따라 상한가를 기록했다. 그러나 금융 당국은 가돌이 탄생 전후로 수상한 주가 흐름을 포착했다. 2002년 6월 26일 4000원대였던 주가가 출산을 앞둔 7월 11일부터 12거래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한 것이다.
금융감독원은 증권업협회로부터 통보받은 미공개 정보 이용이 의심되는 계좌 수십개를 바탕으로 조사에 착수했다. 그 결과 2002년 7월 11일 오전 열린 복제 돼지 출산 대책회의에 참석한 관계자 5명 중 일부가 정보를 유출한 사실이 드러났다.
2016년 9월 30일 한미약품에서도 미공개 정보 유출이 의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한미약품과 베링거인겔하임의 항암제 기술 수출 계약이 해지 됐다는 공시 직전에 5만471주의 공매도가 이뤄진 것이다. 공매도는 주가 하락이 예상될 때 주식을 빌려와 판 뒤 나중에 더 싼 값에 되사들여 갚는 식으로 차익을 챙기는 전략이다. 따라서 악재가 공개된 이후에 공매도가 늘어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전날 1조원 규모의 표적 항암제 기술수출 계약이라는 호재성 공시로 장 초반 오름세를 타고 있던 주식을 장이 열리자마자 공매도에 나섰다는 점에서 이들이 사전에 악재를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많은 투자자들이 몰린 국내 제약·바이오 시장은 임상 결과나 신약 개발, 기술 수출과 같은 성과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정보가 곧 기업의 주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에 미공개 정보에 대한 보안이 철저히 이뤄져야 하지만, 내부 관계자와 경영진들이 이를 악용한 불공정 거래가 지속적으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제약·바이오 업계는 시장 전반적인 신뢰도가 하락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국내 한 제약사 관계자는 “미공개 정보 활용, 성과 부풀리기 등 윤리적 경영 원칙을 지키지 않는 일부 기업으로 인해 전체 산업 이미지가 소위 말하는 ‘사짜’로 전락하고 있다”며 “원칙에 따라 운영하는 기업들까지 손해를 보게 된다”고 말했다.
윤동열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최대한 많은 주식을 보유해 경영권을 방어해야 할 오너가 이를 처분했다는 것은 사전에 기업에 좋지 않은 리스크를 알고 있었다는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다”며 “이는 고스란히 개인 투자자들의 손해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윤동열 교수는 이어 “한국 제약·바이오 기업은 미국에 비해 규모가 작아 거품 상장에 성공한 사례도 많다”며 “이로 인해 임상, 신약 개발 소식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