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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지지자들에게 묻는다 '아직도 안철수냐고'


입력 2014.03.10 11:02 수정 2014.03.10 11:11        이상휘 선임기자

<칼럼>'묻지마 지지' 말고 생각과 철학이 분명한지 그것에 동조할 수 있는지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새정치연합 중앙운영위원장이 9일 오전 국회에서 의료파업과 국정원증거조작 등 정국현안에 대한 신당추진단장 기자회견을 마친뒤 박수치고 있다.ⓒ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새정치를 말한다. 그 모호성에 대한 갑론을박도 많다. 대표적 것이 안철수 신당이었다.

새로운 것을 원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기성정치와는 다른 것이다. 변화를 갈구하는 수사적 표현이기도 하다. 새정치라는 것이 말이다. 정치는 늘 개혁의 중심에 있다. 개혁의 주체이자 대상이다. 그러기에 정치는 개혁과 변화를 달고 산다.

국민의 요구는 정당하다. 새로운 것을 요구하는 것도, 낡은 것이라 욕을 해대는 것도 국민의 권리다. 그것을 감내하는 것이 정치다. 아직도 새정치의 요구는 강하다.

안철수 신당 붐은 거품이 빠진 듯하다. 새정치에 대한 정체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기성정치권과의 결합으로 투항했다. 제3지대 창당으로 새정치라고 말한다. 큰 변화를 통한 세력결속으로 새정치를 구현한다는 의미다. 그야말로 낡은 수사다.

새정치는 간곳없고, 이익과 실리에 기반한 ‘헤쳐모여’에 불과하다. 그것을 새정치라고 하면 웃기는 일이다. 단순한 정치세력들의 ‘편먹기 놀음’에 다름아니다.

국민이 바라는 새정치는 뭘까. 문화적 트렌드를 말하는 것일까. 디지털사회와 걸맞은 최신 정치를 말하는 것일까. 새로운 사람이 등장해서 인기를 얻으면 새정치라고 하는 건가. 새정치에 대한 명쾌한 답은 뭔가. 궁금하다. 명쾌한 답이 없다. 6.4지방선거를 앞두고 그야말로 ‘정치러쉬’다. 골목마다, 술자리마다 정치이야기다. 정치 성수기인 셈이다.

그리고 단골처럼 새정치가 등장한다. 정치인들은 핏대를 올리면서 새정치를 주장한다. 변화에 적합한 인물이라고 한다. 이런 것이, 저런 것이 새정치라고 한다. 새정치가 누구의 전유물이 아니니 그럴만도 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 새정치는 시대변화에 대한 국민의 요구다. 따라서 우선되어야 할 것이 있다. 기득권에 대한 저항정신이다. 아날로그적 사고가 아니다. 변화와 새로운 것을 이끌어내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모르면 새정치를 만들지 못한다.

정치는 그렇다. 오랜 시간동안 변하지 않는 저항정신이 있다. 그게 새정치의 뿌리인 것이다.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라는 말이다. 상품을 판매하는 마케팅과는 다른 것이다.

안철수 새정치 몰락(?)의 이유이기도 하다. 오래되고 견고한 저항의 뿌리가 없었다. 그런 경험이 있는 사람들도 부족했다. 그러니 쉽게 흔들리는 것이다. 더구나 우리는 이러한 저항정신에 길들여져 있다.

‘아침 굶은 시어미 상통’이라는 속담도 있다. 며느리에 대한 시어미의 저항은 아침을 굶는 것이었다. 일상의 저항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선조들의 정치적 저항은 처절하다. 생육신 이맹전은 30년을 눈뜬 장님으로 살았다. 수양대군의 거사에 반발한 권절은 일생동안 벙어리로 살았다. 기묘사화에 반발한 정구라는 분은 앉은뱅이로 18년을 살았다.

강자에 대한 저항은 이처럼 평생을 내던지는 아픔을 감내한 것이다. 현대 정치사에도 많았다.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의 민주화 운동도 그랬고, 고 김근태씨의 저항도, 사회운동 주체들의 고통도 그랬다. 모두가 모질게 겪어서 얻은 “새정치”인 것이다.

시대가 달라졌다. 정치를 보는 시각도 달라졌다. 설탕과 같은 달콤함으로 길들여져 있다. 단순한 인기로 지도자가 될 수 있는 환경이다. 문화트렌드에 적당히 편승하면 유명정치인도 된다.

참으로 정치인 되기가 쉽다. 눈물과 고난의 저항을 말하는 게 촌스러울 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치는 그래야 한다. 권력이기 때문이다. 국가를 운영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가벼운 입놀림으로 인기가 있다고 해서, 뭔가 다른 모습을 갖고 있다고 해서, 무작정 지지를 보내는 건 유아적이다.

사회와 국가를 위해 어떻게 해왔는지를 봐야 한다. 그 사람의 역사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는 말이다. 생각과 철학이 분명한지, 그것에 동조할 수 있는지를 따져야 한다.

안철수 의원의 향후 정치적 행보도, 선거에 나서는 후보들도, 이런 사람들을 바라보는 국민들도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일이다. 새로운 것이 어떻게 얻어지는지를 말이다. 인기와 겉모습만 보고 새로운 것으로 오해한다면, “꿀을 따지 않는 벌을 키우는 것”이다.

이상휘 기자 (shonle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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