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대한민국의 창포가 될 공무원은 정녕 없는가


입력 2014.06.02 11:32 수정 2014.06.02 11:34        이상휘 선임 기자

<칼럼>굴원의 충절을 기리는 단오날의 참담한 소회

단오를 하루 앞둔 1일 오후 서울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한 소녀가 창포물에 머리감기 체험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임의 창포가 되겠습니다.”

아홉마디의 절이 나있다. 구절을 다한다는 의미다. 충성스런 신하의 맹세다. 아홉마디의 절이 충절을 말하는 것이다. 창포에 대한 의미다. 예로부터 창포는 그랬다. 주군에게 충성을 맹세할 때 비유되곤 했다.

단오날이다. 창포에 머리를 감는 날이기도 하다. 여자들은 그네를 타고 남자들은 씨름을 즐긴다. 한자 남짓한 줄기의 다년생 초화가 창포다.

단오날은 명절이다. 중국에서 건너온 것이라고도 한다. 그 의미야 깊이 새길 필요가 있나 싶다. 다만, 중국에서도 충절을 기리는 명절이라는 것쯤은 알 필요가 있다.

춘추전국말기 시대, 초나라에서였다. 굴원이라는 시인의 죽음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추모행사로부터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강직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초나라는 당시 진나라의 굴욕적인 요구를 받았다. 그 요구를 받아들이는 초나라 왕에게 분노했다.

결국 그는 귀향을 가게 된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한 굴원은 급기야 강에 몸을 던져 버렸다. 굽히지 않는 소신과 나라를 위한 충정에서였다. 사람들은 그를 기리게 되었다. 굴원의 충성심을 간직하기 위해서였다. 그게 단오절이다.

중국에서 인기있는 용선경주라는게 있다. 용머리를 한 배들이 서로 빠르기를 겨루는 경기다. TV 등을 통해 우리에게도 익히 알려진 스포츠다.

그러나 용선경주가 단순히 빠르기 시합이 아니다. 바로 굴원을 구하기 위한 행사다. 강에 투신한 굴원을 빨리 구하자는 것이다. 충절과 소신의 그를 버릴 수 없다는 중국인들의 의지인 것이다. 그것이 역사가 되어 아직까지 내려오고 있는 셈이다. 참으로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듯, 단오날은 단순한 명절이 아닌 것이다. 지금이야 그냥 스치듯 지나가는 날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말이다. 창포의 충절과 굴원의 소신이 어우러져 있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흔들리고 있다.

세월호 참사가 그렇고, 국가무능이 발가벗긴채 드러난게 그렇다. 공직자들은 바짝 엎드려 숨을 죽이고 있다. 정치권은 국가보다는 당리당략에 몰두하는 모습이다. 정부는 상황만 피해가면 된다는 인식때문인지, 뭐하나 시원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은 국가개조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첫 단추도 꿰지 못한채 허둥대는 모습이다. 총리는 누가 될 것이며, 개각은 어떻게 될 것이며, 혼란한 정국을 어떻게 수습할 것인지, 답은 보이지 않고 문제만 가득하다.

유병언이라는 세월호 참사의 주역(?)은 전국을 휘저으며, 국가를 조롱하고 있다. 지방선거는 목전인데, 누가 선량인지는 아무 관심도 없다. 시큰둥하다. 그야말로 총체적 위기가 아닐 수 없다. 국민들은 가슴만 답답할 뿐인 것이다.

국가를 위하는 자세, 국민을 위하는 마음, 그것이 무엇일까 싶다.

당리당략보다 국가를 위하는 정치인의 자세, 복지부동보다 당당하고 소신있는 공직자의 자세, 왜 그러한 문화가 없는지를 말이다. 곰곰 반성하고 반문해 볼 때인 것이다. 충성과 소신으로 흔들리지 않는 그런 사람들이 필요하다. 국가와 대의명분을 위하는 사람들 말이다.

지금이 바로 그러한 시기다. 창포의 구절마디만큼 충절을 그리워하는 것은 지나친 것일까. 굴원의 소신처럼,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의 애국심을 기대하는 건 어리석은 것일까.

단오날이다. “대한민국을 위한 창포가 되겠습니다” 그 한마디가 그리워지는 날이다.

이상휘 기자 (shonlee@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관련기사
이상휘 기자가 쓴 기사 더보기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