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YP엔터테인먼트와 하이브가 각각 2020년과 2022년 만든 니쥬(NiziU)와 앤팀(&TEAM), SM엔터테인먼트가 선보인 엔시티 위시(NCT WISH) 등 국내 엔터테인먼트의 일본 현지화 그룹들이 성공적인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사이, 최근엔 일본 기획사가 직접 케이팝(K-POP) 요소를 적극적으로 도입해 제작한 아이돌 그룹을 한국에서 데뷔시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그룹 원 오어 에이트(ONE OR EIGHT)와 코스모시(cosmosy)와 같은 그룹들은 이러한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이들은 일본 기획사에 의해 제작되었음에도 한국에서의 데뷔를 선택했으며, 스스로를 “케이팝과 제이팝(J-POP)의 영향을 모두 받았다”고 소개하며 정체성의 복합성을 드러낸다.
먼저 지난해 8월 일본 에이벡스가 제작한 전원 일본인 구성의 8인조 보이그룹 원 오어 에이트는 지난 달 26일 한국에서 정식 데뷔했다. 코스모시 역시 일본 최대 이동통신사 NTT 도코모가 엔터테인먼트업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케이팝 시스템을 도입해 제작한 전원 일본인 구성의 4인조 걸그룹이다. 지난 11일 한국에서 정식 데뷔했다.
애초 데뷔 전부터 한국 데뷔를 계획했던 것도 공통점이다. 두 그룹이 모두 데뷔 전 한국과 일본에서 트레이닝 기간을 거친 것이다. 특히 코스모시의 데뷔 프로젝트에는 블랙핑크의 데뷔 당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비롯해 르세라핌, 레드벨벳, 아이브, 아이유, 에스파,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등 수많은 케이팝 아티스트의 작품을 다룬 글로벌 음악 신에서 활약하는 크리에이터들이 다수 합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케이팝이 구축해 온 고유한 시스템과 글로벌 영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전략적 판단이 작용한 결과로 해석된다. 케이팝의 영향력이 단순한 콘텐츠 소비를 넘어 제작 시스템과 글로벌 진출 전략으로까지 확장되었다는 의미다. 원 오어 에이트 역시 한국 데뷔 쇼케이스 당시 “케이팝과 제이팝 모두의 영향을 받아 우리만의 음악을 만들고, 월드 투어를 돌 수 있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 “한국에서 데뷔하기 위해 지금까지 준비했다. 앞으로 일본과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활동할 예정”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일본 기획사들이 한국을 데뷔 무대로 선택하고, 나아가 글로벌 시장 진출의 교두보로 삼는 이유는 명확하다. 케이팝 산업이 보유한 체계적이고 고도화된 아이돌 제작 시스템을 활용하고, 케이팝 팬덤 기반 플랫폼을 통한 강력한 팬 결속력을 통한 부가적 수익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케이팝의 인프라를 활용함으로써 자국 내 활동만으로는 확보하기 어려운 글로벌 노출 기회와 팬덤 형성 가능성을 모색하는 셈이다.
한 케이팝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일본 기획사들이 한국을 통해 일본인 그룹을 데뷔시키는 건, 결과적으로 글로벌 진출을 위한 수단”이라며 “그 자체로 케이팝의 위상과 영향력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이들의 한국에서의 데뷔는 케이팝 본고장에서의 성공적 안착이라는 상징성을 갖게 되고, 이는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 확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를 내포한다”고 분석했다.
다만 이들의 정체성엔 의구심을 내비치기도 한다. 이 관계자는 “가장 핵심적인 것은 이들 그룹의 정체성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의 문제”라며 “일본 자본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사실상 케이팝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국에서 데뷔하는 이들을 ‘제이팝’으로 분류하는 건 무리가 있고 전통적 케이팝 그룹의 범주에 두기도 애매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같은 요소가 차별점이 될 수 있지만 모호한 정체성으로 양쪽 시장 모두에서 온전한 지지를 얻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이를 극복하고 설득력을 얻는 것이 관건”이라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