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시리즈②>11년의 역사 FIU 역할 재점검할 필요
지하경제 양성화의 중요 추진장치 우선 순위 마련하는 계기되어야
박근혜 정부는 400조원에 이르는 지하경제를 '양성화'시켜 세수를 충당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추진 중이다. 최근 한국 부자들이 해외 조세 피난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세워 역외탈세의 어두운 단면이 알려지면서 국민들은 재벌들의 행태를 보면서 씁쓸해했다. 하지만 지하경제를 파헤치는 방식이 거칠다.
FIU 정보 공유로 개인정보 보호 근간이 흔들릴 수 있고 오남용 문제, 과세저항 등 서민경제에 미칠 부작용도 우려된다. 지하경제의 정확한 추정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지하경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것도 오산이다. 경제활동의 꼬리표가 드러나지 않는 모든 경제활동을 지하경제라 칭하고 있지만 분명 선하고 악한 지하경제의 양면성이 존재한다.
세원을 추적할 수 없는 현금사용도 지하경제에 포함되기 때문에 악으로만 치부하는 상상력은 국민들을 범죄자로 내몰수 있다. 모든 지하경제가 악은 아니다. 지하경제의 양성화를 위해 좀더 치밀하고 우리 실정에 맞는 맞춤형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편집자 주>
거절할 수 없는 매력의 고전의 으뜸을 꼽히는 대부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거장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이 18년간 마무리 지은 명작으로 총 3편이 나왔다. 마피아 보스 마이클 꼴리오네의 생애를 다룬 작품으로서 '돈과 정의'를 잘 그려내고 있다. 대부인 돈 코르네오는 상대방과 이야기 할때 항상 이런 말로 시작한다.
"그가 절대 거절하지 못할 제안을 할 거야(I'm going to make him an offer he can't refuse)"
그런 대사를 할때마다 패밀리의 변호사이자 비토의 양아들인 톰 하겐이 항상 있었다. 대부 돈 코르네오네가 중요한 결정을 할때 마다 다양한 관점에서 조언하는 비중있는 인물이다. 톰 하겐은 자신의 조직을 위해 금융거래와 자산관리, 회사운영 등을 도맡았다. 하지만 뒷면에는 불법과 자금세탁 등을 자행하면서 이들의 부를 축적시키는 키맨(Key-man)을 자처했다.
대부의 사례를 현재의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新국제기준을 적용해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변호사나 회계사, 변리사, 세무사, 회사설립전문가 등이 고객을 위해 고객의 자금으로 직접 금융거래를 하거나 부동산 매매, 회사설립 등을 하는 경우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자금세탁방지 의무에는 △고객확인 △의심거래보고(STR) △고액현금거래 보고의무(CTR) 등이 있다.
최근 CJ그룹의 비자금 조성 혐의에 대해 압수수색을 추진하면서 금융정보분석원(FIU)가 제공한 의심거래 내용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FIU는 하루에 2000만원 이상 현금을 입출금할 경우 거래자와 신원, 거래일시와 금액 규모 등을 전산으로 자동보고하도록 한 고액현금거래보고제도(CTR), 불법재산이라고 의심되는 근거가 있거나 금융거래의 상대방이 자금세탁행위를 하고 있다고 의심될때 보고토록 한 의심거래보고제도(STR) 등으로 금융거래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다만 아쉬움 점은 현재 우리나라의 의심거래보고제도는 기준금액을 1000만원 이상 거래에만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자금세탁수단으로 악용할 수 있는 소지가 충분하다는 점이다. FATF에서도 이런 점을 미비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다행인 것은 정부가 이미 기준금액 폐지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는 것.
한 은행 프라이빗캥킹(PB)센터 관계자는 "최근 고액자산가들 사이에서 1000만원 미만으로 현금을 인출하는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늘어난 것도 의심거래보고제도의 맹점을 이용한 사례"라며 "보이스피싱의 경우, 사기범들이 1000만원 이하로 인출하는 것도 이같은 현 제도를 악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하경제란 정부의 규제를 피해 보고되지 않는 경제를 통틀어 말한다. 주로 현금으로 이뤄지는 거래가 많기 때문에 '캐시 이코노미(Cash economy)'나 위법성을 가진다는 의미에서 '블랙이코노미'라고도 불린다.
그만큼 지하경제에서 현금을 동원해 범죄에 이용하는 수단이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현금은 선의의 거래와 악의의 거래로 구분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금을 모두 악의적인 지하경제로 치부한다면 정상적인 금융거래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지하경제는 범죄형, 탈세·탈루형의 자금세탁과 불법금융거래가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있다.범죄, 마약, 매춘, 도박, 화이트컬러 범죄, 외환관리 위반, 불법노동, 치외법권 등의 경제활동을 원천으로 하는 자금이 주를 이룬다.
주요 선진국에서는 지하경제의 규모가 커질수록 탈루와 탈세가 더 치밀해고 있기 때문에 지하경제의 '선택과 집중' 차원의 지하경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국제기준 관점에서 우리 지하경제를 뒤돌아 볼때
지하경제를 해결하는 세계적인 기준이 변화하고 있다.
최근 보스턴 마라톤 대회 폭탄테러와 어노니머스의 해킹 등 국제적인 테러로 인해 세계 각국이 테러와의 전쟁이 벌이고 있다. 이런 위협을 사전에 방지키 위해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Financial Action Task Force on Money Laundering)는 올해 3월 자금세탁범죄와 테러자금 조달 등 위험중심 접근법을 도입하고 국가적인 협력 체계를 강화하는 '새로운' 국제기준과 평가방법론을 채택했다.
