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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어차는 시늉에 선수단 철수…항의에 깔린 계산


입력 2013.09.05 14:09 수정 2013.09.05 14:14        데일리안 스포츠 = 이경현 객원기자

김응용-염경업 감독 등 심판 판정에 항의

항의 통해 승리욕 자극하거나 흐름도 바꿔

염경엽 감독은 판정에 격분해 2루 주자만 남겨두고 선수단을 덕아웃으로 잠시 철수시키는 강수를 뒀다.ⓒ SBS ESPN

최근 프로야구에서 감독들이 심판에게 항의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대개 가벼운 이의제기 수준에서 그치지만 간혹 흐름에 영향을 미치는 민감한 판정이라든지, 명백한 오심이 발생할 경우 심각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고성을 주고받는 것은 물론 심할 때는 아예 선수단을 철수시키는 등 강경하게 대처하다가 감독이 퇴장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현역 최고령 한화 김응용(72) 감독은 지난 1일 대전 넥센전에서 심판 판정에 항의하려 그라운드에 나와 화제가 됐다. 항의의 내용보다는 고령의 김 감독이 오랜만에 그라운드로 걸어 나온 것이 눈길을 모았다.

김 감독은 과거 해태 사령탑 시절 불같은 성격으로 유명했다. 심판 판정에 거칠게 항의하다 퇴장을 당한 것도 여러 차례. 프로야구 통산 최초의 1500승 기록을 보유한 김 감독은 감독 퇴장 부문에서도 총 5회로 독보적이다.

김 감독은 당시 거친 이미지로 악명 높은 항의가 상당부분 의도한 퍼포먼스였음을 고백하기도 했다. 뒤지고 있는 선수들의 승리욕을 자극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심판에게 도발하기도 했고, 때로는 관중들을 위한 볼거리 차원이기도 했다. 해태 사령탑 시절에는 관중석으로 날아온 참외에 맞는 봉변을 당하는 웃지 못 할 에피소드도 있었다.

어느덧 칠순을 넘어선 김 감독은 젊은 시절처럼 그라운드에 직접 나서는 모습은 찾기 힘들다. 넥센전에서도 항의라기보다는 퍼포먼스 성격이 짙었다. 경기가 풀리지 않는 상황에서 모호한 판정까지 나오자 김 감독은 선수단의 분위기 전환과 기 살리기 차원에서 옛 추억을 되살렸다.

김 감독은 판정이 번복되지 않자 덕아웃으로 돌아가며 홈플레이트를 걷어차는 시늉으로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잦은 퇴장으로 거친 이미지 때문에 고생을 하기도 했지만 "감독이 되어서 퇴장도 한번 당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것“이라는 너스레 뒤에는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노장의 강한 승리욕이 녹아있다.

‘그라운드의 신사’로 유명한 넥센 염경엽 감독(45)도 화끈한 항의로 눈길을 끌었다.

4일 목동구장서 열린 롯데전에서 3-2로 리드하던 8회말 2사 2루. 대타 오윤의 타구를 롯데 2루수 정훈이 우익선상 페어지역에서 포구 후 다시 볼을 놓쳤지만 1루심은 페어가 아닌 파울을 선언했다. 비디오판독 결과는 명백한 안타였다. 염경엽 감독은 판정에 격분해 2루 주자만 남겨두고 선수단을 덕아웃으로 잠시 철수시키는 강수를 뒀다.

염경엽 감독은 평소 심판 판정에 대한 항의를 자제하는 편에 속한다. 그러나 올 시즌 중요한 고비마다 이런저런 오심에 시달려온 데다 마침 4강 싸움에 갈 길 바쁜 롯데와의 맞대결에서 또다시 모호한 판정이 나오자 순간적으로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6분 후 염경엽 감독은 선수단을 내보내며 경기를 재개했다.

염경엽 감독 항의에는 철저한 계산이 숨어있었다. 규정상 주자가 있었기 때문에 선수단 철수의 개념이 아니라 감독의 항의에 의한 중단으로 정의된 것. 염경엽 감독은 퇴장 조치까지 각오했다고 밝혔지만 한편으로는 심판에 대한 항의로 자칫 흔들릴 수 있는 흐름을 바꿔보자는 의도도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오윤은 재개 이후 적시타를 뽑아냈고 넥센은 5-2로 값진 승리를 따냈다. 이 장면이 이날 경기의 중요한 분수령이 됐음은 물론이다.

도를 지나치면 곤란하겠지만 감독의 항의는 야구장에서는 야구의 일부분이 된다. 지켜보는 팬들에게는 볼거리를 제공하고, 팀 선수들에게는 승패와 상관없이 단결과 승리욕을 키우는 효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런 심리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것도 감독의 연륜이다.

이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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