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과 팬들에 대한 배려 없는 일방적 이별
마지막까지 진솔했던 귀네슈와 대조적
파리아스 감독이 결국 포항을 떠났다.
K리그 포항 스틸러스를 5년간 이끌어온 세르지오 파리아스 감독은 다음 시즌부터 사우디 알 아흘리의 지휘봉을 잡게 됐다.
파리아스 감독이 받는 연봉은 무려 250만 달러(약 30억원)로 올 시즌 포항에서 받던 연봉(40만달러)의 6배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철저한 프로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감독이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팀을 따라 이동하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떠날 때 떠나더라도, 5년간 열정을 쏟은 팀과 그 팀의 팬들에게 좀 더 떳떳하고 깨끗한 이별의 매너를 보여줄 수는 없었는가 하는 아쉬움이다.
파리아스 감독은 사실 박수 받으며 떠날만한 자격이 충분한 감독이다. 2005년 무명의 브라질 지도자로 한국 땅을 밟은 이후 5년간 K리그와 컵대회, FA컵, AFC 챔피언스리그 등 한국축구에서 거둘 수 있는 우승컵을 싹쓸이하며 포항을 아시아의 명가로 발돋움시켰다.
스타플레이어 없이도 짜임새 있는 공격축구와 아름다운 패싱 게임으로 상대를 무력화시키는 용병술은 파리아스 매직이라는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파리아스 감독이 비록 포항을 떠났다 해도 그가 역대 최고의 외국인 감독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파리아스 감독은 올해 포항과 재계약을 맺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일방적인 이별을 통보, 자신을 지지하던 구단과 팬들에게 뒤통수를 쳤다.
클럽월드컵 기간 사우디로의 이적설이 처음 거론됐을 때만 하더라도 근거 없는 소문이라며 일축했지만, 결과적으로 거짓말을 한 셈이 됐다. 게다가 이전 소속팀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도 해명도 없었다. 단지 외국인과 한국간의 정서적 차이라기에는 뒷맛이 씁쓸하다.
파리아스 감독의 이별 매너는 역시 올 시즌을 끝으로 한국축구와 작별했던 터키 출신의 세뇰 귀네슈 전 서울 감독을 연상시킨다.
귀네슈 감독은 한국무대에서 무관에 그치며 파리아스 같은 눈부신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떠나는 순간까지 전 소속팀에 대한 애정과 배려를 잊지 않았다. 한국을 떠나자마자 터키 트라브존스포르의 지휘봉을 잡기는 했으나 이미 그때는 서울과의 결별이 확정된 시점이었다.
귀네슈 감독은 한국에서의 3년간 직설적인 언행과 쓴소리로 프로연맹이나 타 구단과 마찰을 빚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 한국축구에 대한 애정이 밑바탕 됐기에 가능한 발언이었다.
고별 기자회견 때도 귀네슈 감독은 자신을 둘러싼 그간의 행적에 대해 인정할 부분은 인정하고, 사과할 부분은 사과하면서 특유의 진솔한 모습과 소신을 잃지 않았다.
귀네슈 감독이 한국무대에서 단 하나의 우승컵도 들지 못했음에도 팬들이 그를 명장으로 기억하고 작별을 안타까워했던 것은, 그가 행동으로 보여준 프로 의식과 한국축구에 대한 진정성 때문이 아니었을까.
정작 귀네슈 감독보다 더 한국 축구에 잘 적응했고, 한국 정서에 대한 이해가 빨랐다고 평가받았던 파리아스 감독은 떠나는 순간, 철저한 이해타산에 따라 움직이는 이방인의 정서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과연 파리아스는 좀 더 당당하고 깨끗하게 이별을 고할 수는 없었던 것일까. [데일리안 = 이준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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