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국정을 감사하겠다는 의지는 여도 야도 없다
지난 7일부터 각 분과별 국정감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짧은 준비기간으로 인해 현장 곳곳에서 미흡한 부분들이 속출하며 민망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
지난달 30일 여야가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합의함에 따라 지난 5월 2일 본회의 이후 151일 간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였던 국회가 정상화됐다.
당시 여야는 7일부터 27일까지 20일 간 국감을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잠자던 국회가 깨어났지만 국정 전반에 관한 조사를 진행하는 국감의 준비기간이 1주일 밖에 되지 않는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부실 국감’을 우려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맞이한 국감 현장에서는 아니나 다를까 의원들의 심도 있는 질의 대신 여야 간 감정싸움만 오갔고 국회 사무처 측의 준비 부족으로 인해 허둥지둥대는 관계자들의 모습이 어렵지 않게 포착됐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7일 국감 시작 전에 끝냈어야 할 증인 채택 문제를 갖고 여야가 지루한 공방을 벌인 끝에 환경부 국감을 진행하지 못했다.
이어 8일 진행된 고용노동부 국감도 대기업총수의 증인채택을 두고 여야 간 갈등을 빚다 예정된 시각보다 1시간 45분 늦은 오전 11시45분 께 국감이 시작됐다.
우여곡절 끝에 국감이 시작됐지만 여야 의원들은 질의 대신 의사진행 발언으로 증인채택 문제에 대한 고집을 이어갔다.
이인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핵심분야와 관련해 국감 ‘앙꼬’에 해당하는 분들은 모셔야 한다”며 “회장이 아니면 사장을 증인으로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권성동 새누리당 의원은 “노사분규가 진행 중인 회사의 사용자를 부른다면 공정한 게임이 될 수 있는가”라며 “노사분규가 발생한 개별사업장의 사업주를 불러서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은 국회의 권한 밖의 일”이라고 반박했다.
이같은 상황에 결국 여야는 정회를 했으며, 야당 측에서 여당과의 증인채택 협상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2시 30분이 돼서야 회의가 속개됐다. 환노위는 꼬박 하루하고도 반나절을 국감과는 관련 없는 일로 허비한 것이다.
8일 국방위원회에서도 국감과는 전혀 상관없는 ‘쪽지’때문에 한동안 회의가 정회됐다. 송영근 새누리당 의원과 같은 당 정미경 의원은 전날 국감 도중 진성준 새정치연합 의원을 두고 ‘쟤는 뭐든지 삐딱!’, ‘이상하게 저기 애들은 다 그래요!’라는 글이 적힌 쪽지를 주고 받았다.
언론을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된 진 의원은 이날 국감장에서 “불쾌하기 짝이 없다”며 “도대체 무엇이 삐딱하다는 것인지 나를 포함해서 새정치연합 의원들이 모두 애 취급을 당해야 하는 것인지 난 동료 국회의원으로서 심한 모멸감을 느낀다”고 사과를 요구했다.
이에 정 의원은 “사적인 대화과 언론에 공개됨으로써 해당 의원이 유감을 표시한 부분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나 송 의원은 “개인적인 감정과 느낌을 나눈 것을 가지고 사과를 하라 그러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하며 진 의원의 사과 요구를 외면했다.
야당 의원들은 즉각 반발했고 결국 국감은 정회됐다. 15분이 지나 국감은 다시 시작됐고 그제서야 송 의원이 사과의 뜻을 표해 정상적으로 진행됐다.
정부를 감시하는 목적으로 진행되는 국감에서 이같은 여야 의원 간의 감정싸움으로 시간을 허비하며 올해도‘부실국감’이라는 오명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외통위에선 회의장 준비 미흡으로 우왕좌왕
외교통일위원회에서는 회의장 준비 미흡으로 인한 여러 일들이 벌어졌다. 외통위가 외교부를 대상으로 한 국정감사가 진행됐던 7일 오전, 외통위 회의실은 분주했다.
시간은 흐르고 회의 시간이 점차 다가오면서 회의장 내에는 기자들과 각 의원실 직원들, 피감기관 증인 등 다수의 사람들이 몰렸다. 그러나 회의장 내에 있는 의자의 개수가 모자랐고 인원을 다 수용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당황한 외통위 측은 어쩔 줄 몰라 하며 대응책을 논의했다. ‘회의장에 들어올 수 있는 일시증을 마련하자’는 등의 여러 이야기가 오갔지만 이미 회의장에는 많은 사람이 들어와 통제를 할 수 없었다. 결국 대다수의 사람들은 회의장에 들어오지 못하고 로비에 설치된 TV로 회의를 지켜봐야 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외통위 직원들은 부족한 좌석 때문에 우왕좌왕 하는 사이 10시가 됐고 유기준 외통위 위원장을 비롯한 외통위 소속 여야 의원들이 회의장에 자리를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질의순서가 나오지 않은 것.
질의순서는 통상 늦어도 회의 시작 한 시간 전에는 각 의원과 기자들에게 배부된다. 질의순서는 의원들에게는 시간 활용에 있어서, 기자들에게는 취재계획을 수립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것이 늦게 배부되며 관련 인물들은 모두 혼란을 빚을 수 밖에 없었다.
10시가 조금 넘어 초안이 나왔지만 질의순서에는 쌩뚱맞게 이완구 새누리당 의원의 이름이 명시돼 있었다.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 의원은 정보위원회와 안전행정위원회도 함께 맡고 있지만 외통위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또 다시 당황한 외통위 측은 부랴부랴 수정을 하러 갔고 국감이 시작된 지 20분이 지난 시간에야 최종본이 배부됐다.
외통위는 8일에도 질의순서를 늦게 배부됐다. 국감 시작 10분 전 기자가 관계자에게 질의순서를 요구했으나 ‘아직 안 나왔다’는 답변만 들을 뿐이었다. 국감은 10시부터 시작인데 10시 20분이 돼서야 질의순서가 나왔고 ‘왜 이렇게 늦게 나왔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한 외통위 직원은 그제서야 “지금 복사하러 갔으니 곧 나올 것”이라며 변명만 늘어놓았다.
외교부와 통일부의 국감을 마친 외통위는 10일부터 해외공관 시찰을 떠난다. 외통위가 국회에서 국감을 진행하는 이틀 간의 외통위의 모습은 분명 내실 있는 국회의 모습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였다.
빡빡한 일정과 준비 부족으로 인한 ‘부실 국감’은 미리 예견된 것이었지만 여야 의원들과 국회 측의 준비상태는 생각보다 훨씬 미흡했다. 정부의 감시기능을 수행해야 하는 국회가 이런 사소한 준비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모습에 모두가 민망해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