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 신공’ 첼시 감독 잔혹사 재해석
아브라모비치 앞 명장들도 파리목숨
첼시 감독 잔혹사, 얻은 것과 잃은 것
[데일리안 스포츠 = 이준목 기자]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한 첼시는 최근 몇 년간 ‘명장들의 무덤’으로 악명 높았다.
조제 무리뉴,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아브람 그랜트, 카를로 안첼로티, 안드레 비야스 보아스 같이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명장들도 로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 앞에서는 언제든 바꿔 끼우기가 가능한 장난감에 불과했다.
구단주 팀 운영 방식에 반기를 들거나, 기대만큼의 성적을 내지 못하는 감독들은 결코 오래 기다려 주지 않았고, 분위기 전환을 노린 감독교체 신공의 희생양이 되곤 했다. 지금까지 감독경질 이후 보상금으로 지급한 돈만 해도 약 1300억이 넘는 엄청난 비용이었다.
이러한 즉흥적이고 빈번한 감독 교체는 팀 운영의 안정성을 해치고 구단의 장기적인 리빌딩을 어렵게 만든다는 점에서 아브라바모비치를 비판하는 단골 메뉴로 거론돼 왔다. 하지만 단기적인 효과 면에서는 이러한 감독교체가 팀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성적을 끌어내는 전환점이 됐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감독교체가 신의 한 수였다?’ 첼시 감독 잔혹사 재해석
2003년 첼시에 아브라모비치 시대가 시작될 당시 첫 감독은 클라우디오 라니에니였다. 라니에리는 2003-04시즌 첼시를 프리미어리그 준우승과 챔피언스리그 4강까지 이끌었지만 결국 처음부터 라니에리 능력을 탐탁찮게 생각하던 구단주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시즌 종료와 함께 경질됐다.
아브라모비치의 선택은 당시 포르투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며 주가를 올리고 있던 젊은 명장 조제 무리뉴였다.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무리뉴는 부임 첫 시즌에 첼시를 50년 만에 리그 정상에 올려놓은 것을 비롯해 2007년까지 3년 동안 리그 우승 두 차례, FA컵 우승, 칼링컵 2회 우승이라는 눈부신 성과를 안겼다.
그러나 마지막 남은 숙제인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연이어 실패한 데다 선수단 운영에 관한 아브라모비치의 간섭이 심해지자 결국 팀을 떠나야했다.
무리뉴가 떠나고 첼시의 감독대행으로 선임된 것은 당시 기술 단장으로 있던 아브람 그랜트였다. 전임자들에 비해 초라한 경력의 그랜트는 부임과 동시에 감독 자격과 능력에 대한 끊임없는 의문부호에 시달렸고 선수단 반응도 시큰둥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랜트로의 감독교체도 결코 실패작은 아니었다.
그랜트는 어수선한 팀을 재정비해 팀을 결국 리그 2위로 이끌었고, 특히 사상 최초로 챔피언스리그 결승진출에 성공했다. 비록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승부차기 혈전 끝에 우승 문턱에서 좌절했지만 존 테리의 뼈아픈 실축이 아니었다면 그랜트 경력도 뒤바뀌었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처음부터 시한부 감독에 불과했던 그랜트는 공식적으로 무관에 머문 것에 대한 책임을 물어 경질됐고, 2008년 여름 브라질의 월드컵 우승을 이끈 명장 루이스 펠리프 스콜라리가 등장했다.
하지만 2008-09시즌 첼시는 후반기 들어 성적이 곤두박질쳤고, 선수단과의 불화까지 겹쳐 결국 스콜라리는 한 시즌도 못 채우고 팀을 떠나야했다. 여기서 대타로 등장해 첼시를 구원한 게 바로 거스 히딩크 감독이다.
히딩크 감독은 아브라모비치 체제의 첼시에서 이미지를 구기지 않고 떠난 유일한 감독이다. 아브라모비치와의 친분으로 처음부터 ‘3개월 단기 감독’ 계약을 맺고 등장한 히딩크 감독은 당시 러시아 대표팀을 동시에 이끌며 ‘투잡스 감독’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추가했다.
비록 리그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스콜라리 체제의 혼란을 청산하고 선수단을 정상궤도에 돌려놓았을 뿐 아니라, 팀을 다시 한 번 챔피언스리그 4강에 올려놓았다. 바르셀로나와의 준결승전에서 석연치 않은 심판 판정만 아니었다면 2년 연속 결승행도 가능했다는 점에서 히딩크 감독은 비판의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히딩크 감독은 그해 FA컵 우승컵을 선사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고, 그가 재임하던 시절의 첼시는 모든 대회를 합쳐 15승 5무 1패라는 경이적인 승률을 기록했다. 선수단은 물론 아브라모비치 역시 계약 연장을 원했지만, 히딩크 감독은 미련 없이 러시아 대표팀 복귀를 선언했다.
시즌 중 감독교체 효과, 논란 있어도 실패 없다?
