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적인 박 대통령의 유엔 데뷔...'옥의 티' 유감
<기자수첩>연설문 미리 배포해 놓고 기사내려 달라 요청
박근혜 대통령이 4박 7일간의 캐나다 및 미국 순방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취임 이후 처음으로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하는 등 박 대통령이 전 세계 정상들 앞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미국 순방 마지막 날 청와대 행정팀은 아마추어 같은 실수를 저질렀다.
사건은 한국시간으로 25일 오전 11시경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생활하는 춘추관에서 발생했다. 2층 행정실에 있던 행정관들이 갑자기 내려와 박 대통령의 ‘뉴욕 주요 연구기관 대표 초청 간담회’ 전문에 대한 비보도를 요청했다. 춘추관에는 이번 순방에 합류하지 못한 몇몇 기자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유인 즉은 청와대 행정팀이 박 대통령이 이 전문을 간담회에서 읽을 것으로 알고 미리 기자들에게 자료를 배포한 것인데 결국 박 대통령이 이 전문을 읽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대신 풀 기자가 들어가 1분가량 취재한 내용만 보도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시간에는 이미 전문과 관련된 내용이 각종 포털 사이트 머릿기사를 장식하고 있던 시간이었다. 한 매체는 이 전문을 그대로 인터넷에 올려놓고 있었다. 이미 관련 내용이 모두 기사화돼 포털사이트에 송고된 상황에서 비보도를 요청하는 황당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박 대통령이 원래 읽으려했던 전문을 살펴보니 “과거사의 핵심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있고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진실이자 보편적 인관에 관련된 사안”이라는 문구가 포함돼 있었다.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박 대통령은 “전시 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어느 시대, 어떤 지역을 막론하고 분명히 인권과 인도주의에 반하는 행위"라며 일본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 전문에는 일본이 명확하게 명시돼 있다.
또 “일각에서 한국이 중국에 경도되었다는 견해가 있는 것으로 아는데, 이는 한미 동맹의 성격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오해라고 생각합니다. 이 자리가 일부의 그런 시각을 불식시키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라는 다소 외교적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문구들이 포함돼 있다.
이러한 문제로 박 대통령이 실제 간담회 자리에서는 이런 발언들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 연설문은 연설자의 순간적인 판단에 따라 수정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이 발언한 부분은 어떤 것이고 발언하지 않은 부분이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설명해 기사 수정을 요청할 일이지 무턱대고 포털에 출고된 기사 전체를 내려달라고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다.
특히 외교적으로 논란이 될 수 있는 내용이 많이 담겨있기 때문에 사전 배포에 좀 더 신중을 기했어야 한다. 이번 박 대통령의 미국 방문은 유엔총회의 첫 기조연설 등으로 전 세계 정상들이 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자리다. 이렇게 중요한 행사에서 청와대가 보여준 모습은 이번 순방에 대한 아쉬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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