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에 던져진 윤석민 '살아남는 사자만 받는다'
험하고 치열한 마이너리그 경쟁서 스스로 살아남아야
기다려주는 팬도 구단도 없어..9실점 경기 심기일전 계기 삼아야
윤석민(28)이 미국 무대 첫 선발등판에서 쓰디쓴 굴욕을 경험했다.
볼티모어 오리올스 산하 트리플A 노포크 타이즈에서 개막을 맞은 윤석민은 9일(한국시각) 버지니아주 노포크의 하버파크서 열린 그윈넷 브레이브스(애틀랜타 산하)전에 선발 출격, 2.1이닝 11안타(1홈런)를 얻어맞고 9실점 했다.
두 차례나 등판이 밀리는 악재 끝에 마운드에 올랐지만, 너무나도 초라한 성적으로 실망을 안겼다. 마이너리그이기는 하지만 첫 등판에서 역대 최악의 기록에 근접한 투구내용을 남겼다는 것은 치유하기 힘든 상처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류현진(27·LA다저스)과 함께 최고의 에이스로 군림했던 윤석민이 이 정도로 난타 당한 것은 보기 드문 장면이다. 윤석민은 KIA 시절이던 2009년 9월 5일 광주 두산전에서 3⅓이닝 홈런 2개 포함 10피안타 2볼넷 10실점한 것이 프로 데뷔 후 최악의 기록이었다.
볼티모어 입단 이후 이상하리만큼 꼬이는 윤석민의 불운을 그대로 반영한 듯한 경기였다.
입단과 동시에 볼티모어는 FA 시장에서 또 다른 정상급 투수 우발도 히메네스를 영입했다. 볼티모어와의 3년 계약 첫해 마이너리그 거부옵션이 적용되지 않았던 윤석민은 짧은 준비기간과 팀 적응 어려움 속에 충분한 기회를 얻지 못하고 마이너리그행을 감수했다.
마이너리그에서도 윤석민의 불운은 계속됐다. 당초 윤석민은 7일 첫 선발등판이 예정됐지만 날씨와 빅리그 엔트리 조정 등의 영향으로 두 차례나 등판이 연기돼 컨디션 조절에 어려움을 겪었다. 메이저리그 직행에 대한 의욕이 강했던 윤석민이 마이너리그에서 시즌을 시작하면서 박탈감과 사기저하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이유들이 최악의 투구에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윤석민이 미국행 도전을 선택하는 순간부터 이런 상황도 충분히 감수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했다. 어쨌든 지금 현재 윤석민의 신분은 마이너리거다. 한국무대 시절 한때 라이벌로 꼽혔던 류현진처럼 메이저리그 데뷔와 동시에 선발을 보장받지 못한 것도 스스로 그만큼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출발점도 위상도 다르다면 그 격차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몇 배의 노력밖에 없다.
마이너리그는 정글이다. 다양한 세계와 국적을 지닌 유망주들이 동등한 위치에서 메이저리그를 향한 무한경쟁을 이어가는 곳이다. 볼티모어 선발진은 현재 포화상태다. 여기에 윤석민이 몸담고 있는 노포크만 해도 케빈 가우스먼, 스티브 존슨, T J 맥퍼랜드 등 윤석민 외에도 언제든 메이저리그 진입을 노리는 경쟁자들이 득시글거린다.
마이너리그는 신분은 같아도 모든 조건까지 같을 수 없다. 메이저리거였다 마이너리그로 강등당해 재기를 노리든 등판 일정이 오락가락하던 불리한 외부조건도 선수 스스로 극복해야할 몫이다. “용맹한 사자는 새끼를 벼랑에서 굴려 살아 돌아오는 자식만 받아들였다”는 옛말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다.
윤석민이 미국진출을 선언할 때부터 많은 이들은 윤석민이 류현진이나 추신수 같은 선수들에 비해서는 상당히 고전할 것으로 예상했다. 가장 큰 이유는 한국 시절에도 윤석민이 압박감에 대처하는 정신적 강인함이 부족하다는 이미지 때문이다. 한국무대에서는 다소 슬럼프를 겪거나 부진해도 믿고 기다려주는 구단과 팬들도 있지만 이제는 윤석민 스스로 살아남아야한다. 결과에 대한 모든 책임도 윤석민의 몫이다.
시즌 개막 초기 볼티모어 선발투수진은 대체로 불안했다. 윤석민이 마이너리그 첫 등판부터 좋았다면 메이저리그 진입 기회가 예상보다 일찍 돌아올 수도 있었다. 윤석민으로서는 올 시즌 첫 기회를 놓치며 한 걸음 밀려난 셈이다. 하지만 말 그대로 이제 첫발을 내딛은 것뿐이다. 첫 실패를 거울삼아 긴 호흡으로 메이저리그 도전을 내다보고 심기일전한다면 다시 기회는 돌아온다. 험난한 정글에서 더 강하게 단련된 윤석민을 기대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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