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웅제약 ‘베르시포로신’ 기술 수출 계약 해지
유한양행 MASH 치료제 후보 물질 반환 통보
“기술 반환 악재 아닌 기회 될 수 있어”
올해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기술 반환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일반적으로 기술 반환은 신약 후보 물질의 개발 가능성이 낮다는 평가를 받은 것으로 간주돼 기업에게는 악재로 작용한다. 하지만 업계는 기술 반환이 무조건 신약 개발 실패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며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대웅제약은 지난달 28일 중국 CS파마슈티컬스로부터 섬유증 질환 치료제 ‘베르시포로신’에 대한 기술 수출 계약 해지 의향을 통보 받았다. 계약 규모는 4000억원으로 120일 이후 계약이 자동 종료될 예정이다.
베르시포로신은 PRS 저해 기전을 기반으로 한 섬유화 질환 신약 후보 물질이다. 콜라겐 생성에 영향을 주는 PRS 단백질 작용을 감소시켜 섬유증의 원인이 되는 콜라겐의 과도한 생성을 억제한다.
대웅제약은 2023년 1월 베르시포로신의 중국 내 개발과 상업화 권리를 이전하는 조건으로 CS파마슈티컬스와 기술 이전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별다른 진전 없이 계약이 해지되며 임상 단계에 따른 마일스톤 860억원과 상업화 이후 받는 마일스톤 3195억원, 순 매출액에 비례하는 로열티를 지급 받지 못하게 됐다.
대웅제약은 CS파마슈티컬스에 베르시포로신을 기술 이전하며 중화권 진출을 계획했으나 이번 기술 반환으로 전략을 다시 모색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대웅제약 관계자는 “향후 개발 계획이나 전략 변경에 대해 구체적으로 결정된 사항은 없다”면서도 “수령한 선급금 74억원은 반환 의무가 없어 재정적 손실은 제한적”이라는 입장이다.
앞서 유한양행도 지난 3월 베링거잉겔하임으로부터 신약 후보 물질 반환을 통보 받았다. 반환된 ‘BI3006337’은 2019년 유한양행이 베링거인겔하임에 기술 이전한 대사 이상 지방 간염(MASH) 치료제 후보 물질로 현재 임상 1상까지 완료됐다.
MASH는 알코올 섭취와 관계없이 간세포에 지방이 쌓이면서 염증을 일으키는 질병이다. 심각할 경우 간경화까지 진행될 수 있지만 아직 뚜렷한 치료제가 없다. 유한양행은 기술 반환에도 불구하고 MASH 치료제에 대한 수요가 꾸준하다는 점, 임상 1상을 통해 안전성이 확인됐다는 점을 고려해 해당 물질 개발을 지속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유한양행 관계자는 “현재 베링거인겔하임으로부터 BI3006337 관련 데이터를 받고 있는 상황”이라며 “자체 개발이나 새로운 파트너사 모색 등 여러 가능성을 열고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는 기술 반환이 곧 개발 실패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현재 미국 FDA(식품의약국) 허가를 받아 블록버스터 진입을 노리고 있는 유한양행의 ‘렉라자’도 개발 초기 당시 부침이 있었다.
유한양행은 2016년 중국 제약사 뤄신에 렉라자 기술 수출을 결정했지만 약 5개월 만에 계약이 해지된 적이 있다. 세부 계약 사항을 합의하는 과정에서 중국 기업 측의 계약 불이행으로 기술 이전이 무산된 것이다. 그러나 2018년 글로벌 빅파마 얀센과의 기술 수출이 성사되면서 중국 제약사와의 계약 해지는 기회로 작용했다.
반환 이후 자체 개발로 방향을 바꿔 성과를 거둔 사례도 있다. 한미약품은 2015년 당뇨병 신약 후보 물질 ‘에피노페그듀타이’를 얀센에 이전했다가 2019년 반환 받았다. 한미약품은 이후 해당 물질을 MASH 치료제로 자체 개발해 2020년 미국 머크와 1조원이 넘는 규모의 기술 수출 계약을 맺는데 성공한다.
이번에 기술 반환된 대웅제약의 베르시포로신 또한 중화권 외 글로벌 진출에는 큰 차질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베르시포로신은 2022년 다국가 임상 2상을 승인 받아 현재 한국과 미국에서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독립적 데이터 모니터링 위원회(IDMC) 회의에서도 베르시포로신의 안전성 데이터를 심층 검토한 결과 큰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아 임상 지속을 권고 받았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기술 반환이 단기적으로는 주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악재로 작용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기회가 될 수도 있다”며 “반환 이후 새로운 파트너사를 만나거나 적응증을 바꿔 성공적으로 신약을 개발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