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을 막는건 박 대통령 아닌 금배지 나으리들
여야 모두 분권형 추진 의회중심 통치구조 가닥
'특권 강화냐!' 정치권 불신이 가장 큰 걸림돌
여야 국회의원 154명으로 구성된 ‘개헌추진 국회의원 모임’이 내주 중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구성 요구안을 제출할 것으로 5일 알려지면서 한동안 잠잠했던 개헌 논의가 다시 불붙고 있다.
하지만 여론은 싸늘하다. 최근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개헌에 찬성하는 응답이 절반을 넘었지만, 국회에 대한 불신에 각종 오해가 더해지면서 부정적인 시각도 확산되고 있다. 주된 오해는 개헌이 곧 국회의 권한 확대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개헌과 유럽식 의원내각제가 동일시되고 있다.
문제는 정치권에 대한 신뢰이다. 부패세력, 특권세력이라는 인식 하에 국회에 대한 신뢰가 바닥에 떨어진 상황에서 오히려 국회의원 특권 강화의 여지가 있는 개헌은 기대보다 오해의 소지가 많다.
개헌=이원집정부제?
국회에 대한 신뢰는 그야말로 바닥이다. 문화일보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마크로밀엠브레인에 의뢰해 지난 27일부터 28일까지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p)에 따르면, 설문대상 중 89.7%가 정치권이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 같은 여론은 개헌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고스란히 나타났다. 개헌에 대한 찬성 응답은 58.7%였으나, 권력구조를 의원내각제로 개편해야 한다는 의견은 9.0%에 불과했다. 영국과 일본 등에서 운영하고 있는 의원내각제는 총리를 비롯한 내각의 구성·해산권을 의회가 갖는, 대표적인 의회 중심의 통치구조이다.
의원내각제를 반대하는 쪽에서는 그 이유로 다수당이 입법권과 행정권을 독점할 우려가 있고, 내각이 정당 간 권력 나눠먹기의 도구로 전락할 소지가 있고, 현 상황에서는 정쟁이 심화해 정국이 마비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들고 있다. 여기에는 대다수의 국회의원들이 부패하고, 무능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개헌이 의원내각제로 오해받는 가장 큰 이유는 여야가 현재 추진 중인 개헌 방향이 분권이라는 점이다. 실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제시하고, 우윤근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공감을 표한 오스트리아형 이원집정부제의 경우, 의원내각제까지는 아니지만 의회가 선출한 총리가 막강한 권력을 갖는 구조이다.
하지만 개헌이 추진되더라도 우리나라의 권력구조가 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로 바뀔 가능성은 낮다. 김 대표와 우 원내대표의 입장도 개인적 의견일 뿐, 원내에는 300개의 다른 의견이 존재한다.
매일경제가 지난 9월 현직 국회의원 3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47.0%가 4년 중임 대통령제로 개헌을 추진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원집정부제와 의원내각제가 바람직하다는 의견은 각각 25.8%, 17.9%였다. 해당 조사에는 151명(새누리당 90명, 새정치연합 61명)이 응답했다.
응답자 비율로만 따지면 대통령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정부 형태를 바꿔야 한다는 의견을 근소하게 앞섰다. 안철수 새정치연합 의원과 박원순 서울시장 등 야권의 유력 대권주자들도 최근 대통령제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개헌을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의원내각제와 달리 이원집정부제가 대통령의 존재를 인정하는 점을 고려하면 두 의견을 조율하거나 하나로 모으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따라서 해당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의원들의 입장을 전제로 논의가 진행된다면, 다수결에 따라 현행 대통령제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개헌이 추진될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제 개선도 의회의 권한 강화보다는 대통령에 과도하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한다는 측면이 강하다. 현재 우리나라의 대통령제는 대통령이 의회의 동의를 얻은 국무총리를 임명하고, 국회의원이 국무위원을 겸할 수 있는 변형 대통령제이다. 또 사법부와 입법부가 행정부로부터 완전히 독립돼 있지 못 하다.
개헌안 상정돼도 의결까진 첩첩산중
다만 특위가 구성돼 개헌이 공식적으로 논의된다고 해도, 실제 헌법이 개정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관측된다. 기본적으로 개헌안을 발의하는 데에는 재적 국회의원(300명)의 과반이 참여해야 하는데, 현재까지는 개헌을 추진하는 쪽에서도 정리된 입장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 여야 개헌모임은 이원집정부제에 가까운 4년 중임 대통령제를 초안으로 마련했지만, 국회의장 직속 헌법개정자문위원회는 6년 단임 대통령제에 국회에는 양원제를 도입하고, 대통령에 하원 해산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개헌안을 내놨다. 자문위의 안은 개헌모임의 안과 비교해 대통령의 권한이 훨씬 막강하다.
우여곡절 끝에 개헌안이 발의된다고 해도 본회의 의결 절차를 거쳐야 한다. 개헌은 재적 의원 과반 참석, 참석 의원 과반 찬성을 요하는 법률 개정과 달리 재적 의원 3분의 2(200명)의 찬성을 요한다.
특히 개헌은 국민투표를 거쳐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국회에서 의결된 개헌안이 부결될 가능성도 있다. 국민투표에서 개헌이 의결되려면 유권자 과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의 찬성이 필요하다.
한편, 개헌모임을 이끌고 있는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4일 기자들과 만나 ”다음 주쯤 국회 운영위원회에 의원 40여 명이 서명한 개헌특위구성 요구안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요구안은 ‘국회에 여야 의원 10명씩 총 20명으로 특위를 구성해 내년부터 개헌 문제를 본격 논의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와 함께 이 의원은 개헌모임 소속 의원 154명 전원 명의로 개헌특위 구성을 촉구하는 결의안도 낼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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