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그룹, 제조부문 살리려면 금융부문 지배권 담보해야
동부CNI 회사채 만기 이어져…채권단 "동부화재 지분 담보로 내놔야 자금지원"
동부제철 채권단이 1일 동부제철 자율협약 진행에 합의하면서 동부그룹은 주력 계열사 중 한 곳의 워크아웃 위기를 넘기게 됐다. 하지만 그룹 제조부문 지주회사인 동부CNI의 눈앞에 닥친 위기는 해결하지 못했다.
더구나 채권단은 동부그룹 오너 일가의 지배권 유지에는 관심이 없다. 오너 일가가 보유한 금융부문 지분을 담보로 걸어야만 동부CNI의 생존을 위한 자금을 수혈 받아 제조부문 지배구조를 유지할 수 있는 상황이다.
동부제철 채권단은 1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에서 실무자 회의를 열고 동부제철 자율협약 진행을 위한 사전협의를 마무리했다. 이날 회의에서 신용보증기금은 신속인수제를 통한 동부제철 회사채 차환 발행을 지원키로 채권단과 합의했다.
이에 따라 신보는 회사채 신속인수제를 통해 7∼8월 중 만기가 돌아오는 동부제철 회사채 1100억원에 대한 차환 발행을 지원할 예정이다.
채권단은 자율협약 체결을 정식 안건으로 상정해 오는 4일까지 의견을 모은뒤 7일 자율협약을 개시할 예정이다.
자율협약이 개시되는 7일은 동부제철의 회사채 700억원의 만기가 도래하는 날로, 이날 즉시 만기도래분에 대한 차환발행 지원도 이뤄진다.
자율협약이 개시되면 동부제철의 경영은 사실상 채권단 손에 넘어가게 되지만, 대신 주채권자들은 대출상환기간 연장이나 필요한 운영자금 추가 대출 등을 실시한다. 일단 유동성 위기 측면에서 급한 불은 끈 셈이다.
하지만, 다른 제조부문 계열사들도 유동성 위험이 높아 그룹 전체의 정상화는 여전히 험난한 상태다. 특히 그룹 제조부문 지주회사인 동부CNI도 대규모의 회사채 만기 도래 일정이 줄줄이 예정돼 있다.
당장 오는 5일과 12일 각각 200억원과 300억원의 규모의 회사채를 상환해야 한다. 9월에도 200억원 규모 회사채 만기가 돌아온다.
1일 동부CNI가 조회공시 답변을 통해 IT 사업부문을 동부화재 등 금융계열사에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힌 바 있지만, 당장 만기 도래가 임박한 회사채 상환과는 거리가 있다.
설령 현 시점에서 매각이 확정된 상황이더라도 기업분할과 주주총회 등의 절차를 감안하면 이달 중 필요한 500억원의 현금 확보는 불가능하다.
앞서 동부CNI는 경기도 안산 공장을 담보로 250억 규모의 담보부사채 발행을 통한 자금조달을 추진하기도 했지만, 금융당국이 구체적인 상환능력과 투자위험 등을 구체적으로 요구할 조짐을 보이자 철회한 바 있다.
채권단은 동부CNI의 제2금융권 여신이 많은데다, 회사채 만기가 계속 이어지고 있어 동부그룹이 자체적으로 동부CNI의 자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법정관리도 불사하겠다는 강경 입장이다.
동부CNI는 동부제철, 동부하이텍, 동부건설, 동부메탈 등 제조부문 주요 계열사의 지분을 보유하며 그룹 내 제조부문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는 만큼 동부CNI의 위기는 동부그룹 제조 계열사들의 지배구조 해체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해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오너 일가가 보유한 동부화재 지분을 추가 담보로 제공하는 것이다.
채권단은 동부CNI에 대한 자금 지원의 전제조건으로 김준기 회장의 장남 김남호 동부제철 부장이 보유 중인 동부화재 지분의 담보 제공을 요구하고 있다.
김 부장이 보유한 동부화재 지분은 대부분 금융권에 주식담보 등이 설정됐지만, 처음 자금을 빌릴 때 2만원 미만이던 주가가 현재 5만원대까지 오르면서 추가 담보 여력이 3000억원 가량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김준기 회장은 아들이 보유한 동부화재 지분이 본인과 상관이 없다면서 채권단에 담보제공을 거부하고 있다. 그룹 제조업 부문을 살리기 위해 금융 부문의 지배권까지 담보로 걸었다가는 그룹을 통째로 날릴 수도 있다는 위기감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 일가는 동부화재를 통해 동부증권·동부생명·동부자산운용·동부저축은행 등 동부그룹의 금융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다. 제조업 부문 지주회사인 동부CNI에 대비되는 금융 계열 지주회사가 바로 동부화재다.
김남호 부장이 보유한 13.29%를 비롯, 김준기 회장이 6.93%, 김 회장의 장녀 주원 씨 4.07% 등 오너 일가가 24.29%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김 회장 일가는 한 손에 쥔 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 다른 한 손에 쥔 것까지 놓칠 위기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동부CNI가 맞이할 첫 번째 위기가 불과 나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동부그룹이 이를 손 놓고 바라만 볼 것인지, 금융 계열사들의 지배권을 담보로 이를 막아내는 모험을 걸 것인지, 아니면 다른 제3의 방안을 찾아낼 것인지 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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