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소사이어티 인터뷰-암투병 중인 소설가 복거일 씨>
"학부모 1000명만 들고 일어서면 계급사관 척결 가능"
한국의 대표적인 자유주의자로 꼽혀온 소설가 복거일 씨(68)가 자전 소설 '한가로운 걱정들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내의 하루'(문학동네)를 펴내면서 자신이 2년 반 전에 간암 판정을 받았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그는 말기암에 따른 시한부 삶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기 위해 항함 치료를 거부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주변을 놀라게 했다. 그를 만나 최근의 심경과 한국 사회를 보는 특유의 균형 잡힌 시각을 전해 들었다. 그는 “기력이 다할 때까지 쓸 것이다. 그게 삶의 본질에 맞게 내 삶을 마감하는 길이니 깃발을 휘날리며 진격하다 죽을 것이다.”라고 소설 주인공의 입을 빌어 선언한 바 있다. 인터뷰에서 복거일 씨는 자신의 성장담과 한국사회 이념 문제 등에 관해 소견을 두루 밝혔다.< 편집자 주 >
-간암 얘기가 처음 알려진 건 조선일보였습니다. 3월27일이던가? ‘항암(抗癌) 치료 받지 않는다… 글을 쓰고 싶으니까’가 인물 면에 실렸죠.
“문학담당 기자가 그 소설을 읽다가 뭔가가 이상하다고 판단해 바로 달려와 저의 투병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소설에 제 얘길 넣었던 건 지난 2년 반 동안 간암 얘기를 남에게 알리기도 뭐했기 때문이죠. 제가 과음도 안하고 담배도 안 피우는데도 간암이에요. 2년 반 전 간암 진단을 받았는데, 암세포가 전이(轉移)돼 치료받기엔 이미 늦은 상태였습니다. 이후 정밀진단도 거부했고, 병원에 가지 않았죠. 사실 소설가 최인호 선생 등이 항암 치료를 받느라 글을 못 쓰는 걸 봤기 때문이죠.”
-간암은 가족력이 있는 것 아닙니까?
“간암 판정 때 병원에서도 그걸 물어보더라구요. 제 부친도 그걸로 돌아가셨거든요.”
-그런데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자각 증세는 없으세요?
“왜 오긴 오죠. 몸을 구부리면 간 부위 쪽이 압박이 느껴집니다. 좀 피곤하고…. 그래도 견딜만합니다.”
"아직 견딜만 하고, 진격하는 삶을 살겠다"
'한가로운 걱정들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내의 하루'에서 눈 여겨 볼 대목은 자신을 호메로스 '오디세이아'의 주인공인 오디세우스로 설정한 대목이다. 복거일이 볼 때 오디세우스는 본질적으로 지식을 추구한 사람이다. 식민지 체험과 분단과 전쟁으로 얼룩진 한반도의 시골에서 태어난 뒤 세상을 보다 넓게 볼 수 있게 된 자신도 이미 오디세우스의 한 명이다. 스스로 지식인이 되기를 열망한 오디세우스 과(科)의 사람으로 그는 요즘 이념논쟁으로 몸살 앓는 세상에 대한 견해를 많이 드러내고 있다. 한국의 자유주의 논객 혹은 보수 논객으로 분류되는 복거일은 자본주의 시장경제, 진화생물학에서 한반도 주변정세에 이르는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생애 첫 기억이 중요한데, 선생님의 경우 또 다른 자전소설 '캠프 세네카의 기지촌'(1994)에 그 얘기를 집어넣었던 걸로 압니다.
“맞습니다. 6‧25 직후 충남 아산 신창면 고향에서 그의 나이 갓 네 살 때 이념 갈등과 살육을 저도 보고 겪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선한 건 좌익청년들의 습격이죠. ‘복 아무개 죽여라!’ 죽창을 든 열다섯 명 좌익 청년들이 언덕 위로 모습을 드러내더니만 곧바로 우리집으로 쳐들어왔습니다. 한여름 해가 뉘엿뉘엿하던 무렵이었죠. 그때 대문가에 서서 지극히 놀란 마음으로 살기등등하던 그 광경을 지켜봐야 했던 게 저의 생애 첫 기억입니다. 복 아무개란 마을의 우익이던 자기 큰아버지 이름이었거든요.”