위험중심의 접근법(Anti-Money Laundering)과 국가적인 공조협력 체계(Combating the Financing of Terrorism)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FATF는 1989년 파리에서 열린 G7 정상회의 이후 자금 세탁 방지를 위한 국제협력과 각국의 관련제도 이행상황 평가 등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현재 미국, 호주, 일본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34개국이 가입해있다. 기관 회원으로는 유럽위원회(EC), 걸프협력위원회(GCC) 등 2개의 국제기구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지난 2009년 정회원으로 가입했다.
FATF의 국제기준은 전 세계 180개국에서 채택하는 글로벌 스탠더드로 자리 잡았다. 앞으로 2014년 제4차 라운드 상호평가를 개시해 우리나라에 대한 상호평가는 오는 2016년 예정돼 있다.
우리나라도 국제기준의 관점에서 지하경제 양성화의 중요 추진장치를 마련하고 제도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국제적인 위상에 맞는 역할제고를 위해서라도 국제기준에 따른 체계적인 이행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현재 주요 선진국들은 다국적 기업의 조세회피 및 탈세에 대한 국가 간 정보교류가 강화되는 추세다.
OECD는 2002년부터 국가 간 조세정보교환협약을 주도하고 있다. 최근에는 공격적 조세회피에 대응하기 위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 지하경제 규모는 GDP 대비 20.3% 수준이다. 지하경제 규모가 높은 남유럽 국가들은 유럽 재정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추가적인 세수확보 차원에서 탈세 방지를 위한 계획을 발표하고 나섰다.
미국, 일본, 영국 등 지하경제 규모가 낮은 국가들에서도 최근에는 역외탈세 대책을 비롯한 다양한 과표양성화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스페인은 과세당국의 징수능력 강화 및 현금거래 한도 제한 등의 정책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그리스는 세무당국 운영의 효율성 제고 및 자영업자의 탈세 방지를 위한 영수증발행 의무화 정책을 펼치고 있다.
미국은 해외 금융기관과 개인의 역외 금융계좌에 대한 신고의무를 강화하는 정책 및 국세청과 FinCEN 간의 금융정보 제공에 관한 양해각서 체결을 했다.
일본은 추가적인 세수확보를 위해 일정 수준 이상의 해외보유자산 내역을 세무당국에 제출하는 국외재산조서제도를 시행했으며 영국은 스위스와 은행계좌 정보 제공 동의협약, 다국적 기업 조세회피전략 대응방안 마련 등 역외탈세 대책을 시행 중이다.
제도적 장치의 우선순위 그리고 강력한 제재
우리의 지하경제 양성화를 추진하는 모양새는 투박해보인다. 지하경제 범죄자들을 향해 "잡으러 갈테니 기다려라"식이다. 범인을 잡으러 가는데 경고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모든 지하경제를 다 해결할 수 있다고 판단하면 오산이다. 지하경제를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선의의 지하경제를 용인하는 동시에 탈세형 또는 범죄형 지하경제에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일례로 차명거래에 대한 금융정보의 시각이 달라져야 한다. FATF 新 국제기준은 실소유자의 명의 은닉 목적 아래 '명의은닉 차명거래'를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즉 범죄의 목적으로 남의 이름을 빌려 거래하는 행위를 방지하는 것이다.
금융회사 임직원이 고객의 금융거래가 '명의은닉 차명거래'임을 알게 된 경우 STR 보고를 의무화해야 한다. 만일 금융회사 임직원을 속인 '명의은닉 차명거래' 적발 땐 원금의 일부를 국고 환수도 함께 검토 대상이다. 만일, 금융회사 임직원이 '명의은닉 차명거래'를 공모한 경우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홍콩은 거래자와 임직원이 공모한 경우 최고 2년 이하 징역으로 임직원을 형사처벌하고 있다. 호주는 거짓 정보를 제공한 고객에게는 최고 10년 이하의 징역을 부과토록 하고 있다.
FATF의 新 국제기준이 '명의은닉 차명거래'로 못박은 것은 헌금이나 기부같은 사회적 선의의 차명거래는 권장하도록 유도해 건전한 경제활동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특수목적법인(SPC) 등을 이용한 자금세탁 방지대책도 마련돼야 한다. 조세 피난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해 역외탈세의 온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인과 법률 관계를 자금세탁에 악용하는 수단으로 쓰인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 법인의 관리시스템을 치대한 활용해서 대상 법인의 범위를 축소시켜 SPC의 실소유자 정보 파악과 관리가 필요하다.
상장법인과 외감법인의 경우 거래소 공시시스템과 금감원의 DART시스템을 활용하면 되고 비상장법인은 법인세법에 의한 소유 지분 등록시스템을 활용하면 된다.
상호저축은행 대주주 등이 SPC를 이용해 고객자금의 불법 은닉과 횡령 등의 사례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김자봉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에서 발생한 법인 이용 자금세탁 사례를 볼때 SPC에 대한 관리체제가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SPC 설립 인가 및 등록 관청이 실소유자 정보를 관리토록 하고 FIU 또는 수사기관 요청 시 즉시 제공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제한적 독립몰수 제도도입을 통해 범죄수익 박탈을 한층 강화해야 한다. 범죄자 처벌뿐 아니라 범죄수익도 박탈해야 한다.
여기에는 범죄자의 사망 등의 이유로 유죄판결이 불가능한 경우에도 범죄자산에 대해 독립적으로 몰수조치를 할 수 있는 제도 도입을 검토할 필요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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