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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벽두부터 우린 미생에서 완생을 꿈꾸었는데...


입력 2014.12.22 15:00 수정 2014.12.22 15:06        김헌식 문화평론가

<김헌식의 문화 꼬기>올 한해를 관통하는 문화 코드 '미생'

인기리에 종영된 tvn 드라마 '미생' 화면 캡처.

2014년은 미생에서 완생으로 가고 싶은 이들의 염원이 대중문화에 투영되었던 한해였다. 새해 벽두부터 극장가에는 두 편의 영화가 엎치락뒤치락하고 있었다. 사실 한편은 영화가 아니라 애니메이션이었다. 다른 한편은 보통 영화가 아니라 어른 동화코드의 작품이었다. 미생의 현실에서 완생으로 가고 싶은 열망이 애니와 판타지 코드를 적극 불러들인 모양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해외영화와 국내 영화의 대결이었음에도 '수상한 그녀'의 한국적 정서가 강한 측면과 별도로 '겨울왕국'에도 일치하는 코드가 있었다.

주중에는 '수상한 그녀'가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하고 주말에는 '겨울왕국'이 선두를 유지하는 일이 한달 이상 반복되었다. 결국 완승은 가족관객으로 천만명 돌파를 기록한 '겨울왕국'이었지만, '수상한 그녀'도 900만에 가까운 관객 동원에 성공했다.

우선 영화 '수상한 그녀'는 인생 황혼의 여성이 다시 20대 여성으로 회귀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고 있었다. 이 작품의 흥행은 결국 MBC '미스터백'이라는 남성 버전의 회춘 드라마제작으로 이어졌다. 다만, 여전히 인간의 삶은 죽음 앞에 한없이 미생일 수 밖에 없다. 두 드라마도 그에 맞게 수렴될 수 밖에 없었다. 지구에서 불가능하다면, 신이 존재하는 우주로 나아가면 어떠할까.

우주로 간 '인터스텔라'의 주인공은 시간 여행을 통해 인류의 삶과 미래도 구하고 정작 자신도 늙지 않는 방법을 터득하고 만다. 더구나 자식들이 노환으로 떠나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새로운 사랑을 찾아 떠나기도 한다.  그러나 '님아, 그강을 건너지 마오'의 두 주인공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펼쳐 보이는 멋진 환타지를 관객들에게 선사할 수는 없었다. 담담히 마지막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과정은 우리 스스로가 미생이며, 그 진리에 겸허해질 수 밖에 없음을 여실히 확인하게 했다. 한없이 쏟아지는 눈물은 이를 잘 말해주고 있었다.

'겨울왕국'의 주인공은 결핍된 자신을 스스로 고립시키지만, 동생의 도움으로 완생의 단계로 나간다. 결핍된 그녀는 단지 특정 누군가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존재하는 결핍과 부족 그리고 장애를 대신 말해주었다. 무엇보다 이 애니메이션은 차디찬 산정묘지 같은 겨울왕국에 혼자 스스로 고립시키며 가두기보다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동체적인 정신을 발휘하는 것이 대안이라고 말하고 있다. 

직장인들의 생존 교과서라는 드라마 '미생', 그러나 역시 치열한 경쟁 속에서 홀로 살아남는 법을 가르쳐주기보다는 사람을 우선하고, 그 사람들을 통해 현실적인 모순과 화두를 해결해야한다는 교훈을 전하려 했다. 현실의 벽앞에 무너진 주인공들이 보여준 대안은 그들끼리 새로운 꿈을 향해 길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교과서적인 일깨움이었다. 현실에서 출발해서 환타지를 거쳐 원칙적인 지향점을 확인하게 했다.

애초에 드라마 '미생'이 완생하는 법을 가르쳐줄 것이라고 기대를 했다면 미생으로 끝난 셈이다. 결국 미생에서 완생으로 가는 방법은 누가 대신 가르쳐주거나 만들어줄 수 없을 듯 싶기 때문이다. 스스로 만들어 가야하니 드라마 '미생'은 많은 기대감에 버거워하며 판타지 액션물속으로 숨어야했다. 더구나 완생은 우리가 언제나 염원하는 이상적인 상태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룰 수 있든 없든 완생으로 가는 길에 서 50%든 70%든 그 도달의 수준에서 차이가 날뿐일 것이다. 

드라마나 만화의 '미생'에서 보여주지 못한 것은 결국 개인의 완생에 맴돌았기 때문이었다. 그 일부를 우리는 다른 곳에서 좀 미리 확인할 수 있었다. 작품성과 고증의 논란과 별도로 한국 영화사의 새로운 신화를 쓴 영화 '명량'의 흥행으로 빚어진 이순신 열풍은 완생을 향한 여정이 얻음이 아니라 버림을 통해 소유가 아니라 만족에 있음을 일깨웠다. 살고자 하면 죽고, 죽으려하면 산다고 말한 것이 그것이고, 12척의 배가 아직 있다며 물러서지 않고 자신의 임무와 역할을 다한  것에서 이를 새삼 잘 알 수 있었다.

이순신이 혼자만의 완생을 이루려했다면, 결코 이룰 수 없었던 결과였다. 무엇보다 그는 실존했던 인물이었고 실제 행동을 통해 온 몸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저성장시대를 앞둔 우리에게 필요한 정신이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여러 사람을 미생을 완생으로 이끄는 리더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 현실에 비춰 명확히 인식하게 했다. 

글/김헌식 문화평론가

김헌식 기자 (codess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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