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식 새정치는 예측불가능한 럭비공 행보
<기자수첩>신당 창당후 보일 행보는 며느리도 모른다?
“이제 문재인 후보와 저는 두 사람 중에 누군가 양보를 해야 되는 상황입니다. 저는 얼마 전 제 모든 것을 걸고 단일화를 이루겠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후보직을 내려놓겠습니다.”
2012년 11월 23일 안철수 새정치연합 창당준비위원회 중앙위원장은 대통령 후보 신분으로 마지막 기자회견을 열었다. “안 됩니다”, “절대 반대”라는 캠프 관계자들의 절규 속에 그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회견문을 읽어 내려갔다. 공평동 캠프는 삽시간에 울음바다가 됐다. 선거대책위원회 지도부는 고개를 숙였다.
유민영 당시 대변인은 대변인실 문짝을 부여잡고 오열했다. 소리가 새어나갈까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서럽게 눈물을 쏟아냈다. 기자회견 직전에도 문재인 캠프 측과 협상 경과를 브리핑했던 유 대변인은 안 위원장의 후보직 사퇴 사실을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 나중에 물어볼 기회가 있었지만 물어보진 않았다.
대다수의 캠프 관계자들도 안 위원장의 사퇴 사실을 몰랐을 터다. 안 위원장은 기자회견에 5시간 앞서 범죄경력증명서를 발급받기 위해 경찰서를 다녀왔다. 누가 봐도 대통령 선거 완주를 위한 행보였다. 하지만 5시간 뒤 빗나간 예상에 캠프 관계자들과 지지자들은 뒤통수를 맞은 듯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많은 정치인들은 정치란 예측 가능해야 한다고 말한다. 유권자가 정치인을 지지할 때에는 인물뿐 아니라 그의 예상되는 행동까지 지지한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안 위원장의 완주와 새정치를 기대했던 사람들은 안 위원장의 예기치 못한 포기로 자신들이 지지했던 ‘예상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예상컨대 안 위원장의 후보직 사퇴가 예측 가능한 일이었다면 그 많은 사람들이 안 위원장을 지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최소한 인간 안철수가 아닌 새정치를 갈망했던 사람들은 등을 돌리지 않았을까.
한 원로 정치인은 정치를 국민의 바람에 부응하는 일이라고 정의했다. 정치인 개인이 말과 행동을 하고, 그 말과 행동으로 하여금 유권자가 무엇인가를 기대한다면, 그 기대까지도 정치인이 충족시켜줘야 한다는 이야기다. 정치인에 대한 기대 자체가 ‘적어도 이 사람은 ~할 것’이라는 유권자의 믿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 위원장은 지난 2일 또다시 창준위 구성원들과 지지자들의 예상을 뒤엎었다. 100년 정당을 만들겠다는 안 위원장의 약속은 통합신당 창당이라는 어이없는 결과로 이어졌다.
같은 날 김성식 공동위원장은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안 위원장에게 작별을 고했다. 김 위원장은 “새로운 대안정당을 만들어 우리 정치구조 자체를 바꿔보려는 저의 꿈이 간절했기에, 그 꿈을 나누는 과정에서 쌓은 업보는 제가 안고가야하기에, 저는 고개부터 숙이고 오랜 기간 홀로 근신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의 한 측근은 “최소한 김 위원장이 안 위원장에게 다시 돌아갔을 때에는 그만한 조건을 안 위원장이 제시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건이라 함은 독자창당을 의미한다. 안 위원장이 이미 포기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완주에 대한 확답이 없었다면 안 위원장을 다시 돕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번에도 김 위원장의 기대는 산산이 부서졌다. 이 측근은 김 위원장이 블로그 글이 자신에 대한 질책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대가 무너질 걸 알면서도 미련하게 또 속아버린 자신에 대한 원망 말이다.
한국 정치사에서 시대를 앞지르는 통찰력과 판단력으로 ‘역시 000’라는 찬사를 들었던 정치인은 있지만, 지지자들의 기대와 예상을 밥 먹듯 뒤집으면서 좋은 평가를 받은 정치인은 없다. 특히 자신의 최측근과 참모들에게 시도 때도 자신의 선택에 대한 일방적인 존중을 구하면서 성공한 정치인은 찾기 어렵다.
예측 가능한 행동을 한다는 것은 유권자들의 믿음을 따르는 것이고, 한편으론 유권자들에게 판단의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다. 정치인에 대한 기대가 시도 때도 없이 깨진다면 유권자의 입장에선 그 정치인을 판단할 기준도, 지지할 이유도 없어진다. 무엇을 할지도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믿고 지지한다는 말인가.
안 위원장의 속내가 궁금하다. 혹 지지자들이 자신의 어떤 결정이든 응원해주길 바라는 걸까. 아니면 지지자들이 갈망하는 새정치가 안철수라는 사람 자체를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최소한 새정치에 대한 기대를 자신에 대한 기대로 착각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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