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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 9시 등교? 안전은 누가 책임지나, 막막하기만..."


입력 2014.08.15 09:57 수정 2014.08.15 09:59        이슬기 기자

초등 저학년 학부모 "직장맘은 아이 혼자 등교시켜야. 안전문제 더 걱정"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왼쪽에서 두번째)이 오는 2학기부터 경기지역 초·중·고교의 ‘9시 등교’ 전면 시행 의지를 밝히면서 학부모들과의 이견대립이 격화되고 있다.(자료사진) ⓒ데일리안 이혜진 기자

"등교시간이 9시로 조정되면 나 같은 직장맘은 어떻게 하나. 애를 혼자 두고 갈 수도 없고."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이 오는 2학기부터 경기지역 초·중·고교의 ‘9시 등교’ 전면 시행 의지를 밝힌 가운데 학부모들과의 이견대립이 격화되고 있다.

앞서 이 교육감은 등교 시간을 9시로 늦춤으로써 △수면 시간을 늘려 피로를 덜어주고 △식구들과 아침 식사를 할 시간적 여유를 제공, 학습 효과는 물론 가족과의 유대감도 높인다며 해당 정책 추진을 적극 내세웠다.

문제는 ‘9시 등교’ 정책이 대다수의 맞벌이 부부 가정의 현실과 맞지 않아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일단 반기를 들고 나선 건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을 둔 맞벌이 부부 가정이다.

현재 경기도 내 대다수 학교의 등교시간은 초등학교 8시30분, 중학교 8시, 고등학교 7시30분이다. 초등학생들은 30분에 등교하면 약 20~30분 간 독서나 미술놀이 및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단체 활동 등을 한 후 9시부터 수업이 시작된다.

대다수를 차지하는 맞벌이 부부 가정의 현실상, 부모들은 오전 8시 이전에 집을 나서면서 어린 자녀를 학교까지 데려다 주고,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후 출근한다.

따라서 9시 등교가 현실화될 경우, 저학년 학생들은 부모가 먼저 나간 집을 홀로 지키고 스스로 문단속을 한 뒤 혼자 등교하게 된다. 이 같은 우려로 부모와 함께 등교하는 아이는 정책을 바꾼다 해도 등교시간이 똑같거나 장시간 동안 빈 교실을 홀로 지켜야 한다.

초등 저학년 워킹맘 "아이 혼자 등교시키는 게 더 불안"

실제로 경기도 산본 소재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을 둔 학부모 A씨는 지난 13일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등교시간이 9시로 조정되면 나 같은 직장맘(맞벌이하는 아이엄마)은 어떻게 하라는 건지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A씨는 “딸아이가 직장맘인 내 스케줄에 맞춰 아침 7시에 기상해서 같이 아침 먹는다. 학교는 아이 걸음으로 10분도 안 되는 거리이고 30분까지 등교라 8시 10분쯤 같이 나간다”면서 “아이가 학교 가는 모습 확인하고 나도 출근하는데, 아이만 30분 늦게 따로 나오라고 하려니 불안하다”라고 말했다.

특히 A씨는 우려 섞인 목소리로 “그럼 하교 시간도 늦어질 텐데 학원시간 때문에 방과 후 활동은 이제 다 포기할 수밖에 없다. 학교숙제까지 하면 더 늦어지지 않겠느냐”면서 “학원 시간도 차질이 생길 것 같고 모든 게 답답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산 동구 소재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의 학부모인 B씨도 “서울로 출근하는 맞벌이들은 거의 8시 전에 다 나가고, 그 때 아이도 같이 나간다”면서 “지금도 그 시간에 애를 학교에 데려다 주면 아이가 너무 일찍 도착해서 교실에 한동안 혼자 있는데, 그 시간이 더 길어진다는 것 아니냐”라고 우려를 표했다.

B씨는 이어 “경기도는 도심 아니고는 굉장히 외진 곳이 많다. 대부분 학교가 아이 걸음으로 걸어서 10분 거리이긴 하지만 보호자도 없이 외진 데를 혼자 보낼 순 없지 않은가”라며 “짧은 시간이라 해도 부모는 무슨 일 생길지 몰라 걱정인데 차라리 엄마아빠 나갈 때 애를 같이 데리고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9시 등교 정책이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는 대목이다.

게다가 해당 정책을 당장 다음 달부터 시행하겠다면서 정작 학부모들에게는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은 상황이다.

B씨는 앞서 전화를 건 기자의 물음에 “그게 정말이냐. 처음 들었다. 혹시 아이가 가정통신문을 안 갖다 준 건지 찾아보겠다”며 전화기 너머로 한동안 아이의 가방을 뒤적인 후 “가정통신문 같은 것도 전혀 없다”고 말했다.

B씨는 그러면서 “혹여 가정통신문을 보냈는데 내가 못 받았다고 해도, 평소에 다른 엄마들과도 종종 만나는데 당장 2학기부터 시행한다는 정책을 나만 못 들었을 리가 없다”면서 “취지는 좋지만, 제대로 알리고 학부모들한테도 물어봐야지 이렇게 갑자기 시행하면 되겠느냐”고 황당함을 드러냈다.

아울러 경기도 초등학생 부모들의 모임인 한 온라인 카페에서도 “학생들에게 여유와 아침식사를 보장해주자는 본래의 취지에는 공감한다”면서도 “당겨진 시간 동안 방치되는 아이들을 어떻게 할지 관련 시설 및 프로그램은 물론 혼자 등교하는 아이들을 위한 안전대책 등이 만들어진 후에 시행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등교시간이 이른 중고교생 학부모들의 반발도 작지 않다. 당장 수능을 기준으로 하는 고교생들의 생활 패턴 및 생체리듬이 깨지는 것은 물론, 아침 아침부터 공부에 돌입하는 타 지역 학생들과 비교할 때 학력 저하 영향을 줄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다.

이재정 “등교 시간 늦춰 수면 시간 늘리면 집중력 향상”

이에 대해 이 교육감은 CBS 라디오 인터뷰에 출연해 “아이들이 9시 등교를 정말 원한다”며 “등교 시간을 늦춰 수면 시간을 늘려주면 피로회복과 집중력 향상에도 도움이 되고 더 효과적으로 공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가정에서 식구들이 한 밥상에 모일 수 있는 기회가 아침시간 밖에 없다”면서 “식구들과 함께 식사하면서 유대감을 형성해 가정을 살리는 것도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 교육감은 전날 수원시 경기도교육복지종합센터에서 열린 ‘경기교육사랑학부모회 워크숍’에 참석해 도내 지역별 학부모회 대표 70여명과 만나 약 30분간 오전 9시 등교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았다.

그는 이 자리에서 “맞벌이 부부는 거의 오전 8시 이전에 출근하는 실정을 전혀 고려치 않은 정책이다. 학교장 자율에 맡기라”는 일부 학부모의 질문에 ‘학교장 자율에 맡기면 폐해가 발생한다’는 취지로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또 다른 학부모가 “어린 자녀를 홀로 두거나 혼자 등교 시키면 안전에 대한 염려가 크다”고 우려를 표명하자 이 교육감은 “아이들이 9시 등교를 정말 원한다. 아이들 중심으로 생각해달라”며 학부모들을 설득했다.

아울러 ‘학습 시간을 줄였다가 다른 지역에 비해 학습 능력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학부모들의 우려에 대해 이 교육감은 “공부를 잘하려면 잠을 충분히 자야하는데 0교시 수업 때 학생들은 잠만 잔다”라며 “자신 있게 말씀드려서 성적이 오히려 올라갈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슬기 기자 (wisdom@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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