-막상 부친께서는 큰아버지와 또 달리 좌익이었잖습니까?
“아버지는 여운형의 건준(建準)에 참여했죠. 적에게 붙었다는 뜻의 부역자로 불렸습니다. 아버지는 좌익 경력을 씻고 가족 부양을 위해 6.25전쟁 때 미군 의무대대의 노무자로 취직합니다. 그걸 계기로 아버지께선 미 기지촌을 따라다니며 약방과 세탁소 등으로 생업을 삼으셨고, 처자식을 부양했습니다. 그런 연유로 저는 1950~1960년대 성장기 내내 기지촌의 아이로 자라났던 것입니다. 우리 가족은 현대사의 한복판에서 있었던 셈이죠. 어쨌거나 이렇게 미시사, 가족사를 파고들면, 사회과학이 포착 못하는 현대사의 미세한 결이 드러나죠.”
복거일의 균형감각은 그런 가족사와 성찰 속에서 만들어졌다. 다행스럽게도 회색분자로 숨어들지도 않았다. 엔간하면 좌파연하는 지식사회에 묻어가는 게 편했을 텐데 그것도 거부했다. 지식인의 위선과 지적(知的)사치를 사양한 그는 외려 자유주의와 시장경제의 옹호자로 나섰다. 그런 복거일을 떠받쳐주는 힘은 진리에 대한 순종이 아닐까? 그래서 한국사회를 흔드는 집단정서인 민중주의-과잉 민족주의 도그마에 휘둘리지 않는, 진정한 의미의 독립 지식인으로 활동하는 게 가능했으리라.
좌파 지식사회에 묻어가는 걸 거부한 그의 용기
-좌파연해야 사람 취급을 받습니다. 복 선생님이 지식사회의 비주류인 건 좌파연하는데 동조하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한국사회의 이념이 과연 건강한가 큰 의문입니다. 우리 헌법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자본주의)를 두 개의 축으로 합니다. 이게 정설이죠. 문제는 이 정설에 맞서는 이설(異說)이 너무 많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자기 입맛대로 헌법의 규정을 취사선택할 순 없습니다. 비판을 할 때도 헌법 정설의 틀 안에서 이뤄지는 게 정상입니다. 자유주의-시장경제라는 헌법 가치를 지지하는 게 보수라면, 제가 보수로 분류되는 걸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
-역사교교서도 바탕에도 계급사관의 변종인 민중주의와, 강렬한 좌파 민족주의가 깔려있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 건국을 부정하는 태도로 발전합니다. 이번 소설에도 한가로운 걱정들의 하나가 민중주의이더군요.
“맞아요. 암이란 게 다세포 생물에게는 본질적 위협 아닙니까? 세포 하나하나마다 자기가 번식하려고 경쟁하는 거죠. 룰을 안 지키고 내가 더 가져가겠다는 건데, 사회도 마찬가지예요. 민중주의라는 게 암의 하나죠. 민중주의는 응집력이 약해진 민주주의 사회에게 본질적인 위협입니다. 민족의식이란 게 식민지 상황에서는 긍정적 에너지이지만, 독립 이후 잘못하면 눈먼 민족주의로 발전합니다.”
-우리시대 최대문제는 과잉 민족주의입니다. 그래서 친일파라는 딱지는 최악의 욕설로 통합니다.
“그게 국수주의예요. 우리만큼 국수주의에 완전 장악된 것은 거의 유례가 없습니다. 북한 인권에 눈감는 친북, 종북이란 것도 우리민족끼리라는 민족주의 정서 탓입니다. 나치즘 하의 독일, 군국주의 하의 일본도 그래도 소수의 지식인은 국수주의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습니다. 우린 그렇질 않아요. 특히 국사학계 전체를 감싸고 있는 가장 완고한 틀인 국수주의는 위험합니다. 우리 역사는 중국 등 이웃나라의 움직임을 외면하면 거의 해석이 안 됩니다. 그런 상식조차 외면한 채 일국사에 갇힌 채 왜곡을 거듭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