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개' 지상파 예능 지고 '샐러드바' 종편 예능 뜨고
<김헌식의 문화 꼬기>'보편성' 지상파의 한계 '골라먹기' 종편 파고들어
몇 년전만 해도 지상파 예능과 케이블 나아가 종편의 예능은 비교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의 흐름은 완전히 바뀌었다. 케이블의 지상파 복제 논란이 많았지만 이제는 거꾸로 지상파가 케이블을 베낀다는 지적이 빈번하다. 종편의 출범초기도 마찬가지여서 어디서 봤음직한 예능들이 시청자의 눈을 현혹했다. 카피캣 혐의와 짝퉁 낙인이 찍혔던 케이블, 종편 예능은 자신들의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했고, 여기에 종편도 본격적으로 가세하고 있는 모양새다.
스타에 대한 태도
지상파 예능은 유재석, 강호동 등 스타 MC에 의존했다. 그러나 최근 MBC ‘별바라기’(강호동), KBS2 ‘나는 남자다’(유재석)는 시청률 저조의 대표사례가 되었다. 강호동의 KBS2 ‘달빛 프린스’는 8회 만에 폐지 됐다. 이제 스타MC때문이 아니라 재미 때문에 선호한다. 또한 스타 게스트들 위주로 그들의 입담에 의존하는 예능은 설자리를 잃었다.
SBS ‘힐링캠프’는 한 사람의 스타게스트에 의존을 고수하며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MBC ‘라디오 스타’는 스타 게스트들에 관한 독설토크에 의존하며 여전히 예전만 못하다. ‘심장이 뛴다’를 폐지하고 이효리를 앞세운 SBS ‘매직아이’도 이런 포맷에서 벗어나지 못해 반응이 시원치 않다. 스타들의 신변잡기는 더 이상 흥미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마당에 케이블에서는 몇몇 스타 게스트에 의존하는 형식에서 탈피하려 했다. 오히려 새롭게 발굴하는 측면이 강하다.
tvN '꽃보다 할배'는 평균나이 76세인 이순재, 박근형, 신구, 백일섭 등 원로배우 4인방을 캐스팅해 성공했다. 윤여정, 김자옥, 김희애, 이미연 등 여배우 4인방의 '꽃보다 누나'도 마찬가지였다. tvN 'SNL 코리아'의 묘미는 다채로운 출연진이었다. 출연자들을 어떻게 다양한 캐릭터로 구성하는가가 생명력 유지의 방책이었다. MBN ‘황금알’ 등에서는 각계 전문가들이 예능인 수준의 입담과 개그를 선보였다.
JTBC '썰전'이나 '마녀사냥'에는 강용석이나 이철희와 같은 비예능인을 과감히 기용했고, ‘마녀사냥’에서는 토크쇼에서 비켜있던 허지웅, 곽정은과 같은 낯선 게스트가 그 역량을 십분 발휘했다. ‘국경 없는 청년회-비정상회담’의 핵심주축은 외국인들이다. 샘 오취리·기욤 패트리 등 외국인 남성 패널 11명이 입담을 책임지고 있고 오히려 전현무·성시경·유세윤 등 진행자들의 역할이 모호해졌다.
케이블에서 신경을 쓰는 스타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바로 스타피디다. KBS ‘1박2일’의 나영석은 ‘꽃보다~’ 시리즈를 히트시켰다. ‘코미디 빅리그’의 김석현은 KBS ‘개그콘서트’ 출신이고, KBS2 ‘불후의 명곡’의 KBS 고민국은 tvN ‘오늘부터 출근’을 만들었다. 이외에도 ‘비정상회담’에는 MBC 임정아, ‘히든싱어’에는 KBS 조승욱이 있고, ‘썰전’은 KBS 김수아 -MBC 김민지, ‘마녀사냥’은 SBS 정효민의 연출작이다.
지상파 방송사의 스타 피디나 예능 전문 연출 피디들이 케이블이나 종편의 예능의 주축을 이뤘다. 이들은 지상파의 장단점을 잘 알고 있고 케이블이나 종편의 다른 가능성을 알고 있었다. 이들의 케이블이나 종편 진출은 더 좋은 조건만을 고려한 것은 아니다. 스타나 경륜의 프리미엄을 업고 새로운 시도도 감행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실험과 금기, 그리고 자극의 사이
어느새 케이블 예능은 새로운 시도를 적극적으로 감행하는 감각적인 신상 매체로 자리 잡았다. 반면, 지상파는 새로운 시도보다는 보수적인 예능 매체로 각인되었다. 무난하고 검증 가능한 포맷이나 아이템만 취하기 때문이다. 지상파가 기득권 프리미엄을 누리고 있을 때, 초기 케이블은 지상파와 유사성 통해 안정적 시청률을 확보하려 했다. 하지만 노하우와 제작 하부구조 결핍에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다.
지상파에서 하지 않는 아이템이나 포맷을 구성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생존을 위한 위험의 감수였다. 엠넷 '슈퍼스타K'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맥락이었다. 생존은 각 프로그램의 생존이 아닌 케이블 매체의 생존이었기에 각 제작진에게는 가혹한 경쟁 환경이 되었고 더 낯설고 실험적인 제작시도로 몰았다. 역설적으로 좀 더 자유로운 시도를 가능하게 했다. 저비용 고효율을 올려야 했던 케이블과 종편의 고육지책이 특화되는 순간이었다.
