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를 통해 상업영화 뿐 아니라 독립, 단편작들을 과거보다 수월하게 만날 수 있는 무대가 생겼습니다. 그중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부터 사회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메시지까지 짧고 굵게 존재감을 발휘하는 50분 이하의 영화들을 찾아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하교 길, 도아는 슈퍼에서 아이스크림 냉장고를 열어 아이스크림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말소리를 듣는다. 아이스크림이 자신이 모든 것을 얼려버릴 테니 더 이상 무서워할 필요 없다고 도아에게 말을 건넨다. 도아는 소매에 아이스크림을 넣고 재빨리 집으로 돌아온다.
이불을 뒤집어쓴 도아는 "얼음"이라고 외치며 자신을 괴롭히는 트라우마를 떠올린다.
어린 시절, 도아는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한 남성에게 성추행을 당한다. 충격을 받은 도아는 엄마에게 이 사실을 말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라는 차가운 반응뿐이다. 사랑과 위로를 기대했던 도아는 상처받고, 결국 엄마를 얼려버린다.
도아는 또 다른 기억 속으로 자신을 데려간다. 장소는 학교 운동장. 친구들과 얼음땡 놀이에 열중하던 도아는 멀리서 한 남성을 발견한다. 그는 과거 엘리베이터에서 자신을 성추행한 남성이었다. 그날, 남성은 도아에게 “지금부터 내가 얼음 하면, 넌 절대 움직이면 안 돼”라고 강압적으로 말했다.
그날 이후, 도아는 트라우마 속에서 ‘얼음’처럼 갇힌 채 살아왔다. 아무도 그녀를 ‘땡’해 주지 않는 일상. 하지만 아이스크림의 위로를 통해 도아는 자신의 트라우마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스스로 그날의 기억 속에서 자신을 녹이며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 영화는 성폭력 피해자가 겪는 트라우마의 본질과 회복 과정을 은유적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얼음’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피해자가 겪는 정지된 시간과 감정의 마비, 그리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이 상징적으로 표현됐다.
먼저, ‘얼음’은 도아의 트라우마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요소다. 실제 현실에서도 이 말을 내면화한 채 스스로를 얼려버리고, 고립된 상태에서 외롭게 살아가게 된다. 피해자가 자신의 경험을 말하지 못하고, 그 사건이 삶의 일부처럼 굳어져 버리는 모습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다.
영화는 가정 내 보호자의 역할에 대한 비판도 담고 있다. 이는 피해자가 가족으로부터 충분한 보호와 공감을 받지 못할 때, 사회적 고립감이 더욱 깊어진다는 현실적인 문제를 반영한다. 도아가 아이스크림을 통해 자신을 얼려버리는 것은, 주변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피해자가 결국 자기 스스로를 단절시키며 방어 기제를 형성하는 과정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영화는 도아가 단순히 얼어 있는 상태로 끝나지 않고, 결국 자신의 트라우마를 ‘녹이는’ 과정을 담으며 희망적인 메시지를 던진다.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과정을 얼음땡 놀이를 메타포로 활용하여, 피해자가 다시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을 담백하게 그렸다. 이러한 점에서 영화는 피해자의 상처를 바라보는 방식뿐 아니라, 그들이 자신을 구원할 힘을 가질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까지 알차게 전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