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소리, 평양 안장된 박문재 씨 누나 유골 반출 허용 보도
최근 북한 당국이 이례적으로 재미동포 가족의 유골 반출을 허락한 것으로 미국의 소리(VOA) 방송이 15일 보도했다.
방송에 따르면, 재미동포 박문재 씨(80)는 지난 10일 평양 만수대 인근 공동묘지에서 누나 박경재 씨의 유골 일부를 수습해서 미국으로 가져갔다.
박 씨는 올해 초 누나의 유골을 수습해 미국 시카고에 있는 어머니 무덤 곁에 묻고 싶다는 의사를 북측에 전달했고, 북한 당국은 이달 3일 박 씨가 북한을 방문했을 때 이를 허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씨는 10년 이상 북한에서 의료봉사 활동을 해온 미국의 심장내과 의사로서 6·25전쟁 당시인 1951년 인민군 협주단 가수로 차출돼 북한으로 넘어간 누나 박경재 씨를 1995년 평양에서 처음 만났다고 한다.
박경재 씨는 이후 폴란드와 체코에서 성악을 전공한 뒤 북한 피바다가 극단 전속 소프라노로 활동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 씨는 누나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미국 공영 라디오방송 PBS의 이산가족 다큐멘터리 제작 과정에서 알게 됐으며, 어진 지 44년만에 평양에서 극적으로 재회한 남매는 이후 매년 한차례씩 평양에서 사흘간 만남의 시간을 가져왔다.
17년간 매년 한차례씩 만나던 상봉의 기쁨은 2012년 박경재 씨가 숨지면서 끝이 났다. 안타깝게도 박 씨는 누나의 임종 소식을 4개월이 지나서야 듣게 됐고, 이때부터 박 씨는 누나의 유해를 어머니 곁으로 옮겨올 생각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지난 2005년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박 씨 남매의 어머니 지영자 씨는 마지막 순간까지 딸의 이름을 부르다 숨을 거뒀다고 한다. 박 씨는 지난 방북 때 누나의 유족을 만나 양해를 구하고 누나의 유골 일부를 미국으로 가져갔다.
박문재 씨는 VOA와의 인터뷰에서 “누나가 영원히 어머니 곁에 묻힐 수 있게 됐다”며 “나도 죽어 그 곁에 묻히면 가족이 죽어서라도 상봉하는 셈”이라며 감격해했다.
한편, 박경재 씨의 유골은 만수대 인근 공동묘지가 아니라 유골 보관소에 안치돼 있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와 관련해 대북 소식통은 “평양시민이라도 대부분 사망하면 화장을 거쳐 평양시내 각 구역에 있는 유골 보관소에 안치된다”며 “다만 형제산구역에 사회주의 애국열사묘지가 있어서 이 곳에는 당이나 국방위원회의 최고위급 간부만 안치된다”고 전했다.
또 소식통은 “북한은 해외동포들의 의료지원이나 봉사활동도 외화벌이 차원의 일환으로 허락하고, 때때로 북한이 필요로 하는 물품을 제공받기도 하기 때문에 특별히 공이 있는 해외동포를 관리하는 차원에서 북한 주민의 유골 반출을 이례적으로 허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해외 시민권자인 우리 동포가 북한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고, 북한을 방문한 해외동포가 남한까지 자유 왕래를 허용하게 된 것은 지난 1988년 ‘7.7 선언’의 후속 실천 조치로 가능해진 뒤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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