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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중독법 비난하기전에 이 편지 한번만...


입력 2013.11.17 10:18 수정 2013.11.17 10:24        김지영 기자

<기자수첩>핵심은 '규제 아닌 치료' 본질 놓고 논쟁해야

PC방에서 인터넷 게임을 하고 있는 한 게이머.ⓒ연합뉴스
“킴XX, 서XX, OXX 키우는 김XX!”

대리운전 나가려면 휴대전화가 필요하다 해서, 당신은 신용불량자라 휴대전화 개통이 어렵다고 해서 내 명의로 개통해줬더니 그걸로 게임 소액결제 했더라. 나한텐 스미싱 당했다고 했었나? 어제 당신이 이혼하겠다고 집 뛰쳐나가고, 내가 게임회사에 확인해봤어. 그러니 당신이 소액결제 했다더라. 내 명의로 게임 계정도 만들었고. 게임회사 직원이 명의도용 신고하라고 하는데 난 쪽팔려서 남편이라 말도 못했다.

…(중략) 난 그래도 당신 믿었어. 아이까지 있으니 열심히 살 줄 알았어. 그런데 뭐야? 관리비 내라고 돈 맡기니 경비아저씨가 없어서 못 전했다고 거짓말하고 그 돈으로 게임머니 샀더라. 난 산후조리도 제대로 못하고 점점 추워지는 집에서 아이랑 떨고 있는데 당신은 PC방에서 폐인이 돼있고. 그래놓고 돈 때문에 싸울 때면 뭐라고 했지? 당신도 밖에서 추운데 개고생한다고? 암 그렇죠. 게임하느라 힘들었겠군요.

…(중략) 당신 예전에 결혼앨범 나왔을 때, 내 얼굴에 이름까지 팔아가며 게시판에 올린 적 있지? 베스트 게시물 되면 계정이용권 받을 수 있다고. 나도 베스트 기대하고 쓰는 거야. 사람들이 내 마음 조금이라도 이해해주면 추천 눌러주지 않을까? 당첨돼서 받으면 너 줄게요. 마지막 선물로. 아랜 어제까지 너의 딸이었던 아기 사진이야. 아기한텐 미안하지만 아빠였던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보여주는 모습이니까...


지난 13일 한 여성이 온라인게임 게시판에 남긴, 남편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남편은 대리운전을 한다고 집을 나가 아내가 쥐어준 밥값으로 PC방을 다녔다. 아내가 돈을 달라고 할 때면 남편은 카드로 결제된 대리운전 대금은 일주일이 지나야 출금이 가능하다고 거짓말을 했다. 결국 아내는 남편의 친구와 상담한 뒤 이혼을 결심한다. 남편이 돌아온다 해도 절대 받아주지 않겠노라.

그리고 아내는 누차 다짐한다. 이 글이 베스트 게시물로 선정돼 게임이용권을 받으면 가족보다 게임을 사랑한 남편에게 마지막 선물로 주겠노라고.

이는 게임중독의 단적인 사례다. 게임에 빠져 일을 포기하고, 가정을 포기하거나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심심찮게 일어난다. 게임에 진 중학생이 아파트 주차장에 불을 지르고(2013.10.5 경남), 게임에 중독된 부부가 PC방에 다니느라 3개월 난 딸을 굶겨 죽이고(2009.9.24 경기), 20대 여성이 PC방 화장실에서 출산한 뒤 아기를 봉지에 싸서 버리는(2012.3.25 서울) 등 게임중독의 폐해는 방치할 수 없는 수준이다.

상황이 이쯤 되니 정치권에서도 게임중독을 예방하고, 중독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각종 법안을 내놓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지난해 청소년의 게임시간을 규제하는 셧다운제를 내놨고, 신의진 새누리당 의원은 국가에 게임중독 치료 의무를 갖게 하는 게임중독법(중독 예방·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여기에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게임중독을 도박·마약·알코올중독과 더불어 4대 중독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전혀 엉뚱한 곳에서 논란이 발생한다. ‘게임이 어떻게 마약과 같느냐’, ‘게임산업을 죽이겠단 것이냐’는 볼멘소리와 함께 곳곳에선 게임중독법 반대 집회가 열렸다. 국내 게임기업 중 매출규모 최상위를 다투는 일부 기업들은 해외로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과도한 규제가 게임시장을 위축시키고,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조장할 수 있다는 게 업계와 이용자들의 입장이다.

이 같은 논란은 곧 정치적 갈등으로도 비화했다. 게임계의 대통령으로 불리는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는 신 의원의 게임중독법을 가리켜 “겉으로는 육성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규제의 칼을 꺼내드는 꼰대적 발상”이라고 비하했다. 전 원내대표는 한국e스포츠협회 회장으로, 게임산업진흥법(게임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을 추진 중이다. 일전엔 셧다운제 철폐 운동에 앞장서기도 했다.

‘게임이 마약이냐, 아니냐’, ‘게임중독법이 규제법이냐, 진흥법이냐’, ‘게임이 오락이냐, 산업이냐’...

업계와 정치권이 엉뚱한 의제로 입씨름을 하고 있는 사이 사안의 본질은 자취를 감췄다. 게임중독법은 당초 중독자의 치료와 재활을 위한 법안이었지만, 게임산업에 대한 규제법안으로 인식되면서 소모성 논쟁만 조장하고 있다. 게임중독의 폐해는 관심에서 벗어나고, 게임의 위해성에만 초점이 맞춰지는 모습이다. 15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국내 게임전시회 지스타는 그야말로 게임중독법 저지 행사로 전락했다.

앞서도 언급했듯 게임중독법은 게임산업 규제법안이 아니다. 마약 등 특정 단어에만 매몰돼 본질을 호도하면 중독자 치료라는 본질적인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 혹여 법안의 게임중독이 마약중독의 중독과 같은 의미로 사용됐다 해도, 이는 게임중독이 그만큼 심각하단 말이지 게임을 마약과 같이 규제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알코올중독 치료 정책이 주류산업 규제를 의미하진 않는 것처럼 말이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도 게임산업은 진흥하는 게 마땅하다. 다만 게임산업 진흥을 이유로 게임으로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묵과해선 안 된다. IT업체 경영자였던 안철수 무소속 의원조차도 지난해 대통령 선거 공약으로 미디어환경 규제와 미디어교육 강화를 내걸지 않았던가.

지난 9월 16일 KBS 2TV ‘안녕하세요’에는 게임에 중독된 남편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아내의 사연이 소개됐다. 22세의 어린 아내는 30세 남편이 처가살이 중에도 게임 아이템 등을 구매하기 위해 그간 800만여 원을 지출하고, 주말에는 최대 19시간까지 게임해 가족과 제대로 된 대화도 나누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해당 사연은 많은 방청객,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으며 10월 초까지 3주 동안 1위를 지켰다.

문제는 중독과 중독으로 발생한 폐해다. 자신이 마약사범으로 취급받는 게 기분 나쁘다고 방치할 사안은 아니다. 게임중독을 4대 중독으로 표현한 것이 옳지 않다면 표현을 바꾸면 된다. 중독자 치료법을 게임산업 규제법으로 호도하면서 굳이 반대할 이유가 있을까 싶다. 법안이 게임산업을 위축시킨 것도 아니고, 위축시킬 것 같단 이유로 하루 19시간 게임만 하는 중독자 남편을 내버려둬야 하는 걸까.

김지영 기자 (j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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