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7일 32차 공판서 '5월 회합 음성파일' 법정서 공개
이석기 의원, 두가지 전쟁 운운하는 또렷한 목소리 들려
내란음모 혐의로 기소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32차 공판이 7일 열린 가운데 이날 재판에서는 전 RO조직원 제보자 이모씨가 녹취, 국정원에 넘긴 ‘5월 회합 음성파일’이 법정에서 처음으로 공개됐다.
이날 수원지법 형사12부(부장판사 김정운) 심리로 열린 공판에는 재판부가 지난 30차 공판에서 증거능력을 인정한 녹음파일 32개와 녹취록 29개에 대한 증거조사가 이뤄졌다. 단, 검찰이 제출했던 총 47개 파일 중 15개의 파일은 일부 변형되는 등 증거의 무결성을 입증할 수 없다는 이유로 증거능력을 부여받지 못해 증거조사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날 증거조사를 위해 지난해 11월 22일 7차 공판에서 밀봉, 그동안 검찰이 보관해왔던 녹음기와 수사PC, 하드디스크 등을 봉인해제하고 증거능력을 인정받은 32개 녹취파일을 쓰기방지장치 등을 한 상태에서 2개의 USB에 복사해 그 중 하나의 복제본은 법정에서 증거조사에 사용하고, 나머지 하나는 변호인단이 보관키로 했다.
약 1시간가량 이뤄진 원본파일 복사는 수원지법 소속 디지털 수사관 2명과 검찰, 변호인단이 함께 작업한 뒤 원본은 다시 영상파일과 음원파일로 구분, 서류봉투에 재 밀봉한 뒤 검찰에게 넘겨졌다.
이후 재판부는 곧바로 지난해 5월 10일 광주 곤지암 청소년수련원에서 가진 회합 녹취록을 재생시켰다.
음원이 공개된 녹취록은 약 1시간 분량으로서 초반 40여분 동안은 제보자 이 씨가 회합 장소로 걸어가는 과정에서 조직원들과 서로 안부를 묻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이는 당일 RO보안수칙에 따라 차를 멀리 주차한 뒤 회합장소까지 걸어서 이동했다는 이 씨 주장에 일치하는 대목이다.
이후 이 씨가 회합장소인 강당에 들어서면서 소리가 울리기 시작, 참석자들의 대화내용은 대부분 희미하게 들렸지만 간간이 어린 아이들의 울음소리와 운동권 가요가 스피커를 통해 또렷이 들렸다. 이 부분까지만 해도 피고인들이 당시 모임을 ‘친목 성격이 짙다’고 한 것처럼 자유분방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흐르는 듯 들렸다.
그러나 녹취록 후반부에 본격적으로 행사가 시작되는 부분에서부터 분위기는 180도로 돌변했다. 웅성거리고 시끄러운 내부 질서는 사회자로 나선 김홍열 피고인이 행사 진행을 시작하자마자 단합된 박수와 함께 정돈됐다. 특히 피고인 김 씨가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 “조국과 동지를 믿고 끝까지 투쟁하자”등을 외치자 참석자들은 마치 훈련이라도 받은 듯 일제히 2번씩 각 구호를 소리쳐 외쳤다.
이 같은 분위기는 이 의원의 등장과 함께 더욱 확고해졌다. 녹취록 속 이 의원은 약 5분간의 짧은 강연에서 다소 격양된 목소리와 논조로 강연을 이끌었다.
그는 “현재 2013년도에 우리 한반도의 정세는 우리가 그간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역사라는 것”이라며 “조금 전에 위기 운운하는데 위기가 도대체 뭐가 위기라는 것. 전쟁이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이어 “전쟁에는 두 가지 전쟁이 있다. 정의의 전쟁이 있고 불의의 전쟁이 있고, 혁명의 전쟁이 있고 단위의 전쟁이 있는 것”이라며 “현재 조성된 우리 조선반도의 현 정세는 혁명과 반혁명을 가르는 매우 중요한 시기라는 것을 우리 국민들이 똑똑히 아셔야 된다”고 언성을 높였다.
그러나 앞서 공개된 녹취록에 적시돼 논란이 됐던 이 의원의 ‘김근래 지휘원 자네 지금 뭐하는 거야’라는 발언 부분은 정확히 들리지 않았다.
반면, 이 의원이 돌연 강의를 중단하며 “오늘 장소는 적절치 않다. 당면 정세에서 우리가 무엇을 준비하고 무엇을 싸울 것인가 결의를 하자. 날을 다시 잡아서 다시 만나기로 하자”며 참석자들에게 “그래도 되겠느냐”고 연달아 3번 묻는 대목에서는 강압적인 분위기도 감지됐다.
특히 그는 이날 모임에 아이들이 온 것을 지적, “전쟁터에 아이를 데려오는 사람은 없지”라고 말한 부분은 명확히 확인할 수 있었다.
아울러 그는 “오늘은 얼굴 보고 눈빛 마주치는 걸로 강연 대신하겠다. 다시 보자. 고맙다”고 서둘러 강연을 끝냈고, 참석자들의 박수가 이어졌다.
한편, 녹취록 청취 이후 해당 모임의 성격에 대한 판단을 두고 검찰과 변호인단 간 공방이 이어졌다.
변호인단은 “소란스러운 분위기와 아이들 소리가 지속적으로 나오는 점 등을 통해 당일 모임이 결코 내란음모를 위한 모임이 아니라는 점이 드러난다”며 “적어도 파일 청취를 통해 이석기 피고인이 김근래 피고인을 ‘지휘원’이라고 부른 사실이 없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파일에 끊김 현상이 나타난 점에 비춰 편집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운동권 가요가 스피커를 통해 크게 울려 퍼진 점 등은 지하혁명조직의 비밀회합이라는 검찰 측 주장과 배치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검찰은 “애초에 내란음모를 위해 모인 것은 아니다”며 “이석기 피고인의 발언자세나 억양, 태도 등와 아이들 소리에 이 피고인이 다소 화를 내며 ‘장소가 적절치 않다’고 하면서 행사를 마무리한 점은 자유로운 당원들의 모임이라고 볼 수 없다는 점을 입증한다”고 반박했다.
검찰은 그러면서 “파일의 끊김 현상은 편집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이를 재생한 플레이어에 오작동에 따른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이날 오후 공판에서는 지난해 5월12일 열린 마리스타 회합 당시 녹음파일 4개(약4시간30분 분량)가 재생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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