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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면 충신, 지면 역적’ 일본만도 못한…


입력 2011.12.15 08:49 수정         이충민 객원기자 (robingibb@dailian.co.kr)

일희일비 결과에만 집착, 감독 교체 만병통치?

사우디 추락-일본 상승세..축구협회 철학도 영향

쿠엘류, 본프레레, 베어벡, 조광래 전 대표팀 감독 모두 그들이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기까지 모두 인내가 필요했다.

‘중동축구 자존심’ 사우디아라비아는 2010 아시안컵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일본에 0-5 대패, 3전 전패로 예선탈락 했다.

아시아 정상급 사우디의 믿을 수 없는 성적의 배경에는 국가대표 일부 선수들의 암묵적 항명이 있었다. “이기면 충신, 지면 역적”이라는 옛말이 그대로 적용되는 냉혹한 대표팀 운영방식에 불만을 터뜨린 것이다. 결국, 일부 선수들은 일본전에서 태업으로 일관하며 참패를 불렀다.

주제 페세이루 전 사우디 감독은 아시안컵 예선 1차전 패배로 경질되기 전까지만 해도 선수들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받았다. 선수들은 비록 한 수 아래로 여겼던 시리아에 패했지만 페세이루의 지도력을 믿었다.

특히, 간판 공격수 야세르 알카타니를 비롯한 사우디리그 명문 알 힐랄 소속 선수들은 페세이루 감독을 스승으로 여기며 따랐다. 페세이루는 2006년부터 2007년까지 알 힐랄 사령탑으로 재직, 주축 선수들의 면면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페세이루가 시리아전을 끝으로 경질되자 선수들은 대표팀 수뇌부의 ‘조급한 결단’에 반발했고, 이는 결국 잔여 예선경기들(요르단, 일본)까지 그르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한 경기 결과에 일희일비 하며 감독교체를 밥 먹듯 하는 고질병은 축구계에 만성화됐다. 문제는 사우디 몰락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쩌면 현재 한국대표팀도 사우디의 잘못된 길을 따라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국은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 직후, 쿠엘류-본프레레-아드보카트-베어벡-허정무-조광래까지 수시로 감독이 바뀌었다. 이는 일본과도 비교된다.

일본대표팀은 지난 2002년 한국월드컵 직후부터 지코-오심-오카다-자케로니(현 일본 감독)로 이어지는 단출한 계보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취임한 이탈리아 출신 명장 알베르토 자케로니는 임기가 4년이나 보장됐다. 오구라 일본축구협회 회장은 자케로니에게 “2014 브라질월드컵 본선까지 팀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다.

이는 전 대표팀 감독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됐다. 2000년부터 2002년 한국월드컵까지 올림픽대표와 국가대표를 총 지휘한 트루시에 체제가 막을 내린 직후 ‘하얀 펠레’ 코임브라 지코(브라질)가 취임해 2006 독일월드컵을 책임졌다.

이후 J리그를 평정한 이비차 오심이 사령탑에 올랐지만 건강악화로 하차하면서 잠시 고민에 빠지기도 했지만, 금세 ‘현명한 수’를 놓았다. 1998 프랑스 월드컵을 이끌었던 오카다 다케시 감독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준 것이다.

오카다는 오구라 축구협회 회장의 전폭적인 신임 속에 일본을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 반열에 올려놨다. 오카다호의 과정이 최악이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오카다를 끝까지 믿어준 일본 기술위원회의 지혜와 인내심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2002 한국 축구대표팀도 결코 순탄한 과정을 밟지는 못했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보낸 끝에 전 국민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남길 수 있었다. 그러나 히딩크가 떠난 이후 축구협회는 끊임없이 악수를 두며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특히, 2007 아시안컵 본선에서 한국을 3위에 올려놓은 핌 베어벡 감독이 외압에 무너지며 ‘자진사퇴’한 일은 두고두고 아쉽다.

베어벡호 성과는 ‘철옹성 포백 수비진’이었다. 히딩크도 이루지 못한 4명의 견고한 수비진을 베어벡은 완벽에 가깝게 정비했다. 당시 답답한 공격력이 논란거리였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축구팬들의 오판으로 드러났다.

여러 개 굵직한 프로젝트는 하나하나씩 순서대로, 순리대로 완수해야 한다.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진행하면 이도저도 아닌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감독 취임 직후 아시안컵을 치렀던 아주 짧은 시간임을 감안하면, 베어벡의 1차 목표였던 안정된 수비진 구상 프로젝트는 성공한 셈이다. 조금 더 기다려줬어야 한다.

쿠엘류, 본프레레, 베어벡, 조광래 전 대표팀 감독 모두 그들이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기까지 모두 인내가 필요했다. 히딩크호라는 모범사례가 있음에도 당장 한 경기 한 경기에 민감하게 반응한 건 아쉬움이 크다.

조광래호는 그동안 체력축구만 강조하던 한국축구에 생소한, 그러나 영리한 점유율 패스축구를 도입하는 과정이었다. 패스축구가 정착되면 쓸데없이 많이 뛰는 소모적인 축구는 필요할 때 힘을 몰아 쓰는 ‘효율축구로 진화’할 수도 있었다.

이기면 충신, 지면 역적이 되는 한국축구에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까. 스포츠세계에서 강한 자가 정의가 된다는 말은 당연하지만, 고난을 견뎌낼 줄 알아야만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다. 조광래호 과정은 굴곡의 연속이었지만, 분명한 철학이 있었다. 목적의식을 관철하기 위한 세밀한 움직임이야말로 '개발도상국 축구'에서 완전한 선진축구로 도약하는 지름길 중 하나였다. 조광래호 섣부른 경질이 아쉬운 이유다. [데일리안 스포츠 = 이충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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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민 기자 (robingibb@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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