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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용 색칠 공부에 빠진 어른들, 이유를 알고보니...


입력 2014.10.25 10:05 수정 2014.10.25 10:08        김헌식 문화평론가

<김헌식의 문화 꼬기>심리적 성취감 충족감 실현이 중요, 과잉 기대 금물

성인들에게도 인기를 끌고 있는 각종 컬러링 북.ⓒ데일리안

성인 컬러링북이 인기다. ‘비밀의 정원’이라는 성인 컬러링북이 종합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장기 독점할 거 같던 하루키의 소설도 밀어냈다. 이외에도 다른 컬러링북들이 선전을 하고 있다. 컬러링 북은 색칠하는 책이다. 이미 그려진 윤곽선을 따라 그 안을 칠하면 된다. 대개 성인이라는 글자가 들어가면 성적 섹슈얼리티를 연상한다. 성인남녀의 육체적 관계에 관한 그림들이 등장할 것 같다. 하지만 여기에서 성인 컬러링북은 성적 담론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성인 컬러링북은 학습용이나 자아실현의 매개물이 아니라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것이다. '비밀의 정원'의 경우에는 아예 “안티-스트레스”라는 말을 표지에 드러내놓고 있다. 이 때문에 입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색칠을 통한 스트레스 해소라고 하니 미술치료의 개념을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미술치료에서는 내담자를 진단하는데 색칠 밀도나 활력, 압력, 그림의 크기, 위치, 공간분할 형식, 협동 태도 등을 모두 체크한다. 사실상 이런 평가기준으로 보면 정신적으로 문제가 없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 듯싶다. 정신장애 진단이나 치료의 대상이 되는 기분을 선호할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성인 칼러링북은 어떤 심리 효과가 있는 것일까. 성인들을 위한 컬러링북은 한곳에 몰두할 수 없는 현대인들에게 그림 색칠하기에 몰입하게 만든다. 다른 대상에 대한 몰입은 복잡하고 심리적 부담감이 큰 대상에서 이격을 시켜 놓는다. 단지 그림을 그린다면 컨셉을 잡아야 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나 불안이 가중될 수 있다.

이미 밑바탕 그림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 안을 색으로 칠하면 된다. 그림을 처음부터 창작하여 그릴 필요가 없기 때문에 가중되는 심리적 불안감이 덜 하다. 때론 정신 건강에 멍 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쉬어야지, 쉬어야지’ 의도를 반복하는 하는 것도 뇌를 피곤하게 만든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수다를 떠는 것도 뇌가 온전히 쉬는 것은 아닐지 모른다.

또한 수다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할 때도, 그 스트레스 대상을 계속 떠올리게 된다. 화가 났을 때 화가 난 사안에 대해서 다른 이들에게 털어놓으면 감정이 더 증폭한다는 연구도 있다. 그럴 때는 차분히 앉아서 글로 적으라는 이유가 이런 연구 결과에서 나온다. 색칠하기는 이런 면에서 생각을 중지하고 업무에서 벗어나 한곳에 몰입하도록 만든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그림이냐이다.

일단 '비밀의 정원'처럼 꽃이나 수목, 화초를 주로 그리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꽃이나 화초, 나무는 말 그대로 자연친화적이다. 그것을 보는 자체만으로도 편안한 느낌을 준다. 자신이 하나하나 색칠을 할 때 마다 생명을 탄생시킨다. 생명의 탄생은 생산적인 과정을 함의한다. 또한 그림이 단순하지 않다는 점이 중요하다. 아이들이 칠하는 것과 다른 점이 여기에 있기도 하다. 세밀하거나 화려하고 구조화되어 있다. 이런 그림은 단순 색칠이 아니라 하나의 작품처럼 보일만큼 정교하다. 이는 색칠을 다한 사람이 스스로 자신이 대견하게 할만한 것이다.

따라서 색칠을 끝낸 이들은 성취감을 느끼게 된다. 이는 치유나 치료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 무엇인가 이뤄내는 충족감을 주는 것이다. 따라서 기분이 전환되는 느낌을 지울 수 없게 된다. 자아존중감이 낮고 무력감이 시달리거나 존재적 의미를 갖지 못할 때 이런 성취감 혹은 충족감은 긍정적인 역할과 기능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점이 아동의 색칠공부와 다른 성인 버전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은 정신장애여부와 관계없이 인간이면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점이기도 하다. 그림이란 자기 스스로 통제감을 발휘하기 때문에 도파민의 분비를 촉진시킨다. 물론 억지로 그리는 그림은 스트레스 호르몬 코티솔의 분비를 더 많게 할 뿐이다. 만약 다른 사람들이 색칠을 하기 때문에 따라하고 그것이 반드시 효과를 내야 한다고 스스로 강박을 한다면 오히려 효과가 부정적으로 변해버릴 것이다.

근원적으로 미술치료도 그렇지만 컬러링북은 뇌가 망가진 상태 자체를 회복할 수는 없다. 또한 잠시 색칠공부에 빠져 심리적으로 부담이 없어졌다고 해도 현실의 스트레스 요인은 여전히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그 근본 문제와 정면으로 맞서지 않으면 해결법은 없겠다. 이런 현실을 모를 리 있을까. 근원적인 스트레스 요인이 없어지기는 쉽지 않으니 이런 컬러링북이라도 붙잡고싶은 심리는 세계인이나 한국이나 공통적이겠다. 컬러링 북에게만 의존한다면 그것은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할 수 있으니 말이다. 아이도 어른도 색칠을 한다. 무엇보다 자기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세상으로 나와야 한다. 또 세계를 통해 자신으로 나와야 한다.

글/김헌식 문화평론가

김헌식 기자 (codess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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