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새정치추진위도 모르는 '새정치'
<기자수첩>'합리적 자유주의'가 뭐냐는 질문에 엉뚱한 답만 되풀이
'재탕정치', '낙선클럽'…
안철수 무소속 의원의 새정치추진위원회(새정추)를 놓고 정치권 안팎에서 들리는 말들이다.
때 지난 진보적 자유주의에서 말만 바뀐 ‘합리적 개혁주의’를 내세웠으나 자신들조차 속 시원한 정의를 못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안 의원의 새정추가 첫 전체회의를 연 지난 9일. 마포구 도화동 소재의 ‘정책네트워크 내일’ 7층에서는 기자들의 볼멘소리가 이어졌다.
앞서 안 의원이 회의를 열기전 모두발언을 통해 “어느 한 쪽에 치우침이 없고 국민 이익을 가장 우선시하는 합리적 개혁주의를 지향해야한다”고 밝히면서 ‘합리적 개혁주의’에 관심이 집중됐다.
이에 취재진이 ‘합리적 개혁주의가 구체적으로 뭐냐’, ‘정치적 좌표로 봐도 된다는 건가’, ‘위원 여섯 명 모두 공감한 단어인가’, ‘진보적 자유주의와 다른 점이 뭐냐’ 등의 질문을 던졌으나 이에 대한 금태섭 대변인의 대답은 한결같이 “그동안 계속 논의해오던 것 중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었고, 기자들 사이에서는 “도대체 핵심이 뭐냐”는 반문이 이어지기도 했다.
‘진보적 자유주의’는 지난 6월 당시 ‘정책네트워크 내일’의 이사장을 맡던 최장집 명예교수가 정치 분야 발제를 통해 제시한 것으로, 지금까지 안 의원의 정치적 좌표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두 달 후 최 교수가 이사장직을 사퇴하면서 안 의원은 자체적인 지향점을 고민한 끝에 ‘합리적 개혁주의’를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한 정당의 모든 정책과 방향을 하나로 꿰뚫을 수 있어야 할 정치적 좌표의 화살촉이 날카롭지 않다는 것이다. 신당 창당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은 결국 ‘안철수 신당의 정체성’이다.
특히 진보적 자유주의와의 차이점을 묻는 질문에 금 대변인은 “안 의원은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없다. 최장집 교수가 말씀하셨는데 계속 논의하셨던 것 중의 하나다”라며 “이제 발족하는 마당에 과거에 다양하게 논의했던 것과 관련해서 창당 작업을 해 나갈 때까지 주요 정책 등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나왔던 하나의 이야기”라고 답했다.
이에 기자들 측에서는 “뭐라고요?”라는 웃음 섞인 반문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안 의원이 준비하는 신당은 대중을 기반으로 조직되는 대중정당을 표방한다. 국민들이 ‘안철수 신당’에 기대를 거는 이유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대중이 이해할 수 있도록 쉽고 명확한 정체성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정치는 대중이 사는 현실에 발을 담그고 오늘의 문제를 다뤄야하기 때문이다.
새 정치를 한다면서 새로운 말만 내놓는 건 능사가 아니다. 거의 매일 만나다시피 하는 기자들도 못 알아듣는 말로 어떻게 대중의 이해를 얻을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백 번 양보해 이것이 새 정치라 하더라도 안철수의 새 정치를 추진해야할 주체인 '새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최근 새정추 위원장으로 임명된 김효석·이계안 전 의원. 이들은 모두 기존 정당에서 의원으로 활동 했으며 19대 총선에서 낙선한 인물들이다.
전남 장성 출신의 김 전 민주당 의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제정책 자문그룹인 ‘중경회’ 출신으로 16~18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구 민주당 정책위의장과 원내대표를 지냈으며 19대 총선에서 서울 강서구에 출마했다가 고배를 마셨다.
이계안 의원 역시 17대 국회에서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당선됐으며 19대 총선에서 서울동작을에 출마, 7선 의원인 정몽준 의원에게 패배했다.
참신한 인물을 기대했던 정치권 안팎에서 위원장직엔 19대 총선 낙선 인물을, 정책위원에는 공천 탈락 인사들을 모아놨다는 핀잔이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기존의 선거 및 권력 싸움 과정에서 주류로부터 밀려난 비루쥬의 모임이란 시선도 괜한 게 아니다.
안 의원은 “훌륭한 인재를 공개적으로 모시기 위해 삼고초려, 필요하다면 십고초려도 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유비가 최고의 인재를 얻기 위해 무려 세 번씩이나 찾아간 곳은, 제갈량의 누추한 초가집이었다.
이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안 의원은 새 정치를 위해 재야의 초가집 문을 두들기고 있는가. 새정추의 인사를 보면 안철수는 국회 뒷문을 기웃거리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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