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원 칼바람 부는 을지로에 은행맨이 하는 말이…
"이젠 사양산업 확실해...적자점포 늘어 불가피" 받아들이는 분위기
“요즘 구조조정 이야기가 나오면서 눈치를 살피는 분위기가 심하다.”
은행가에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연말에 대규모 구조조정이 있을 것이다’는 소문이 은행권에 나돌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을지로에 모인 은행맨들은 갑자기 불어 닥친 칼바람이 자신을 향하지 않을까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한 시중은행 서울 지점에서 근무 중인 이 모씨는 연말을 앞두고 ‘흉흉한 분위기’가 느껴진다며 구조조정의 한파를 체감하고 있다고 하소연이다. 과거엔 ‘신의 직장’으로도 불렸지만, 최근 은행맨들 스스로 “사양산업에 접어들었다”며 갈수록 좁아지는 입지에 고민이 깊어진 모습이다.
은행입사 15년차인 이씨는 “씨티은행처럼 3년치 이상의 연봉을 한꺼번에 안겨준다면 고민해볼 수도 있지만, 아이가 둘인데 그럴 상황이 아니다”며 “요즘 주변에서는 ‘나는 아니겠지’라는 말을 자주한다”고 했다.
은행맨들은 “구조조정 수준까지는 아니어도 인원감축은 있을 것”이라며 은행권이 처한 ‘현실’을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더욱이 노조가 나서서 결사반대 투쟁에 나설 명분도 마땅치 않다.
계속된 저금리 기조로 수익은 줄어든데다 스마트폰·인터넷뱅킹 등 비대면 채널이 은행 영업의 주력 채널로 자리 잡으며 적자 점포가 늘어나 인력 감축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덩치가 큰 4대은행(신한, 국민, 하나, 우리)을 중심으로 냉기가 돌고 있다. 특히 금융권에서는 국민은행이 오는 21일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겸 국민은행장 취임 이후 희망퇴직을 논의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국민은행측은 “구조조정은 논의된 바 없다”고 하지만, 수익성이 예전같지 않은데다 직원규모가 다른 시중은행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구조조정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국민은행 직원규모는 총 2만 1399명으로 비슷한 규모의 우리은행(1만5366명)이나 신한은행(1만4570명)과 비교해 많은 편이다.
우리은행도 400명가량을 희망퇴직·임금피크제 대상자로 분류했고, 하나은행과 조기통합을 추진 중인 외환은행은 특별퇴직 형식으로 60여명을 내보낸다.
이달 말 60명가량을 특별퇴직 형식으로 내보낸다. 이미 올해 상반기에 54명을 정리해 올해만 100명 넘은 임직원이 은행을 떠났거나 떠날 예정이다. 신한은행은 노사합의를 거쳐 희망퇴직 신청을 받을 예정이다.
은행맨 "우린 사양산업"…온라인에 밀려 점포 20곳 중 1곳씩 사라져
실제 은행 창구 대면거래 비중은 2005년 집계 후 최저치인 11.3%까지 떨어졌고, 올해들어 시중은행의 점포 20곳 중 1곳 꼴로 문을 닫았다.
2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국민ㆍ우리ㆍ신한ㆍ하나ㆍ기업ㆍ외환ㆍ한국SCㆍ한국씨티 등 8개 시중은행의 국내 지점(출장소 제외)은 총 4564개로 1년 만에 252개가 사라졌다.
점포축소는 자연스럽게 인원감축 추진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점포는 계속 줄고 있고, 예대마진도 예전 같지 않아서 위기감이 더 커지는 경향이 있다”며 “예고없이 구조조정을 하진 않겠지만, 희망퇴직 등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서서히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은행맨들은 디지털 금융 확장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입지가 급격하게 줄어들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미 IT기업인 다음카카오는 최근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에 기반을 둔 모바일 결제서비스 ‘뱅크월렛카카오’를 국내 최초로 출시해 금융산업의 개혁을 예고했다.
영업점을 두지 않고 인터넷이나 모바일 등 온라인으로 영업을 하기 때문에 점포나 인력 유지비용이 적게 들어 기존 은행의 경쟁력을 뛰어넘을 수 있다. 지난 2008년에도 정부가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을 추진할 당시 대규모 구조조정이 예고되기도 했다.
©(주)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