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란'은 반란단체 의한 내전 성격을 강조한 용어
좌파들 주장 '한국전쟁'은 북에 의한 남침 희석
언어와 단어는 시대와 가치에 따라 변한다. 과거에는 '6.25동란'과 '6.25사변'으로 불렸던 6.25도 마찬가지다. 전쟁 직후 북한에 대한 적대감이 컸던 시기에 우리는 6.25를 북한에 의한 반란을 뜻하는 '동란'과 '사변'으로 불렀다.
참전 용사나 나이가 지긋한 노인을 만나면 그들은 아직도 6.25를 '6.25동란'이나 '6.25사변'으로 부른다. '6.25전쟁'이라는 단어가 익숙한 요즘 세대들에겐 낯선 단어다.
'6.25동란'이나 '6.25사변'은 북한에 대한 적대감이 그대로 녹아있는 표현이었다. 하지만 6.25 발발 후 63년이라는 시간동안 참전용사들과 노인들은 하나 둘 세상을 등지고 남한의 북한에 대한 적대감도 점차 희석돼왔다. 이 같은 시대·가치의 변화가 6.25에 대한 표현에도 반영된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겐 언제부터 '동란'과 '사변'보다 '6.25전쟁'이라는 용어에 익숙해진 것일까?
학생들이 공부하는 국사 교과서의 6.25 서술 변천사를 보면 언제부터 우리에게 '6.25전쟁'이라는 용어가 익숙해졌는지 알 수 있다.
6.25전쟁을 지칭하는 용어는 5차 교육과정까지 ‘6.25동란’→‘6.25사변’→‘6.25남침’→‘6.25전쟁’ 등으로 3차례 바뀌었다. 그리고 현재 6.25를 지칭하는 공식용어는 '6.25전쟁'으로 자리잡았다.
6.25 직후 1차 교육과정(1954~1963)에서 출간된 사회·역사 관련 교과서는 6.25를 ‘6.25동란’으로 서술하고 있다. 당시 전쟁은 북한이 먼저 전쟁 도발을 일으켜 남한을 침공하고 이에 남한의 좌익세력이 합세하여 ‘난동’을 부린 것이라는 정부 차원의 공식 입장이 반영된 것이었다.
이주천 원광대 교수는 “6.25동란은 반란단체에 의한 내전의 성격을 강조한 용어”라면서 “6.25전쟁은 좌익세력이 북한이라는 반국가단체에 가세하여 야기된 내전적인 성격인 만큼 현시대에서도 6.25동란으로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1차 교육과정에서 6.25를 다룬 서술들은 북한에 대해 ‘괴뢰군’ ‘괴뢰정부’ ‘괴뢰정권’ ‘적화야욕’ 등 자극적이고 원색적인 단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북한이 남한을 '괴뢰패당' '괴뢰군부'라고 부르는 것처럼, 전쟁 직후 정부도 북한에 대한 적대감을 교과서에 그대로 실어 놓은 셈이다.
6.25를 지칭하는 단어는 2차 교육과정(1963~1974)·3차 교육과정(1974~1982)에서 ‘6.25동란’에서 ‘6.25사변’으로 교체된다. 1970년 대한교과서에서 발간한 고등학교 국사(문교부)와 1980년 국정교과서주식회사에서 발간한 고등학교 국사(문교부) 등 2·3차 교육과정의 교과서에서 ‘6.25사변’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사변’이라는 단어가 병력을 사용해 일어난 내부에서의 다툼·전쟁을 의미이기 때문에 폭동과 반란 등을 의미하는 ‘동란’과는 의미상 큰 차이가 없는 표현이다. 정부는 이 같은 표현을 북한이 먼저 남한을 공격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했다.
다만 2차 교육과정부터 6.25를 일으킨 북한을 지칭하는 표현이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 ‘괴뢰군’이라는 표현이 ‘침략 공산군’ 혹은 ‘공산군’으로 교체됐다. 괴뢰군이라는 표현을 교체한 것은 전쟁을 일으켰던 주모세력의 '정체'를 명확하게 해서 학생들을 효율적으로 교육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괴뢰군’은 어감상 자극적이고 선정적일 뿐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6.25전쟁은 북한 인민군이 단독으로 저지른 전쟁이 아닌 소련·중국 공산세력의 지원아래 일어난 전쟁인만큼 이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었다는 의미다.
유영익 한동대 석좌교수는 “1970년대부터 괴뢰군이라는 표현을 삭제한 것은 6.25에 대해 효율적으로 교육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6.25전쟁을 일으킨 것은 북한 인민군뿐만이 아니다. 소련의 지원과 중공군의 참전 등 공산권 나라들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이뤄진 전쟁이기 때문에 괴뢰군이라는 표현을 삭제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6.25사변’이라는 표현은 1986년 발간된 4차 교육과정(1982~1987)의 국사2-하(문교부)에서 ‘6.25남침’으로 교체됐다가 다시 1990년 발간된 5차 교육과정(1987~1992)의 국사-하(교육부)에서부터 ‘6.25전쟁’으로 바뀌게 된다. 이때부터 현재까지 ‘6.25전쟁’은 국사편찬위원회와 국방부가 공식지정하고 있는 6.25의 명칭이다.
일각에선 '6.25전쟁'이라는 용어를 정착시킨 것에 대해 북한을 남한과 대등한 국가로 인정하는 셈이라며 반대 의견을 내놓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전쟁'이라는 단어가 부각되면서 북한에 대한 국제법적 전쟁 책임을 명확히 하는 효과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특히 전쟁이 시작된 일시를 분명히함으로써 1950년 6월 25일 전쟁을 일으킨 북한에 책임이 온전히 있다는 것을 강조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한편 이 ‘6.25전쟁’이라는 용어가 지정되면서 ‘한국전쟁’이라는 단어도 함께 혼용됐다. 이에 따라 ‘한국전쟁’이라는 용어는 친북좌파들에게 북한을 옹호하는 빌미를 제공하는 등 정치적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한국전쟁’이라는 용어가 ‘한국이 일으킨 전쟁’으로 오인되거나 ‘한국에서 일어난 전쟁’ 등으로 전쟁에 내포된 충분한 의미를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국방부에서도 1970년 6·25에 대한 전쟁사를 발간하면서 '한국전쟁사'라는 이름을 사용했지만 이후 '한국전쟁'에 내포된 의미가 정치·이념적으로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를 2000년에 '6·25전쟁사'로 이름을 수정해 발간한 바 있다.
강규형 명지대 교수는 “한 때 6.25를 한국전쟁이라고 부르자는 주장들이 유행했지만 그것은 정확한 표현이 될 수 없다”면서 “한국전쟁이라는 용어는 ‘한국이 전쟁을 일으켰다’라는 식으로 사람들이 오인할 수 있기 때문에 북한에 의한 남침을 희석시키는 용어”라고 지적했다.
©(주)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