2009년 여름 아브라모비치는 AC밀란에서 두 차례나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성공한 카를로 안첼로티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안첼로티는 부임 첫 시즌에 리그와 FA컵 우승으로 더블을 달성했지만 챔피언스리그에서는 16강에 머물렀다.
이듬해는 8강에서 라이벌 맨유 벽에 막혔고, 리그 우승도 실패해 아브라모비치 체제 이후 처음으로 무관에 머물렀다. 시즌이 끝나고 아브라모비치는 예상대로 안첼로티를 경질하고 그해 포르투의 트레블을 이끈 ‘리틀 무리뉴’ 안드레 비야스 보야스 감독을 영입했다.
무리뉴 감독 시절 첼시에서 전술분석관을 지낸 보야스 감독은 제2의 무리뉴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결과는 제2의 스콜라리였다. 무리한 선수단 개편과 세대교체 정책으로 베테랑 선수들과 불화를 빚은 보야스 감독은 리그와 챔피언스리그 무대에서의 연이은 부진이 겹치며 결국 스콜라리와 마찬가지로 한 시즌을 채우지 못하고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보야스 감독 경질 이후 디 마테오가 감독대행을 맡으며 나타난 첼시의 변화는 역시 시즌 중 교체 사례인 무리뉴-그랜트, 스콜라리-히딩크 시절과 판박이처럼 유사하다.
전임 구원투수들이 그랬던 것처럼 디 마테오 역시 전 감독들하에서 소외받던 베테랑 선수들과 그들의 중심으로 한 기존 전술을 중용하며 그들의 입지를 존중했고, 선수단 분위기를 빠르게 다잡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다만, 디 마테오가 그랜트나 히딩크와 다소 달랐던 부분은 바로 리그를 포기하고 극단적으로 챔피언스리그에 ‘올인’했다는 점이다. 그랜트와 히딩크는 리그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포기할 수 없는 상황에 있었고, 결국 여러 개의 대회를 병행하느라 에너지가 분산됐다.
디 마테오는 시즌 후반으로 접어들며 현실적으로 4위권 진입이 힘들어지자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집중하는 결단을 내렸다. 챔피언스리그 결승행을 확정짓고 치른 리버풀전에서는 주전들을 제외하고 나섰다가 1-4 대패를 당하기도 했으나 디 마테오의 계획은 요지부동이었다.
하지만 디 마테오는 첼시에서 무리뉴나 히딩크도 끝내 해내지 못했던 챔피언스리그의 숙원을 풀었다. 압박감이 큰 챔피언스리그 무대에서 부진한 토레스 대신 노장 드록바를 주로 기용한 것이나, 유럽의 강호들을 상대로 자존심을 버리고 수비를 두껍게 해 역습을 노리는 실리축구, 뮌헨과의 결승전에서 경험이 부족한 신예 라이언 버틀랜드를 측면에 투입한 변칙적 용병술 등은 어느 정도 운이 따랐음을 감안해도 기막히게 적중했다.
더구나 첼시의 챔피언스리그 반전 드라마는 운으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악전고투를 거쳐 완성됐다.
16강 나폴리전에서 2골차 리드를 뒤집은 극적인 2차전 역전승, 바르셀로나와의 4강전에서 존 테리의 퇴장으로 인한 수적 열세를 극복하고 강력한 수비력과 후반 토레스 카드의 적중으로 값진 승리를 따냈다. 바이에른 뮌헨과의 결승전에서도 홈 어드밴티지를 등에 업은 상대의 파상공세를 효과적으로 차단하며 드록바의 결승골과 페트르 체흐의 연이은 선방 쇼로 드디어 꿈에 그리던 ‘빅 이어’를 들어 올렸다.
디 마테오, 토사구팽당할 수밖에 없는 운명
챔피언스리그 우승에도 디 마테오는 아브라모비치로부터 고작 1년 계약을 제의받는데 그쳤다. 사실상 올 시즌 감독대행 역할을 맡은 것과 큰 차이가 없다.
이미 FA컵과 챔피언스리그 우승의 감독의 반열에 오르며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입증했다고 생각하는 디 마테오로서는 다음 시즌 더 올라갈 곳이라고는 ‘트레블’ 정도 밖에 없다. 오히려 전임 감독들이 그러했듯, 언제든 희생양이 될지도 모를 독이 든 성배를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
어차피 그동안도 유명 감독들을 장난감 갈아치우듯 했던 구단주가 애지중지하는 축구단의 미래를 맡길만한 인물로 디 마테오의 이름값과 경륜에 만족할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정식 감독으로 발령한다고 할지라도 조금만 성적이 부진하거나 기대에 못 미치면 디 마테오는 언제든 자신의 자리를 대체할 수 있는 저명한 명장급 감독들의 취업 소식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스트레스를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시즌중 감독교체가 해볼 만한 모험이라는 사실을 구단주에게 확인시켜준 장본인이 바로 자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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