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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들 하십니까’가 안녕하지 못한 이유


입력 2013.12.17 17:24 수정 2013.12.17 17:30        데스크 (desk@dailian.co.kr)

<칼럼>진실보다 괴담 믿는 사회는 안녕 못해

철도파업 진실은 임금 6.7% 인상과 정년연장

감히 대학에서 ‘북한인권’을 말하기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다. 북한의 인권문제를 제기하면, ‘내정간섭’이라거나 ‘탈북자들의 발언은 교차검증 되지 않았기에 믿기 힘들다’는 비난에 부딪혔다. 2005년 서울지역의 한 대학에서 열렸던 북한인권대학생국제회의는 학내 반대 피켓시위로 개최가 좌절될 뻔했다. 지금도 학내에선 민주주의와 정의를 부르짖는 사람들이 북한인권문제와 3대 세습독재는 방관한다.

고려대 학생이 본 안녕하지 못한 현실이 필자에겐 다른 측면에서 안녕하지 못한 현실이다. 민주주의를 주창하는 사람들이 정당이 저지른 부정선거는 감싸려 한다. 천안함 폭침으로 46명의 젊은 장병들이 목숨을 잃었는데도 장병들을 추모하기는커녕 각종 괴담을 부추긴다. 누군가에게 어떤 죽음은 정의롭지만, 어떤 죽음은 무시된다. ‘민주주의’, ‘안보’ 등은 그 자체로 보존하고 지켜야 할 중요한 가치라기보다 누군가의 해석에 따라 달라지는 가벼운 것이 된다.

실패한 이념에 매달리는 현실은 답답하다. 소련이 몰락했고, ‘사회주의 지상낙원’이라 칭하던 북한도 결국 봉건독재로 나아갔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회주의식 선전과 주장이 사회를 파고든다. ‘안녕들 하십니까?’의 대자보는 온통 ‘자본 대 노동자’의 대립 구도다.

노동자는 핍박받는 약자이고, 자본과 경영진은 무조건 강자다. 정부, 자본, 경영진 등 부르주아 계급에 맞서 노동자들은 필연적으로 부르주아 계급에 대항해 노동자 중심의 해방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마르크스의 선언이 여전히 힘을 갖는 지금이 과연 21세기가 맞는지 의문일 정도다.

지난 10일 고랴대에 붙은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연합뉴스

조금만 살펴봐도, 우리는 노동자·농민 대 자본가의 대립과 같은 단순한 구도의 시대에 살고 있지 않다. 영원한 노동자도 영원한 자본가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대자보의 주장대로라면 우리 사회는 이제, 노동자도 강자와 약자로 나뉜다. 코레일 임직원의 평균 연봉은 6000만원 가까이 된다. ‘노조 간부’는 진정한 강자다. 상상을 초월하는 혜택과 함께 해직 되도 정규직 연봉을 손에 쥔다. 정년을 보장받는 강자 노동자들 때문에 청년 일자리는 없고, 비정규직이 양산된다. 그럼에도 더 많은 임금을 올려달라며 파업을 벌이는 강자들 때문에, ‘약자’ 국민은 오늘도 지하철이 늦어 발을 동동 구르는 형편이다.

선과 악, 강자와 약자의 이분법적 구분은 우리 사회의 갈등만 부추기는 안녕하지 못한 현실이다. 저항이란 명분 앞에 불법, 폭력 등은 정당화된다. 우리는 핍박받는 대중이고, 저들은 강자라는 피해의식과 항거의 부추김 등 선동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이 되어왔다. 철도 파업으로 피해를 입은 국민들, 광우병 시위로 인한 주변 상가들의 파손 및 영세 상인들의 영업 부진, 이 피해를 메우기 위한 세금 투여 등 말이다. 대화와 협의보다 투쟁과 시위를 앞세우니 극단적인 결과로도 이어진다. 예컨대 자살과 같은 안타까운 행동으로 말이다.

팩트(fact)보단 괴담이 퍼지는 사회는 더 이상 안녕할 수 없다. 우리는 이미 경험한 바 있다. 괴담의 무서운 실체를, 광우‘뻥’ 소동에 100여일이 넘는 기간 동안 서울 한복판이 광란의 광장으로 변했던 때를 말이다. 그런데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열풍에서 데자뷔를 느낀다. ‘민영화로 해직됐다’는 대자보 속 주장은 팩트가 아니지만 그럴듯한 구호가 됐다. 사람들은 어느새 민영화가 무서운 것이라고 느낀다. 인터넷 등에서는 또다시 ‘전기세 폭탄’, ‘민영화되면 요금폭탄’ 등 각종 민영화 괴담이 퍼지고 있다.

하지만 진실은 조금만 살펴보면 드러난다. 코레일 노조원들은 민영화 때문이 아니라 불법 파업 때문에 ‘직위해제’된 것이다. 이는 일자리 자체를 잃어버린 것과는 전혀 다른 뜻이다. 또한 노조원들이 민영화를 반대하기 위해 투쟁하는 것이라면 민영화를 막기 위한 법안 제정 등을 주장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의 요구는 임금 6.7% 인상 및 정년연장이다. ‘민영화 반대’라는 구호를 앞세웠지만 실은 자신들의 잇속 챙기기에 다름없는 것이다.

지금의 대자보 열풍을 두고 사람들은 표현자유의 향연이라고 일컬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잘못된 팩트, 퍼지는 괴담, 불법 시위로의 내달림 등이 결과적으로 어떤 광경을 만들어냈는지 깨달은 이들에겐 결코 안녕치 못한 전주곡이다. 이는 우리 사회를 보다 건강하게 하기보다 첨예한 갈등만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이것이 진정 청년들이 원하는 민주주의일까.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자신이 영감을 받았다는 정념에 사로잡혀 아주 기괴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 다수가 모여 공모했을 때에는 군중의 격노가 가시적으로 나타난다”고 했다. 인간이 자기 나름의 의견에 완고하게 집착할 경우 자신의 의견에 양심이라는 거룩한 이름을 붙여 행동하게 되는데, 이런 개인들이 군중을 이룰 때 집단 광기를 일으킬 수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지성의 청년이라면, 이제라도 고민해볼 일이다. 대자보 열풍에 동참함으로써, 내가 마오쩌둥의 홍위병처럼 광기의 대리인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글/신보라 미래를여는청년포럼 대표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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