예컨대 tvN ‘코미디 빅리그’는 ‘개그콘서트’보다는 좀 더 금기에서 자유롭게 제작하도록 독려되었다. 게임과 드라마의 짬뽕 ‘지니어스’는 심리전을, JTBC ‘비정상회담’은 오로지 외국인 남자들만으로 웃겨야해 오히려 ‘미녀들의 수다’의 여성 성상품화를 뛰어넘었다. ‘히든싱어’는 모창이라는 일반적인 형식에 TV의 ‘듣는 음악’을 지향하며 주목을 받았다.
물론 케이블은 지상파에게 엄한 방송 규제가 케이블에게는 헐렁하다는 점을 잘 활용했다. 스토리온 ‘렛미인’은 성형을 과감하게 방송 아이템으로 사용하고,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금기를 넘나들었다. tvN 'SNL 코리아'는 섹슈얼리티 중심의 패러디 컨셉을 개그의 콘텐츠로 적극적으로 앞세웠다.
JTBC ‘마녀사냥’은 연애상담을 넘어 직접적인 실제 사례의 성적인 담론을 내세웠다. 이러한 행보들은 이는 지상파 방송사들이 방송규제 때문에 성적인 담론의 수위 조절을 더 신경을 써야 하는 점을 파고들었다. 성인 콘텐츠에 대한 결핍감을 가졌던 시청자들에게는 소구력을 갖게 되었다. 물론 성인오락채널 VIKI(비키) '노모쇼(No More show)와 같은 수준은 아니었다.
능동적 혹은 수동적 예능 소비자?
지상파 주요 시청층이 능동적인 콘텐츠 소비자라고는 할 수 없다. 특히, 예능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한데, 일정한 시간에 방송하기 때문에 시청을 할 뿐 그것을 적극적으로 찾아다니지는 않는다. 하지만 케이블 시청자층에는 예능을 적극적으로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능동적이고 충성도가 높은 소비자들이다. 이들은 예능에 대한 감각이 발달해있고 웬만한 예능을 선택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런 케이블형 콘텐츠 소비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남들이 잘 보지 않는 콘텐츠를 좋아한다.
금기를 어기거나 선정적일수록 좋고 비속어의 남발은 더 즐겁게 받아들인다. 무엇보다 콘텐츠가 우선 재밌어야 선택한다. 하지만, 남들에게 추천할 때는 사회적 가치도 있어야 한다. 즉 95%의 재미에 5%의 사회적 가치가 필요하다. tvN '슈퍼스타K' 오디션 열풍을 주도하며 ‘열린. 투명성’이라는 사회적 가치 차원의 해석이 풍부했고, tvN 'SNL 코리아'조차 정치와 사회에 대한 비판을 성적 담론으로 형상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JTBC ‘국경 없는 청년회-비정상회담’은 다문화시대의 글로벌 관점으로 한국사회를 조명하고, MBN ‘황금알’ 은 건강과 부부생활이라는 단순한 컨셉을 전문가들 사이의 상호논박과 토론이라는 형식을 취해 콘텐츠의 차별적인 가치를 획득했다. 이 때문에 브랜드 시즌제가 확실하게 확립되었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컨셉트의 예능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충성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케이블과 종편의 ‘렛미인4’, ‘슈퍼스타K6’, ‘히든싱어3’, 'SNL 코리아 5', '꽃보다~4’, '지니어스3' 등이 이에 속한다. 지상파의 경우에는 KBS2 '불후의 명곡2-전설을 노래하다', SBS 'K팝스타4'와 같이 주로 음악 프로그램에 한정되어있다.
지상파 예능은 적극적인 예능콘텐츠 소비자 대신에 여전히 중범위의 시청자를 겨냥하고 있다. 이 때문에 주중의 심야 예능은 거의 붕괴되었다. 대신에 주말 예능에 강세를 유지하려 한다. MBC ‘무한도전’, ‘일밤-진짜사나이, 아빠 어디가’, SBS ‘일요일이 좋다-런닝맨’, KBS ‘해피선데이-1박2일’ 등이 이에 속하는데 일요일 오후 4시 편성전쟁이 불붙은 것은 이 때문이다. 주중 예능이 무너진 상황에서 휴일 예능의 우위 점령이 절박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갈수록 편당 시간은 늘어 기본이 세 시간이며 ‘개그콘서트’조차 1시간 반이다.
지상파는 찌개전문점라면 케이블이나 종편은 샐러드바이다. 찌개는 한통에 모든 재료 넣고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같이 퍼먹는다. 그들을 맞추려면 일반적이고 보편적이어야 한다. 케이블이나 종편은 각자 자신이 마음에 드는 것들을 덜어서 먹는다. 물론 마음에 드는 것들만 골라 나누기도 한다. 낯설거나 새로운 것, 젊은 감각 혹은 올드한 입맛과 취향으로 나뉠 뿐이다. 시청자의 예능입맛을 위해 점점 그 역할이 분명해지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글/김헌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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