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업 법안·노사 갈등·수출 위기...부담 가중
노동·통상 압박 속 출구 찾기 어려운 기업들
수출·투자환경 악화...기업도 한국 경제도 ‘흐림’
국내 기업들이 규제 리스크와 노사 갈등, 대외 통상 압박이 맞물린 복합 위기에 직면했다. 경영권과 둘러싼 법 개정 논의가 지속되는 가운데 노조와의 충돌과 미국발 관세 부담까지 겹치면서 경영환경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28일 재계에 따르면 야당이 추진해 온 상법 개정안이 전날 국회 본회의 처리를 앞두고 보류되며 기업들은 규제 부담을 일시적으로 덜었다. 그러나 여야 간 이견이 큰 만큼 추가 논의가 예정돼 있어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처리하려던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외에도 소액 주주들이 원하는 이사의 선출 가능성을 높여주는 ‘대기업 집중투표제 의무화’, 지분을 3% 넘게 보유한 주주의 이사 선임 의결권을 제한하는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 등 주로 주주의 권리를 확대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재계는 소액주주 보호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정상적인 경영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강하게 반대해왔다. 기업들은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경영진을 상대로 한 소액주주들의 소송이 빈번해지고 외국계 헤지펀드들의 경영권 공격에 악용될 수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이에 국민의힘은 전체 법인이 아닌 상장 법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을 절충안으로 제시한 상태다. 다만 관련 법안을 둘러싼 여야 간 대립이 지속되면서 법 개정 논의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
재계 한 관계자는 “기업은 연구개발과 신사업 투자, 글로벌 경쟁력을 고려한 전략적인 결정을 해야 하는데, 이번 개정안이 그대로 통과되면 이사회의 경영적 판단이 어려워져 중장기적으로 기업가치가 훼손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민주당이 최근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을 재발의하고 당론으로 추진하면서 기업들은 노사 갈등 악화를 우려하고 있다. 하청 노동자에 대한 원청 사용자의 책임 강화와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 제한 등의 내용을 담고 있어 재계의 반발이 큰 법안 중 하나다.
노조 파업이 이어지자 일부 기업들은 경영 피해를 줄이기 위해 직장 폐쇄라는 강수를 두고 있다.
현대제철은 노조의 성과급 요구와 파업이 장기화하자 지난 24일 창사 이래 처음으로 부분 직장 폐쇄를 단행했다. 회사 측은 지난 1~22일 노사분규로 냉연 부문에서 약 27만톤가량의 생산 손실이 발생해 손실액이 254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현대제철 노사는 작년 9월 임단협 교섭을 시작했으나 현재까지 이견을 좁히지 못해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져있다. 앞서 노사 협상에서 사측은 적자전환을 감수하고 ‘기본급 450%+1000만원’을 제시했지만 노조는 그룹사인 현대차 수준에 맞춰 달라며 총액 기준 4000만원대 수준을 요구하고 있는 상태다.
국내 정치권에서 반기업 법안이 잇따라 추진되는 가운데 대외 통상 압박도 기업들의 추가적인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국내 주요 기업들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에 대응하기 위해 미 의회 로비 비용을 역대 최대 규모로 확대하며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보호무역주의 확산 속에서 돌파구 마련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미국 시장의 관세 불확실성뿐 아니라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시행도 국내 기업들에게 추가적인 과제로 남아있다. NH투자증권은 국내 철강업체들이 CBAM으로 인해 부담해야 할 추가 비용이 약 851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에 재계는 법적 규제와 대외 변수까지 고려해 비용 절감과 수출 시장 다변화 등 실질적인 생존 전략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기업들의 어려움이 가중되면서 한국 경제 전반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강병준 한국 신용평가위원은 “관세 부과 정책에 따른 대미 수출 감소와 여타 지역에서의 경쟁 심화로 인해 수익성 감소 가능성이 있다”며 “내수 경기 부진과 해외 투자 증가로 소비 부진이 장기화될 가능성도 있어 당분간 한국 경제의 저성장 기조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