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 공개, 가림막, 선서 거부 등 진통속 강행
사실 규명보다 정치공세 일관 막말 윽박지르기만
[기사추가 : 2013.08.23.16:31]
지난달 2일 시작돼 오는 23일 종료 예정인 국가정보원(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는 진행 과정에서 대다수 국조의 일반적 상황들을 깨뜨리는 파격(?)을 선보였다. 일단 ‘성역’인 국가정보기관을 상대로 한 국조라는 것 자체가 ‘보통의 국조’와는 다른 점이며, 또 국조 증인들을 위한 가림막이 설치됐었다는 점, 청문회에 출석한 증인들의 선서 거부가 있었다는 게 그것이다.
① '비밀조직' 국정원, 국조 받다
국정원은 간첩 검거 등 대북활동을 통해 국가 안보를 지키는 일을 목적으로 세워져 각종 고급정보를 다룬다. 이 때문에 국정원 소관 상임위인 국회 정보위원회 회의와 국정감사 등은 비공개가 원칙이다. 의원을 보좌하는 국회정책연구위원이나 보좌진은 해당 상임위서 의원이 활동하더라도 각종 회의 참석이 원천적으로 불가하다. 결론적으로 ‘매우 비밀스런 조직’이란 국정원의 특성상 ‘국정원 국조’라는 것은 사실상 실현되기 어려운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잡음도 많았지만, 야당의 강력한 주장에 따라 국정원 국조는 ‘헌정 사상 처음’이라는 타이틀을 붙이고 진행되게 된다. 이때 국정원은 그동안 각종 사안에서 적용됐던 ‘비공개 원칙’이 깨지고 ‘반쪽공개’라는 상황도 맞닥뜨리게 된다. 이 문제를 두고 당시 새누리당은 정보위 회의와 국감 등이 비공개라는 점을 들어 국정원 국조도 비공개로 하자고 했지만, 민주당은 국조는 원칙적으로 공개라고 주장하면서 충돌했다. 절충안은 ‘반쪽공개’였다.
다만 현 국정원 국조가 ‘헌정 사상 처음’이라고 보기에는 걸리는 부분이 있기도 하다. 지난 2004년 노무현 정부 당시 이라크 무장단체에 납치돼 가나무역 직원이었던 김선일 씨가 참수되면서 국정원이 테러 대책 및 정보부재 등의 책임으로 국조를 받은 바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 국조는 국정원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런 시각으로 볼 경우, 이번 국정원 국조는 ‘헌정 사상 최초’가 된다.
② '신원보호' 위한 '가림막' 설치
지난 19일 증인을 위한 ‘가림막’이 설치된 것도 국정원의 ‘비밀스런’ 특성 때문에 벌어진 일로 일반적인 국조 상식에선 벗어나는 일이다. 이날 출석 증인 대다수는 국정원 전·현직 직원들로 신원보호가 담보돼야 하기 때문에 가림막이 방안으로 강구된 터였다. 가림막은 2004년 국정원 국조에서 이라크 현지인 등의 신원보호를 위해 이미 사용된 바 있기 때문에 이번 국조가 ‘최초 사용’은 아니다.
선례가 있지만, 특별사안인 만큼 가림막 설치를 두곤 여야 공방이 있었다. 일단 가림막 뒤에 있을 국정원 직원 범위가 문제가 됐다. 새누리당은 ‘국정원법 및 국정원직원법’을 근거로 전·현직 직원 모두가 해당된다고 주장했지만, 민주당은 현직 직원으로 한정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박원동 전 국정원 국익정보국장과 민병주 전 심리전단 단장 등이 가림막 밖으로 나와야 한다고 했고, 이에 새누리당은 “두 인사는 현직 직원”이라며 맞섰다.
‘가림막 형태’ 또한 문제가 됐다. 민주당은 증인의 모습 전체를 가린 거대 가림막에 대해 “완전히 차단돼 안에서 증인들 간 필담을 나누는지, 혹 컴퓨터를 갖고 뭔가를 보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다”고 문제제기를 했다. 여야는 이러한 문제들을 두고 이날 오전 내내 실랑이를 벌이다가 결국 증인들의 손을 비롯한 상반신 일부가 보일 정도로 가림막 아래를 30cm 정도 도려내고, 그 앞에 명패를 설치하는 것으로 설전을 마무리했다.
③ "재판중이라..." 국조 최초 증인 선서 거부
이보다 앞선 지난 16일 국조 청문회에서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증인 선서 거부 사건이 벌어졌다. ‘국회에서의 증언·감정에 관한 법률 제3조’와 ‘형사소송법 제148조’ 등에 따라 재판중인 증인은 자신이나 친족이 유죄 판결을 받을 우려 등이 있으면 증언이나 선서를 거부할 수 있는데 두 인사가 이를 활용한 것이다. 현재 원 전 원장은 황보연 전 황보건설 대표로부터 억대 금품을 받은 혐의 및 국정원 대선·정치 개입 혐의, 김 전 청장은 국정원 댓글 수사 축소·은폐 의혹과 관련된 재판 등이 걸려있다.
증인 선서 거부 또한 이때까지 진행된 대다수의 국조에선 매우 보기 힘든 일이다. 증인 선서를 하지 않으면 위증죄를 적용할 수 없거니와 일반적인 경우, 증인으로 출석한다고 하면 증인 선서는 무조건 전제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증인 선서 거부는 원 전 원장과 김 전 청장이 국조 사상 최초인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범위를 넓히면 선례가 있긴 하다.
지난 1966년 삼성그룹 사카린 밀수사건을 두고 당시 한국비료 이사이자 삼성 이병철 회장의 둘째 아들이었던 이창희 씨와 이일섭 한국비료 상무는 재판을 앞두고 있다며 증인 선서를 거부한 바 있다. 1988년 남덕우 한국무역협회장은 정기국회 국감에서 “무역협회는 국감 대상 기관이 아니다”며 선서를 거부했다. 2004년 송광수 검찰총장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대선자금 청문회에서 “수사가 진행 중”이라며 선서를 거부하고 수사상황을 설명한 적이 있다.
한편, 국정원 국조 종료를 앞두고 정치권 안팎에선 ‘국조 무용론’이 나오는 실정이다. 23일로 예정된 국조 보고서 채택은 여야 갈등으로 미궁에 빠졌고, 속 시원히 규명된 것은 없으며, 국조 기간 동안 여야 공방만 난무했다는 것이다. 특히 위에서 언급된 ‘국정원 국조만의 특이사항’은 이러한 비판의 강도를 더욱 거세게 만드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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