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디지털 은'으로 불리며 업계 선도 평가 받았지만
트럼프 당선 후 '상승장' 놓쳐...현재는 당선 전보다도 하락
경쟁 가상자산 부상·업그레이드 지연·재단 태도 등 문제 지적
가상자산 시장 시가총액 2위 이더리움(ETH)의 가격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시장 상승 사이클(불장)에서도 이더리움의 상승폭은 제한적이었다. 여기에 최근 미국발(發)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하락세가 더욱 두드러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생태계 전반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더리움은 19일 오후 1시30분 기준 전 세계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바이낸스에서 전날 종가 대비 0.05% 하락한 1930 달러(업비트 원화마켓 기준 283만원)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현재 가격은 2023년 11월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더리움은 지난해 1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진행된 가상자산 시장 상승 사이클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비트코인은 지난해 11월 5일 6만7000 달러에서 올해 1월 20일 11만 달러 근처까지 약 64%대 상승률을 보였지만, 이더리움은 같은 기간 2400 달러에서 약 3300 달러(직전 고점은 지난해 12월 16일 4100달러 선)까지 37.5% 상승하는 데 그쳤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 전과 현재 가격을 비교했을 때도 비트코인은 약 24% 상승했지만, 이더리움은 약 19% 하락했다.
가상자산 업계에서 이더리움이 차지하는 위치는 특별하다. 이더리움은 비트코인과 달리 프로그래밍 가능한 소위 '스마트 컨트랙트' 기능을 최초로 지원한 가상자산이다. 스마트 컨트랙트를 통해 탈중앙화 금융(디파이), 대체불가토큰(NFT), 탈중앙화 거래소(DEX) 등이 구현됐다. 대부분은 현재까지도 시장 핵심 기능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들이다. 이더리움은 생태계에 각종 기능을 추가하고 개선해온 만큼, '디지털 금'이라 불리는 비트코인과 비교해 쓰임새가 많다는 의미로 '디지털 은'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더리움의 가격 부진이 지속되면서 시장 내 입지도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웹3 리서치 기업인 언디파인드랩스는 최근 발표한 '이더리움, 이제 진지하게 생각할 때'라는 보고서에서 "이더리움은 시장 수요에 맞춰 진보적 변화를 수용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장기 침체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보고서는 "이더리움 생태계는 ▲토큰 가격 관련 논의를 회피하고 ▲타 가상자산에 비해 입지가 애매하며 ▲재단이 이에 개입하지 않는 방임주의 등 문제점에 휩싸여 있다"며 "여러 문제점에 따라 이더리움의 입지는 점차 약해지고 있으며, 솔라나(SOL)나 수이(SUI) 등 다른 블록체인에 시장 선호도와 개발자들을 빼앗기고 있다. 진보적 변화와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연기를 지속하고 있는 네트워크 업그레이드도 구설수에 오른 상태다. 이더리움 재단은 지난해부터 새로운 트랜잭션 유형을 지원하고 가스 수수료 처리량 자동조절 등을 지원하는 '펙트라 업그레이드'를 예고해왔지만 기존 일정을 지속 연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글로벌 가상자산 거래소 비트겟은 "이더리움은 개발 속도보다 안정성을 중시하고 있지만, 이는 결국 보유자들의 투자 심리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개발자들이 완벽을 추구하는 자세는 좋지만, 이번 처사가 빠르게 변하는 블록체인 업계에서 안정성과 유연함의 균형을 고려한 것인지는 미지수"라고 평가했다.
그동안 가격 상승을 견인해온 미국 상장지수펀드(ETF)에서의 자금 유출도 지속되고 있다. 금융정보 플랫폼 파사이드 인베스터 데이터에 따르면, 미국 이더리움 현물 ETF 9종에서는 전날(현지시간 17일)까지 9거래일 연속 순유출이 나타났다.
이더리움 현물 ETF는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이 운용하는 상품으로, 투자자들이 매수·매도한 양의 가중 수치 만큼의 이더리움을 매입·매각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더리움 현물 ETF에서 자금이 유출되고 있다는 것은 투자자들이 해당 상품을 팔아치우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더리움의 장기적 강세를 전망했던 글로벌 은행 스탠다드차타드도 기존 입장을 바꿨다. 스탠다드차타드는 최근 보고서에서 "이더리움의 올 연말 목표가를 1만 달러(약 1500만원)에서 4000 달러(약 600만원)으로 하향한다"며 "이더리움은 현재 여러 지표상 우위를 점하고는 있지만, 우위는 점차 약해지고 있다. 이더리움 재단이 비즈니스 모델을 전환할 필요가 있지만 실현 가능성은 낮다"고 내다봤다.
이어 "이더리움 1개당 비트코인 비율(ETH/BTC)은 현재 0.023 수준이지만 오는 2027년이면 0.015까지 내려갈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